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메타픽션
*아리스토파네스의 에로스론
며칠 후 공문이 올라왔다. 뉴욕에서 옥현이 왔으니 번개모임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녀를 위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는 거라서 약간 흥분이 되었다. 게다가 옥현과 함께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퍽 즐거웠다.
친구들을 만나는 날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옥현은 흥분을 해서 오전 11시부터 미장원에 가자고 보채었다. 예쁘게 보이고 싶었나 보다. 그녀가 미장원에 가서 처음 한 말은 “어리게 보이게 해 주세요... 버섯 머리처럼 컬을 넣어 벙벙하게......”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어릴 때 모습을 재현한다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나?....
“상이는 어떻게 변했어?”
그녀의 관심은 온통 상이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네 눈으로 확인하렴!”
저녁 여섯 시쯤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금요일이라 강남 거리에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차를 몰고 오는 여자 동창들을 도와주기 위해 몇몇 남자 동창들이 식당 문 앞에 나와 있었다. 몇 년 만의 조우라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고민은 정말 삿되고도 삿된 고민이었다. 이미 밴드에서 사진과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익숙해진 그들에게 낯섦이란 없었다. 어쩌면 그리도 또렷하게 아이들의 얼굴에 어린 시절이 박혀 있던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문 앞에 서있는 세 명의 동창들 앞으로 걸어갔다.
“너....., 너....... ” 옥현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입으로 막으며 친구들 곁으로 걸어갔다. 웃음보가 터진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미동들이 나이를 거슬러 열 살 남짓 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킥킥거렸다.
친구들과의 흥건한 만남은 우리들을 마치 올림포스신전으로 데려간 듯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인간에게 부여된 시간이란 관념은 무엇일까.... 똑같은 단위의 시간이 흘러간다. 물처럼, 바람처럼..... 하지만 어떤 날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발하며 총총히 삶의 한가운데 박혀 있고, 또 어떤 날은 새털처럼 가볍게 공중을 부유하다 햇빛 속에 녹아 버린다.
옥현은 테이블 중간에 자리를 잡고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끝자리에 다소곳이 앉았다. 강남의 고기 집은 금요일 오후라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왜 이렇게 복잡한 데다 장소를 정한 거야......’ 친구들을 보며 애써 웃었지만 내심 혼잡함이 성가셨다. 이슬람교를 믿는 여자 친구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된장찌개를 먼저 주문했다. 어릴 때 구김살 하나 없이 밝고 명랑하며 장난기가 충천했던 친구였다. 모든 남학생의 로망이었던 그 친구가 무슨 사연으로 저리 얌전하고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을까......., 이슬람교에는 왜 관심을 가졌을까...... 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 뒤에 숨은 사연을 조립해 나갔다.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나 상이는 오지 않았다.
“문영이 너는 동창회 참석이 그렇게 뜸하더니 오늘은 어떻게 시간이 있었냐?” 회장이 비꼬듯 말한다.
“미안해! 중국 들락거리느라 그래. 벌금으로 좋은 중국 술 두 병이나 가져왔잖아. 니들이 그렇게 보고파했던 옥현이도 데려오고......”
“야......, 회장.... 상이는 안 온다고 했어?” 옥현이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친구들은 그녀의 질문을 회피했다.
“상이는 안 오니?”옥현이 또 물었다.
“글쎄..... 좀 바쁜가?”회장 영준이가 느린 탬포로 말했다.
옥현이 왔다는 것은 상이도 알고 있었다. 밴드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나는 옥현의 낯 색을 살폈다. 많이 서운해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정신과 의사가 된 진원이가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이....... 옥현아....... 6학년 때 갑자기 떠난 곳이 미국이었단 말이냐?”
“응...... 몰랐어?” 그녀가 부끄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왜......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샥 없어지나? 어느 날 학교 가니까 선생님이 네가 미국 갔다고만 하시고...... 말이 없으시데......”
“그랬어?” 그녀가 문 쪽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6학년 2학기 11월...... 그녀는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친 조부모님에게 이끌려 미국 사립학교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와의 슬픈 이별, 낯설던 미국 생활, 외롭고 고독했던 미국 프라이빗 시절의 고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녀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던 미국 아트 스쿨로의 진학...... 물론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발버둥을 치며 방울할머니와 헤어졌는가는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친구들과의 대화는 더욱 무르익었다. 삼삼오오 패를 나누어 동창들은 질펀하게 자신의 삶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테이블 건너편에 있던 재원이가 여자동창인 은애 앞으로 비틀거리며 걸어와 앉았다. 은애가 정색을 하며 재원에게 물었다.
“왜, 그래? 술 많이 취했네?” 재원이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갑자기 무릎을 꿇고 은애에게 말한다.
