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연 양윤희 Jun 22. 2023

30년 후

포스트코로나시대의 메타픽션

*옥현의 귀국


    옥현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뉴욕에 사는 친구로부터였다. 서울에서 전시회를 할 예정이니 동창들이 환영식이라도 해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밴드에 공지를 올린 것이다. 어릴 적 둘도 없는 친구인데 나에게 먼저 귀 뜸을 해주지 않은 것이 많이 섭섭했다. 대학 때까지는 이런저런 편지로 안부를 물었으나 결혼을 하고 서로의 삶이 복잡해지면서 마음으로만 안부를 물었다. 사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서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난다는 건 어린 시절의 꿈같은 시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고 잊었던 나와 다시 만날 수 있는 확실한 기회였다. 옥현은 한국 빌딩 1층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 건물 10층에서 몇 주 후에 사진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나선 탓에 도로는 한갓지고 작은 브러시에 끼인 바싹 마른 은행잎의 펄럭거림이 스산한 기분을 한층 돋운다.

   ‘마녀의 피가 흐르는 것이 틀림없어, 회색 날씨가 왜 이리 좋은 걸까!’

윈도 브러시를 작동시키며 가만히 혼자 되뇌어 본다. 아랫목에 고양이가 엉겨 붙듯 작은 가랑비가 눅진하게 차창에 들러붙는다. 마리화나를 피우면 이런 기분이 들까? 몇 달 전에 만났던 지인이 떠오른다.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 동네 카페에서 마리화나를 권해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온 정신이 하나로 집중되는 느낌이랄까? 모든 감각이 쭈뼛쭈뼛 살아나지요. 아니... 온 정신이 조각조각 원자처럼 분리되어 허공을 날아다닌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군요. 붕 떠오르는 느낌...”

   남자의 말을 듣고 마리화나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 차 안에서 마치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는 듯 몽환에 사로잡힌다. 어둑어둑한 아침... 환장하도록 좋다고 해야 하나? 막 잠에서 깨어 새벽 찬 공기를 마시는 아침에 캄캄함이 이리 짙게 드리우다니... 육신이 흐느적흐느적거릴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아진다는 어느 시인의 경구가 떠오른다. 그렇지 않은가... 날씨가 전혀 인간들을 배려하지 않는 듯 제 멋대로 우울한 날, 인간 세상을 포기한 날, 그런 날에는 사물이 판타지 없이 정갈하게 보이고 그와 더불어 사유가 명정해 지지 않는가 말이다. 사실 판타지 없이 세상을 곧바로 직시할 때가 제일 낯선 것 아닌가? 태양빛이란 얼마나 존재를 성가시게 만드는가. 너무 들이 대고 너무 뻔뻔하다. 잠깐 눈살을 찌푸린다.           

                


                 오... 그로테스크한 날씨

                 마법사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아...

                 캄캄한 고적함

                 거기다 비까지...     



긴 신호에 시간이 주어지자 핸드폰을 꺼내 조금 긴 하이쿠를 보낸다. 아무 답장도 없다. 수신인은 바로 자신이니까... 답장을 보내지 않는 자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문자는 늘 그랬다. 거슬러 받는 돈은 언제나 먼저 낸 돈보다 부족한 법이다. 존재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외로웠다. 왜 그렇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허전한 느낌이 드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책에서 본 것처럼...... 망망대해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어쩌면 이제 삶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게 된 것뿐인지도 몰랐다. 정말 그랬다. 삶에서는 명쾌한 해결도, 따뜻한 치유도, 공감하는 대상과 활짝 웃는 호사도 결국 시간의 가랑이를 한 번 거치고 나면 디오니소스의 축제가 훑고 간 술판처럼 감정은 엎질러지고 이성은 찢기지 않느냔 말이다. 

   많은 달이 뜨고 졌다. 

  ‘정말 새털 같은 날들이 지나갔구나......’ 

