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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성 Mar 05. 202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변화 앞에서의 지혜의 무력함

나는 생각 없이 이 영화를 접했다. 영화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조커를 좋아하며 그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던 나는, 영화사 최고의 악당을 뽑은 기사를 접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조커,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가 그 주인공이었다. <다크 나이트>를 제외한 두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중 서부극이고 설명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먼저 관람하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내가 생각한 서부극과 거리가 멀었다. <석양의 무법자>나 <황야의 7인> 분위기의 영화를 기대했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카우보이간의 목숨을 건 사투를 다룬 영화가 아닌,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을 때의 혼란을 나타낸 영화였다.  


No country for old men, 영화의 원제이다. 이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고 번역되었지만, 몇몇 사람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없다>라는 번역이 영화를 더 잘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번역이 영화와 더 부합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이 영화를 해석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주인공이자 악당인 안톤 쉬거이다.


안톤 쉬거, 특유의 헤어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안톤 쉬거의 손에서 놀아난다. 안톤 쉬거의 체포와 살인 장면으로 시작되며, 그의 퇴장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영화 속 캐릭터 르웰린 모스가 도망치는 모습이 주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안톤 쉬거가 그를 쫓는 장면들이 영화의 뼈대이며,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휴게소 장면도 안톤 쉬거가 만들어냈다.  


안톤 쉬거는 전형적인 인간상과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안톤 쉬거는 살인의 무게를 느끼지 않는 살인마이다. 안톤 쉬거에게 살인은 운전과 같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살인의 과정에 있어서, 안톤 쉬거는 기존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도축용 산소총을 개조한 무기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살인의 기준이 있다. 상대가 자신에게 거슬리는 언행을 행하였을 때만, 동전 던지기로 상대를 죽일지 결정한다. 주로 내기에 사용하는 동전 던지기로 사람의 목숨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가치와는 어긋나는 가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qMdQBox15s

영화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휴게소 장면, 안톤 쉬거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는 장면이다.


안톤 쉬거는 기존과는 다른 가치를 상징한다. 영화는 안톤 쉬거라는 새로운 가치가 평화로웠던 곳에 나타나며 전개된다. 안톤 쉬거가 몰고 오는 변화를 다룬 영화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안톤 쉬거를, 또는 새로운 가치를 막으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막지 못하며, 안톤 쉬거 앞에서는 무력하다.  


노인은 지혜를 상징한다. 지혜는 지금까지의 세상에서 결정된다. 기존과 비슷한 상황에서는 지혜가 통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지혜는 통하지 않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것은, 안톤 쉬거라는 새로운 가치 앞에서 지금까지의 것이 통할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안톤 쉬거의 사건을 담당한 보안관은 영화 내내 무력하다. 사건을 방지하지 못하며, 언제나 한 발 늦는다. 이 보안관은 지혜로운 노인이지만, 안톤 쉬거를 막는 것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다.  


영화는 보안관이 꾼 두 개의 꿈을 이야기하며 끝난다.  


첫 꿈은 보안관의 아버지가 마을에서 보안관에게 큰 돈을 주셨지만, 잃어버리는 꿈이었다. 이 꿈에서 돈은 지혜이다. 보안관은 아버지에게 지혜를 물려받았지만, 그 지혜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돈과 같이 지혜가 더 이상은 쓸모없는 것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노인이 가진 지혜가 이제는 무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두 번째 꿈은 옛날로 돌아간 꿈이었다. 보안관은 밤에 말을 타고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좁은 오솔길을. 춥고, 땅에는 눈까지 쌓여있었는데 보안관의 아버지가 말을 타고 보안관을 앞질러 갔다. 담요를 두른 채, 머리를 숙이고, 횃불을 들고. 보안관은 추운 곳 어딘가에서 보안관의 아버지가 횃불을 밝히고 계시며, 자신이 그곳에 도달했을 때 아버지가 자신을 비춰주실 거라고 생각했다. 이 꿈은 해석이 모호하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고, 어떤 해석도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 꿈에서 중요한 부분은 옛날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옛날에 말을 타고 달릴 때 (삶을 살아갈 때) 눈까지 쌓인 추운 환경에서 (험난한 환경에서) 아버지가 먼저 가셔서 횃불을 밝혀주시던 때(지혜를 물려주시며, 그게 통할 때)가 있던 것이다. 두 번째 꿈은 지혜가 통할 때를 그리워하는 보안관의 심리가 드러난 꿈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변화 앞에서의 지혜의 무력함을 나타내는 영화이다. 코엔 형제는 이를 안톤 쉬거라는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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