“은애야, 부탁이 있다. 내 평생의 숙원이야...... ”
친구들은 재원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모두 움찔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는 자세로 은애 앞에 턱을 받치고 앉아 있는 사십 후반의 머리가 벗어진 남자동창......
“뭔데? 부탁할게?” 모두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재원과 은애에게 시선이 옮아갔다. 나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다. 뭘까......
재원이 은애를 올려다보며 애절하게 말했다.
“본이,..... 본이 소식 좀 알려주면 안 되겠니?”
“본이?”
순간 모든 동창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본이는 미소가 솜사탕같이 녹았던 여자 동창이었다. 그 주변의 모든 남학생들이 본이의 상량함과 그 매력적인 미소에 사족을 못 썼던 것이 기억났다. 나는 재원이의 애 살 섞인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와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인간이란......! 마음속에 한 줄기 가련한 연민이 스쳤다. 인간이란 그렇구나...... 자신이 욕망했던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구나... 그리움.... 사랑..... 하나가 되고픈 욕망.....
“본이는 일본에 있다고 들었어. 어머니들끼리 친분이 있어서 소식은 가끔 듣지만 나도 못 본 지가 20년은 된 것 같아.”
그녀와 한 동네 살았던 은애의 답이었다. 친구들은 재원의 간절함을 치유해 줄 대답이 은애에게서 나오지 않자 모두 안타까워했다. 벽 끝에서 담배를 피워 물던 진원이가 한숨을 크게 내 쉬고 한 토막의 이야기를 펼쳐내었다.
“옛날엔 인간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어...... ”
친구들은 엉뚱한 진원이가 또 무슨 설을 풀어대나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좀, 잘 봐... 인간의 모습을... 넙치처럼 생겼지 않았니? 등하고 뒤통수...... 처음에 인간은 머리가 둘, 팔다리는 넷,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온 사방을 볼 수 있는 입체적인 모습이었지. 완벽했어... 퍼펙트란 얘기지. 그래서 신들에게 도전할 정도로 힘이 막강해 진거야. 제우스는 겁이 났어. 이대로 두면 인간들이 신들을 위협할 것 같아. 그래서 다 쓸어버리기로 했지. 근데 그렇게 하면 신들에게 재물을 바칠 존재가 없는 거야. 심심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완벽해진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심사숙고 끝에 제우스는 인간을 반으로 쪼개기로 했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 이야기는 아저씨가 열여덟 어린 시절에 옥상에서 내게 들려준 얘기가 아니던가? 『마법의 통』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어 보라고 하면서 짝짓기의 수단이 무엇이냐고 물었었다. 마치 그 일이 까마득하게 먼 전생의 일처럼 느껴졌다. ‘진원이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하기도 하고 긴장이 되었다.
“뭐?” 쪼갠다는 말에 친구들은 여기저기서 탄식의 고함을 쳐댔다. 우스워하면서도 눈빛을 초롱거리며 진원에게 집중했다.
“그 당시 인간은 지금과는 다른 종류였어. 남자와 남자가 결합한 형태, 여자와 여자가 결합한 형태, 남자와 여자가 결합한 형태, 이렇게 세 종류였거든? 그런데 컷팅(cutting)을 한 거지 과감하게......”
“진짜 쪼갰단 말이냐?” 남자 친구들은 깔깔 웃으며 무언가를 자르는 시늉을 하다가 호기심을 가지고 정신과 의사인 진원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 반으로 나누었지!...... 인간들을 쪼개자 그들의 힘은 예상대로 약해지고 모양도 우스꽝스러워졌지. 지금처럼 말이야. 그런데 쪼개진 인간들은 완벽했던 옛날을 그리워하게 되었어.... 중요한 건 그들이 예전엔 완벽했다는 거야! 그들은 예전의 완벽함에 열렬한 노스탤지어를 갖게 되었지. 쪼개진 반쪽으로는 불안하고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자기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지. 그러다 자신의 반쪽을 만나면 서로 부둥켜안고 꼼짝을 안 했어. 일도 안 하고, 신에게 제사도 안 지내고... 결국은 굶어 죽는 거야. 껴안고 있다... 또 헤어지면 못 찾을까 봐....”
“야...... 정말 압권이네. 껴안고 있다가 굶어 죽는다니...... 오! 로맨틱하는구나.” 이야기는 자못 흥미로웠다.
“어서 계속 얘기해봐라. 재밌네......”
“제우스가 내려다보니 가관도 아니야. 다 널브러져 있다가 굶어 죽을 판이야. 이러다간 신들을 위해 제단을 만들 모든 인간들이 다 없어질 판이야. 제우스는 또 난감해졌어. 어쩌나.... 그래서 제우스의 2차 개입이 일어나게 된 거야. 제우스는 인간을 다시 떨어뜨려 놓을 방법을 생각했어. 그 방법으로 생식기의 방향을 돌려놓은 거야. 그러니까 그전에는 인간들은 땅에다 사정을 했어. 그걸 출토인 신화라고 하지.” 몇몇 장난기 있는 친구들이 “땅에다 했어?” 하면서 서로를 치며 웃어댔다.