  ‘새털 같은’이라는 단어가 할머니에 대한 진한 증오를 딸려 올라오게 한다. 할머니는 언제나 “새털 같이 많은 날들인데 무에 안달하누? 재밌게 살거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제 삶의 해가 중천도 아닌 서쪽에 길을 내주는 달의 나이가 되자 그 새털 같은 날들이 실인즉 얼마나 빨리 덧없이 휙 하고 날아가는지 알게 되었을 뿐이다. 게다가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늘 한 참 생각해야 했다. 나는 아저씨와 맺어지지 못했고 집안끼리 친분이 있던 먹던 떡 같은 서방과 결혼했다. 최 성림의 남편인 웅이가 입이 없는 듯 과묵했던 것처럼 내 남편은 마치 통점이 없는 사람처럼 매사에 무디고 둔감했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먹는 것이고 그의 유일한 소망은 아내인 내가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남편인 그가 처음 외갓집에 인사를 오던 날 할머니는 많은 음식을 부엌 식탁에 차려 놓으시고 그를 거실에 붙잡아 놓은 채 밥을 주지 않으셨다. 이것저것을 묻고, 이야기를 하시고, TV까지 한갓지게 오래 보셨다. 시간이 흘러 저녁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나자 그는 배가 고픈 듯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계속 저녁을 먹자는 말을 안 하셨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가 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는 직접 부엌에 가서 물을 꺼내먹으라고 하셨다.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식탁에 잔뜩 차려진 음식들을 휘 둘러보다가 맨손으로 서둘러 갈비를 한 점 집어 먹었다. 밖에서 훔쳐보던 할머니는 그 광경에 크게 웃으셨고 그도 겸연쩍어 할머니를 보며 수줍어했다. 그제야 “밥 먹자.....” 하신다. 배가 고픈데도 예의를 차리는 놈은 처자식을 굶길 수 있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바라고 예견 한 그대로 모든 것이 펼쳐진 것이다. 외조모님이 90세의 연세로 돌아가실 때 즈음 쓸쓸한 어느 날 삶이 권태로워 외가에 들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단아하게 베적삼을 입으시고 연화도가 그려진 대청에서 책을 보고 계셨는데 희한하게도 돋보기를 끼고 계시지 않았다. 물론 입에는 담배가 물려있었고...... 귀가 어두워지셨기에 곁에 바싹 붙어 앉아 “할머니 무슨 책 읽어?” 하고 물었다. 대답이 없으셨다. 물론 책장은 넘어가지도 않았다. 굳은 듯 뭔가에 골똘하시는 할머니를 잠시 지켜보다가 어깨에 기대어 혼잣말을 했었다.

  “할머니, 이게 인생이야? 재미도 없고 갑갑해.....”라고

할머니께서 돌아보시고 어깨를 감싸 안아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 문영이가 복된 삶을 살고 있구나...... 재미없고 갑갑한 것이 최고의 재미야....... 삶이 힘든 사람은 재미라는 말을 미처 떠올리지 못하거든. 빈 것이 가장 가득 찬 것처럼 말이다. 들에 핀 꽃이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날 그 꽃은 지기 시작한단다. 중간이 최고라는 것이지. 극단은 저무는 축이라 어리석은 자들만이 그것을 갈망한단다. 할미는 죽어서 학이 될 거란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을 테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하늘을 향해 오늘처럼 물어보렴. 할미가 답을 줄 것이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삶이 재미가 없을 땐 이렇게 책을 펴셔 코를 박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면 되느니라. 책이 너를 읽을 시간을 내주는 거야. 그것도 보시야...... 보시란 너만 복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네게 복덕을 베풀도록 너의 여백을 내주는 것이기도 하거든.”  

   할머니는 사물이 되신 것이다. 그 말씀을 하신 지 보름 후에 아침 세수를 하시다가 하늘로 가셨다. 외숙모가 말하길 욕실에서 오래도록 나오시지 않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세면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고 했다.       

   워커 에반스의 사진전이라고 했나? 옥현은 서울에 온 지 3주 정도가 지나서야  연락을 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방울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아침나절 이슬 맺히듯       코만 비추고 사라지더니...... 어릴 적 신당동에서의 추억은 삶에서 없다는         듯......’

옥현이 열세 살 초겨울에 외가인 신당동을 떠나 친가 조부님과 미국으로 간 후 이십 대 초반 까지는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나는 남편의 직장일로 중국으로 가게 되고 옥현은 캐나다 계 미국인 영화감독과 뉴욕에 자리를 잡아 서로를 잠시 잊었다. 언젠가 신문에서 그녀가 화가에서 사진작가로 전향했으며 특이한 전시회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프로필과 기묘한 사진들이 마치 처음 보는 물건을 대하듯 낯설었다.

