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성과 로마의 가도(7)

수평방향의 가도

by going solo


(2) 가도건설에 관한 로마제국의 기본 정책

로마인은 아피아 가도를 ‘가도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도는 어떠해야 하는 가의 본보기를 아피아 가도가 제시했기 때문이다.


로마가도는 최우선적으로 군단의 신속한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군용 도로로써의 기능을 충족시켜야 한다. 로마는 대부분의 경우 재패한 지역에 점령군을 상주시키지 않는다. 주둔군을 배치하지 않는 대신 유사시 기지에서 진압군을 출동시키는 방식을 취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의 군단 주둔지는 수도 로마였으므로 군단이 출동할 때는 로마에서 목적지까지 행군해야 한다. 당시 로마군단의 주력은 보병이었다. 따라서 대규모 군단병이 되도록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군사적 과제이기도 했다.


기원전 218년, 한니발의 로마본토 침공으로 시작된 2차 포에니 전쟁은 해상전이었던 1차 전쟁과는 다르게 지상전이었다. 그러나 로마군의 최강점인 육상 전이었음에도 16년 동안 한니발로 하여금 본토 유린을 허용하며 국가는 존망 기로에 처하게 된다. 로마에 대한 극심한 적대감으로 한겨울의 로마 북쪽에서의 기습을 감행한 한니발의 최종 목표는 수도 로마 함락이었을 테지만 전쟁기간 내내 수도 공략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도시 궤멸의 기본작전이 ‘포위 작전’이며 이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제는 ‘고립’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카르타고군이 로마를 고립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도 로마를 시발점으로 하는 다방면의 로마가도가 이미 뚫려있었고, 로마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맹 관계 또한 견고했기 때문에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배후가 불안한 상태였다. 결국, 적진에서의 전투가 장기화되면서 소모전이 되었고,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적진 직접공략에 따라 수세로 전환된 한니발은 본국 카르타고로 자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가도를 통한 국토방위 전략의 효율성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반세기 후 3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에서 일어나지만 자국 도시의 지원을 받지 못한 카르타고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3년간의 농성전 끝에 함락되었고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로마가도는 정략 도로여야 했다. 그런 점에서 로마인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 바로 아피아 가도였다. 아피아 가도가 지나는 지방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마를 적대했던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로마인은 거기에 길을 놓은 것이다. 가도건설의 기본의도가 군용 도로였으니 전쟁이 없는 평시에 로마 군단병이 가도를 건설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비용도 로마가 부담했다. 게다가 로마가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도심을 관통하는 것이다.


비상시에는 도로 건설의 일차 목적인 군용으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도심과 도심을 연결하는 방식의 본질적인 기능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해지고 정보의 교류가 활발해 짐에 따라 물산의 유통이 늘어나게 되었다. 자급자족이 주류를 이루었던 기존 경제 시스템이 점차 상업화하며 결과적으로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다.


게다가 정복전쟁의 승자로 입성한 로마군의 관행은 패자에 대한 자치권을 전면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종교는 물론 그 지역의 자치를 그때까지의 통치자들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전쟁에는 패배했지만 정치 문화적인 침해 없이 로마가도 건설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어 정복자 로마에 대한 반감 대신 오히려 적극적인 운명 공동체로 편입되곤 했다.


아피아 가도가 모든 로마가도의 모범이 되는 세 번째 이유는 도로의 복선화이다. 항상 여러 개의 선택지를 가져야 하는 로마인의 인식은 자연스럽게 도로의 네트워크화방식으로 발현되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에 이미 포장도로가 있었다. 같은 시기 중국에도 진시황이 건설한 직도도 있었다. 그러나 길을 네트워크화하면 기능이 향상되고 그 효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실현한 것은 로마인이다. 로마가도는 그물처럼 이어져 있는 ‘도로망’으로서 이해해야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커버 지도출처: 로마인 이야기 10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