“그래... 그 당시 인간들은 땅에서 태어났거든... 근데 이제 땅에 안 하고 여자의 몸에 하도록 안쪽으로 돌려놓았어. 그러자 부둥켜안고 있던 인간들이 서로 사랑을 하고 쾌락을 느껴 만족하면 떨어져서 일터로 가서 일을 했어. 물론 자 식을 얻으니 일을 해야겠지. 거기서부터 문명이 발생하기 시작한 거야.”
“엥? 그게 섹스의 기원이라는 거냐?”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문제는 말이야. 자신의 반쪽인 줄 알고 부둥켜안았는데 그게 자기의 반 쪽이 아니라면. 혹은 자신의 반쪽과 드러누워 함께 평생을 살아도 서로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생긴다면...... 외로움, 허전함 같은 존재론적 고독감 말이야......”
진원이의 말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중년을 넘긴 모든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래..... 그렇다면 그다음엔 뭐가 있을까......
“여기서 또 이론이 분분하지. 인간이기에 느끼는 허전함. 연인이 함께 하면서 그토록 크고 즐거운 기쁨을 얻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서 인간들은 또 시무룩해진 거지. 인간들이 시무룩해지자 신들도 짜증이 났어. 그러자 인간들 옆에 연장을 든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나타났어. 그가 물었지. 뭐가 문제냐?”
이제 친구들은 술을 마시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모두 전폐하고 진원이의 이야기에 몰입되었다. 나도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문제가 뭘까? 자신의 반쪽을 만났는데 문제가 무어냔 말이다. 정말 진원이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호소력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허전하지 않은가 말이다.
“야,..... 빨리 얘기해 봐....... 답답하다....”
“헤파이토스는 ‘너희들이 바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 그건 둘이 완전히 결합된 어 밤이나 낮이나 절대 떨어지지 않는 것이냐? 그러면 너희 둘을 녹여 하나로 만들어 주겠노라. 그러면 죽음도 동시에 맞이하며 죽은 후에도 저 피안의 세계에서 하나로 살 수 있겠지. 그럼 외로워하지 않겠느냐?’이런 질문을 한 후에 부둥켜안은 인간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용접해 주었어. 한 몸이 된 거야.... 그래서 인간은 예전에 완벽함을 회복한 거야.... 다 그런 건 아니고 헤파이토스가 용접한 것들만.... 궁합이 맞는다는 게 바로 그런 거야...... ”
“그럼 네 이야기는 궁합 얘기냐?”재원이가 식탁 끝 쪽에서 진원이를 바라보며 묻는다.
“여기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는 끝나.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제 소크라테스로 바통이 건너와. 소크라테스는 말하지! 인간은 용접을 당해도 결핍을 느낀다는 거야. 왜냐?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지, 그것으로 완벽하지 않은니까...... 순수하고 정결하고 섞이지 않은 아름다움 자체를 보는 일이 누군가에게 일어난다면, 즉 인간의 살이나 피부나 다른 많은 가사적인 허접쓰레기에 물든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일 형상인 신적인 아름다움 자체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육체적인 결합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지. 그것을 경험하면 이상적 진리를 추구하고 참된 덕을 산출하는 아름다움 자체를 계속 원하고 또 낳고자 하는 희원이 생긴다는 거야...... 진리에 대한 사랑이라나? 필로소피, 철학에 대한 사랑, 삶의 비밀에 대한 앎의 욕구, 서사를 통한 욕망 만족, 바로 우리들이 친구에서 느끼는 즐거운 마음, 아름다운 친애, 우스운 글귀, 즐거움, 행복감 이런 거...... 소크라테스는 그걸 추구하려고 밤마다 아크로폴리스 기둥 아래서 자신을 따르는 미소년들과 밴드를 한 거고. 그래서 크산티페한테 쫓겨났지. 알지? 그러니까 조심해! 마누라한테 쫓겨나지 않으려면 밴드에 너무 빠지지 마.....”
친구들은 잠시 침묵한 뒤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다. 어떤 친구는 빨리 집에 가서 용접 자국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모두 진원이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나는 ‘삶의 비밀에 대한 욕구’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내 삶의 비밀은 뭘까...... 잠시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옥현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토록 좋아하고, 좋아하고, 애태웠던 그 사람...... 어떻게 변했는지, 아직도 나를 애증의 눈으로 쏘아볼 것인지, 할머니가 사주가 분주하다고 거절했던 그 아저씨는 정말 그렇게 분주하게 살고 있는지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열망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