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성과 로마의 가도(8)

수평방향의 가도

by going solo

2) 가도로 보는 로마 사람들

(1) 가도 건설자

로마인은 동시대의 중국인이 최고 높이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능선을 따라 장성을 건설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국 전역에 총길이 8천 킬로미터의 가도를 건설했다. 그렇다면 로마가도는 어떤 경로를 거쳐 현실화되고 유지되었을까? 가도건설 관련 입안과 시공, 개보수 및 관리까지의 행정적 절차는 다음과 같다.


-입안자: 재무관, 집정관 등 사회 지도층 인사

-최종 결정기관: 원로원

-건설비 충당: 국고

-공사 담당자: 군단병

-가도 완공 후 유지, 보수담당 기관: 현재 건설부 도로국 혹은 도로 관리를 전담하는 국가 행정기관

-경비 출처: 국가 혹은 해당 도로가 지나는 지방자치 단체

-이용로: 무료


공화정 시대에는 재무관이나 집정관이 입안하여 원로원에 제출했다. 원로원에서는 입안 중인 도로 건설의 중요성과 현실성을 고려하여 토의를 거친 후 표결에 부친다. 가결이 되면 입안자가 공사 최고 책임자로 임명되어 공사를 관리, 감독한다. 제정으로 체제가 바뀐 후에는 황제가 입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음 절차는 공화정 시대와 다르지 않았다.


공사 시행은 군단 병으로 되어있는데 로마가도에 대한 로마인의 기본인식은 군용이었기 때문이다. 로마 군단의 주력은 중무장 보병이었으며 로마 군단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 조건은 18세 이상의 로마 시민권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일정 수준의 재산을 소유한 중산층 이상의 성인 남성이었다. 이들은 전시에는 전장에서 전투를 하고 평시 때만 가도 건설에 투입되었다.


2차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19년에 시작되어 카르타고 본토인 자마에서 로마가 승리한 기원전 202년까지 17년간 계속되었다. 그동안 로마는 전시 중이었기 때문에 가도 공사에 손을 대지 못했다. 기원전 201년에 카르타고와 강화를 맺은 후에도 마케도니아 공략을 비롯한 그리스와의 전쟁으로 재정적 부담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사에 동원되는 군단 병들이 전쟁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에 한참 동안 도로 건설은 중단 상태였다.


(2) 가도 이용자: 군인. 일반인, 우편배달부

-군인

가도의 최우선 이용 대상은 군단 병이다. 로마군단은 로마 시민권 소유자인 군단병, 속주민 지원병과 보조병, 그리고 대부분 속주 출신의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하자면 로마군 주력인 중무장 보병, 경무장 보병, 기병이다. 이상의 전투병 이외에도 의료병, 소나 말을 관리하는 수의사, 군단 소속의 토목 기사 등의 비전투원 등 대 규모로 편성이 된다.


로마가도의 건설의 본질적 목적은 병력의 신속한 이동이었다. 그러한 목적에 입각하여 가도를 건설하는 방침이 세워지는데 시발점에서 종점이 이르기까지 최대한 직선으로 건설한다. 도중에 평야도 지면을 평탄하게 고르고 습지에는 수많은 말뚝을 박은 다음 둑을 쌓고 그 위에 가도를 건설했다. 또한 강이나 골짜기로 내려가거나 올라오려면 대규모의 군단이 이동하는 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판단해서 경사로에는 도로와 동일한 높이의 다리를 놓는다. 로마인이 이토록 곧고 평탄한 길에 집착하는 이유는 두말할 필요 없이 되도록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함이었다.


-일반인

다음으로 로마가도를 이용했던 사람들은 일반인이다. 제국 전역에 망처럼 깔린 도로를 통해 사람들의 이동이 잦아지고 더불어 물자와 정보 이동이 용이하게 되면서 로마제국을 단일한 광역 경제권으로 바꾸어 놓았다. 로마는 북아프리카, 아시아, 유럽대륙에 걸친 다민족,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대제국이었다. 따라서 언제든 일어나기 쉬운 내부의 분쟁을 로마가도가 상징하는 개방과 교류라는 통치방식으로 해소하며 이러한 광역 경제권을 기반으로 “로마가 주도하는 세계 평화” 이른바 팍스 로마나를 이룩하고 200여 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 구석구석까지 혈관처럼 깔려있는 도로망이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발휘했기 때문이다.


-우편배달부

갈리아 전쟁 당시 카이사르의 적수였던 갈리아와 게르만 부족들이 놀라고 두려워했을 만큼 정보의 전달이 신속했는데 그것은 그가 고안한 정보 전달 방식 때문이었다. 카이사르는 정보를 전달하는 임무만 전담하는 부대를 조직하고 도중에 말을 갈아탈 수 있는 교환소를 배치하는 등 우편시스템을 설계 운영했다. 이러한 정보 전달 임무는 특정 정보가 있을 때만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왕래하도록 되어있었다. 카이사르가 고안한 이 시스템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어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국가 정책으로 정착시키고 국영 우편 제도로 완성시켰다. 이러한 제도를 토대로 중앙에서 결정된 제도나 훈령을 제국 전역으로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정보 전달 시스템은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통치 전략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커버: 아피아 가도,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