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만 호인인 사람이 많은 이유: 쉽고 편하니까
밖에선 아주 호인이 따로 없는데 가족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집집마다 한 둘은 있을 겁니다.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싹싹하다, 사람 좋다, 자상하다, 성격이 둥글둥글하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쁘다, 사람을 잘 챙긴다...'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는데 정작 가족들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그런 사람이 우리 주변엔 왜 그렇게도 많을까요?
나와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ㅡ더 직설적으로는 내가 죽건 망하건 상관 없는ㅡ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 칭호를 따내는 일은 가족에게 같은 칭호를 따내는 일 대비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남'이기에 추석과 설에 안부 전화를 각 한 번씩만 드리고 작은 선물세트를 들고 일 년에 한 번만 찾아가도 우리에게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됨됨이가 바른 사람'이란 칭호를 너그럽게 내립니다. 오가며 마주치는 사이라면 밝은 얼굴로 인사하고 30초 정도 가벼운 대화만 나누어도 그들은 우리를 '예의 바르고 싹싹한 사람'이라 정의하죠. 가족은 어떨까요? 24시간 중 가족에게 30초만 쓴다면 가족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불러줄 리가 없습니다. 가끔 내킬 때 맛있는 고기를 사 먹이고 선심 쓰듯 선물을 한 번씩 안겨도 '남'이 우리에게 해주는 드라마틱한 칭찬과 감탄, 찬사가 나오지 않습니다. 가족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간헐성 선행'이 아니라 '항상성 안정'이거든요.
추억의 애니메이션 "빨강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을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앤만큼 어릴 때 이 만화를 보면서 마릴라 아줌마는 앤한테 왜 저러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항상 무뚝뚝하고 앤의 일상에 조금의 즐거움도 허용하지 않는 엄하고 무서운 아줌마. 그런 마릴라와 같이 지내는 앤은 비뚤어지기는커녕 커서 좋은 선생님,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됩니다. 지금 "빨강머리 앤"을 다시 보면서 그 어려운 '일관적이고 항상성 있는, 치우치지 않는 절대 육아'를 마릴라 아줌마가 해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물론 우리가 기계는 아니기에 기분이 좋은 날, 나쁜 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날, 모든 일이 꼬이는 날이 랜덤으로 찾아옵니다. 문제는 가족과의 관계가 이 '힘든 날' 정의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힘든 날', 너무도 쉽게, 때로는 습관적으로 가족 중 약체를 골라 내 감정의 하수구로 써버리곤 합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약체는 물론이고 그 광경을 견뎌야 하는 다른 가족들도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위해 하루 열여섯 시간을 일하고 좋은 집에 살게 해 주려고 발버둥 치고 투잡에 쓰리잡까지 해서 원하는 선물을 사다 주어도 가족은 우리를 '나쁜 사람'이라 부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힘든 날'에 우리는 남과 굳이 연락하거나 마주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기분 좋은 날을 골라 그들에게 적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되니까요.
가끔 마주치는 남에게는 1년 365일, 8760 시간 중 대여섯 시간만 할애하면 쉽게 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이,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선 1년 365일, 8760 시간을 오롯이 노력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이니 이 절대적인 시간만 들여다봐도 어려운 일인 것이 확실합니다. 이 어렵지만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은 포기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좋은 사람' 타이틀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cover image from www.continuityfb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