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엄마는 주말농장에
심은 곡식들을 돌보느라 바쁘다
쉬는 날이면 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바쁜 엄마를 도우러 주말농장에 갔을 때,
소매를 걷은 엄마 팔에 드문 드문 멍이 보였다.
"엄마 이 멍은 왜 그래?"
"모르겠어, 가려워서 긁었더니 그러네"
"그래서 피부과 약을 먹고 있는데 낮질 않아"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 이유를 알았더라면....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엄마가 지금 응급실에 왔어"
"어젯밤에 일하는데 쉼 쉬기가 힘들어서
검사했는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왔어"
피검사 결과 간수치가 너무 높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헸다.
그때까지도 일주일이면 퇴원할 줄 알았다.
엄마도 나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입원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엄마의 눈동자에 황달 증상이 보였다.
간수치도 내려가지 않았다.
일주일이면 퇴원할 줄 알았는데
입원기간이 길어졌다.
입원한 지 2주가 지나면서
엄마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복수가 차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많이 힘들어했다.
자신감이 넘쳤던 엄마는
약해졌고, 우울해했다.
코로나19 시기라 보호자가
병실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엄마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의사는 보호자 한 명이
상주하라고 했다.
막내 이모와 나는 오전 오후로 나눠서
엄마 곁을 지켰다.
어느 날,
조퇴를 하고 서둘러 병실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피검사를 하려는 간호사가
엄마를 깨워봤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간성혼수가 왔다고 했다.
갑자기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검사실로 가서 CT를 찍고
돌아오면서 내 마음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겁이 났고 무서웠다.
밤이 되어 막내 이모가 도착했다.
엄마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중환자실로 가야 한데"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하니 친척들도 모여 있었다.
친척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나자
이모가 조심스레 말했다.
“이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멈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는데
엄마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의 증상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우리는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