   ‘선녀도랑 달 뜬 십우도를 그린다더니 왜 사진으로 전향했을까? 영화감독이라는 남편의 영향을 받았나?’ 만나면 자세히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는구나......’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만난다는 것은 사실 만남이라는 현재의 사건을 시간의 역으로 펼쳐놓은 것임에 다름 아니다. 우리에겐 그리움이나 기다림이란 사실 없다. 그건 그냥 생각이라는 찰나에 로맨틱한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만난 후에야 사후적으로 나의 생각이 그리움이었는지 망상이었는지가 드러난다. 인간은 사유조차도 실상은 결과론적인 것이다. 시간을 딛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라는 감정은 동전처럼 쩔렁거리지만 그 소리가 제 값어치를 할지는 지금이 아닌 시간 저편에 있다.

    어릴 적 방울 할머니의 신당에서 진분홍 홍옥춘을 양 볼이 메워져라 빨아먹고 코를 찡긋거리며 웃던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방울 할머니의 장례식 말고는 한국에 오지 않았던 그녀가 드디어 서울에 온 것이다. 옥현은 워커 에반스의 사진전이 끝난 직후에‘빛나는 것들’이라는 전시회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아마도 미리 전시장의 구도를 알아보려고 약속 장소를 이곳으로 잡은 것 같았다.     ‘빛나는 것들’이란 무엇일까, 별과 달일까? 그녀의 눈은 선녀도의 색감들에 녹아들지 않았던가?       

            눈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눈의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나는 거리로 나선다. 내 눈은 굶주렸다. -워커 에반스     

빌딩 앞 로비에 워커 에반스의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흑백의 고즈넉한 사진들이 시선을 끈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옥현이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그래...... 네가 이렇게 유명한 사진작가 인 줄은 몰랐어, 왜 그동안 연락이    없었나 했더니 혼자서 잘 나가고 있었네?”

      “잘 나가긴 뭘 잘 나가니. 외로워서 사진 찍는 건데......”

외로움이란 단어 때문에 긴 시간의 소원함이 어릴 적 산신당 댓돌 위에서 공기놀이를 하던 친근함으로 바뀌었다. 인간은 혼자서만 소외된 감정을 맛보기에는 너무 사악하다. 이왕이면 내 옆의 사람도 나와 같기를......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처음엔 쓸쓸해 보이던 친구의 미소가 점차 소리 내어 웃는 공감으로 바뀌고 그 여운은 언제나 그렇듯 버들강아지처럼 보드랍고 따스했다.  

      “너는?”옥현이 물었다

      “그냥저냥 지내! 우리 나이엔 다 조금은 외롭지...... 너도 알다시피 내 꿈은 선녀도 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는 거였는데 삶에 치어서 꿈은 흐릿해지고 마치 아주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리고 허전함에 안절부절못하는 발 탄 강아지 같아.” 

      “발 탄 강아지? 그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

그 말은 방울 할머니가 하루 종일 발이 새까맣도록 종종 거리며 맨발로 뛰노는 우리들을 빗대어 야단치실 때 쓰던 비유였다. 그렇게 퉁박을 주시고는 늘 따뜻한 양은 대야에 발을 씻겨주셨던 것이다. 옥현과 나는 한 참을 웃었다. 왜 삶은 늘 발 탄 강아지처럼 우리를 허둥대게 만드는 걸까.

      “지금부터라도 쓰면 되잖아?”

      “...... 잊지는 않았지...... 그런데 뭘 쓸까?”

꿈을 잊은 건 아니었다. 세월이 오래 흘렀고 무엇보다 재현하고 싶은 감정적 흘러넘침을 받아 줄 대상이 없었다. 서사 욕망이 어느 한 지점에서 석고처럼 응결되어 꽉 막혀있는 듯했다. 살면서 보니 할머니 말씀대로 삶은 생각처럼 그리 길지도 그리 감동적이지도 않다. 옥현이 눈을 흘기며 나를 쏘아본다. 그 눈빛 속엔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듯 보였다.

      “지난가을에 뉴욕 맨해튼에서 사진전 열었어.”

      “그래?...... 자랑하는 거야?”웃음이 스며 나왔다.

      “뭘 찍었는데?”

      “나무....”

      “나무?”

      “응, 빛나는 것들이 나무야...... 신당동 산신당 선녀도 안에 걸쳐 있던 도화 나무 생각나? 빛나 보였어. 나한테는 불이 밝혀진 듯......”

      “...... 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진홍색 천도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 

      “맞아 천도복숭아가 마치 백열전구 같았지.”

      “그런 영감의 사진들로 세계 백대 예술가 대열에도 끼었잖니...” 버들강아지가 코를 찡긋거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의 세 가지 정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