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미새는 먹이를 물어다 준다
아기새는 그저 입을 벌리고 기다리며,
어미새가 건네는 사랑을 받아먹는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엄마 집에서 5분 거리에 얻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지만
엄마는 여전히 음식을 해서 가져다주셨다.
집들이를 할 때는 걱정이 되었는지
이틀 동안 우리 집으로 와서
음식 준비를 해 주셨다.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품 안에 자식이라며
엄마의 걱정은 늘 끝이 없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불임에 용하다는
한의원을 다니고.
한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병원을 다니며 힘들어하는 나를 지켜보는
엄마는 나보다 더 힘들어했다.
네 번의 인공수정에 실패 후
우리는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다.
"한 번 만 해보고 안되면 우리끼리 살자"
"아이도 인연이 되어야 오는 거니까"
그렇게 시험관 시술을 하고
2주를 기다렸다.
"축하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의사 선생님은 첫 번째 축하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의사 선생님은
두 번째 축하인사를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인연이 되어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찾아왔다.
병원을 나오면서
엄마게에 제일 먼저
전화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생한 내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고,
아이들이 생겨
기뻐서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임신 기간 내내 입덧이 심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체중이 줄어갔다.
그런 나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 날이면
이것저것 해 오셨지만
맘대로 먹지 못했다.
엄마는 내 걱정을 하느라
쉬는 날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출퇴근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가 걱정이 되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차를 가지고 직장으로 오는 날이 많았다.
나는 다시 아기가 되어
엄마의 무안한 보살핌을 받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엄마는 쉬는 날이면
아이들을 보러 오셨다.
"엄마 애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쉬는 날은 좀 쉬지 힘들게 와?"
"애들도 보고 싶지만, 내 새끼 힘들까 봐 오는 거지"
엄마는 그렇게 또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되었지만
나의 어미새가 물아다 주는
먹이을 여전히 받아먹었다.
나의 어미새는 손녀들보다
내 새끼가 힘든 게 더 걱정되었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했다.
내가 엄마의 전부이듯,
엄마도 나의 전부였다.
이제는 나도 아이들의 어미새다.
먹이를 물어다 주고
아픔을 대신 걱정한다.
그렇게 나도 엄마를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