중국의 장성과 로마의 가도(2)

수직방향의 장성

by going solo

기원전 3~2세기경 지구의 동쪽과 서쪽의 문명을 지배하던 중국과 로마제국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작되었다. 한쪽은 수직방향의 장성을 다른 한쪽은 수평방향의 가도를 건설하고 있었다. 당시는 영토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이 활발하던 시대였는데 장성과 가도는 두 제국의 통치세력들이 영토방위와 제국 안전 보장이라는 당면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채택한 통치전략이었다. 그러나 수직과 수평이라는 방향의 차이는 그것을 건설한 사람들의 시대와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적 인식을 반영한다. 이른바 폐쇄와 개방, 혹은 단절과 교류라는 관점에서 고찰할 때 이후 두 제국을 경영하는 다양한 정책의 근본적인 노선을 상징한다.


1) 신화의 시작-진

(1) 진의 천하 통일

사마천은 중국역사의 표준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기(史記)에서 시황제를 야만족과 혼혈로 묘사했다.


툭 튀어나온 코, 커다란 눈, 가슴은 맹금의 가슴 같고 목소리는 승냥이와도 같았다. 친절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호랑이나 늑대 같은 심성을 지녔다. *

중국 천하통일을 이룩한 시황제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한 왕조는 직전 왕조에 대한 정통성을 폄훼하려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사마천 자신도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까지 당한 처지라 통치자의 정책에 한껏 부응하려는 개인적인 의도가 내포된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한 개인적 편견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해도 이후의 역사적 평가 또한 시황제가 중국의 가장 지독한 전제 군주였다는 점은 일관적이다.


진이 천하를 통일한 기원전 221년 통일 전쟁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수많은 중국인들이 거대한 공공사업세 투입되었다. 도로를 닦고 운하를 파고 궁궐을 짓고 성을 쌓았다. 게다가 완성되기까지 40여 년이 걸린 황제 자신의 무덤과 영묘를 짓는데만 죄수 및 하층 노동자 70만여 명이 투입되었으며 무덤의 위치가 알려는 것과 도굴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을 철저히 살해했다.


(2) 장성 건설의 시조-시황제

기원전 214년 기록의 첫머리에 사마천은 장성건설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진이 천하를 통일한 뒤 몽염을 파견하여 30만 군대로 북쪽의 융족과 저족을 몰아내게 했다. 그는 황하 이남을 빼앗은 후에 그곳의 지형에 맞게 골짜기나 고개에 장성을 쌓았다. 그 성은 임조에서 시작해 요동 땅까지 이어지며 전체 길이는 1만 리도 넘는다. **

이토록 막중한 임무을 맡게 된 인물은 몽염이었는데 매우 유능하지만 그만큼 무자비한 군인 었던 몽씨 일족은 진나라의 경찰견 같은 존재였거니와 시황제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엇이든 달려가 문어 뜯었다. 시황제에 대한 몽염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인정받아 그가 국경 성벽 건설임무를 맡게 되었다. 거대한 군사 원정을 마친 뒤 또다시 극한의 기후를 견뎌가며 지극히 험난한 지형에 4천 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성벽을 건설하는 것은 몽염에게는 제국의 안전보장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였다.


장성은 중국 서북부에 있는 임조(현재의 간쑤 성 소재)에서 시작하여 오르도스를 휘감고 흘러가는 황하를 넘어 건조하고 추워서 농사조차 지을 수 없는 내몽골 초원을 가로질러 한겨울 기온이 극한에 이르는 동북부 요동성에서 끝난다. 게다가 해발 고도가 2천~3천 미터에 달하는 산지를 이리저리 돌면서 성을 건설해야 했다. 진시황이 결정한 장성의 이러한 노선을 설명하는 명분에 대해서는 이후에 논의하겠지만 18세기에서 19세기 명나라를 방문했던 서방의 사절단에게 목격된 당시의 장성이 마치 2천 년 전 통치자 시황제가 단일하게 건설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제국의 안전 보장을 위해 정책적 전략적으로 장성 건설한 최초의 왕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긴 하지만그러나 진국 이전에도 각 왕조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장성이 건설되었으며 이후 명조까지도 각 왕조마다 제국의 영토보전과 관련하여 성벽건설에 대해 집착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성, 중국사를 말하다. 71쪽, 줄리아 로벨 지음, 웅진 지식하우스

**같은 책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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