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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Oct 17. 2024

너의 여름은 어떠니

해마다 여름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어. 클래식, 미녀는 괴로워, 수상한 그녀, 어바웃타임, 시간을 달리는 소녀, 맘마미아 같은.

짭조름한 바닷냄새와 따가운 햇빛이 알맞게 섞여 들어 마음속에 깊이 박힐 수밖에 없는 영화들이지.

이런 영화들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항상 추억에 잠기곤 해. 마치 꿈결에 젖은 것처럼.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가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다 보면, 나는 언제나 꿈에 대한 갈증이 심하더라.

내 맘속엔 크고 작은 굴곡들이 언제나 존재하고, 나는 모래성이 바스러지듯 그것들이 서로 서서히 녹아들어 평평해지도록 노력하고 있지.

특히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선 늘 목마름이 찾아오지만, 언제나 해갈은 서서히 이루어지니까. 내면을 감사로 채우는 방법을 서서히 배워가고 있어.


자주 나만의 말투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 사실 누가 듣든 상관은 없어.

생각하다 보니까 뒷감당 같은 건 필요없이 꿈만 꿨던, 내 스물의 일부분들이 조금은 부럽네.

그래도 알고 있어.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과거는 불안정했을 때가 훨씬 많았다는 걸, 결국엔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이어질 거라는 걸 말이야.


가끔 영원히 대학생으로만 남고 싶어. 좋아하는 것들을 걱정 없이 배우기만 하는 게 워낙 행복해서 말야, 하지만 계절은 오고 가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듯이 그럴 수 없는 날들이 서서히 가까워진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니 때론 피곤하더라도, 현실에 행복감을 느껴보려 해, 조금은 어렵겠지만 말야.


종종 노력해도 불안정한 감정들이 성큼성큼 들이닥칠 때가 있지.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밖의 검은 파도가 높고 깊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나를 안아주는 걸 느껴.


생각해 보면 사실 우리는 잘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하는 건데. 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릴 집어삼킬까.


잠식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면, 나는 생각과 음절들을 천천히 곱씹고 또 곱씹곤 해. 근처에 있는 분홍색 키보드나 보라색 노트를 꺼내 들곤 일부러 천천히 쳐다보다가, 씹던 것들을 천천히 한 글자씩 밖으로 꼭꼭 내뱉을 때면, 꼭 기분이 좋아지더라.

종종 이런 내가 밉지만, 어떤 모습은 나고 어떤 모습은 내가 아닐 순 없는 거잖니, 모든 모습이 차곡차곡 모여 나의 전부가 되는 거니까.


어느새 무덥고 후덥지근했던 공기가 가벼워지고 있어. 하늘은 높고 청명해지고, 잠자리가 날아들고 있고.

바람 사이엔 서늘한 기운이 잠깐씩 감돌다 스쳐 지나가는걸.

여름과 가을의 경계 사이에 서서, 나는 어렵긴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뎌 보고 있어, 생각보다 싸워야할 것들이 늘었지만, 우리의 발목을 옭아매려 하는 수많은 덩쿨들 속에서, 결국엔 우리가 헤쳐나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너의 여름은 어떠니, 변한 게 없는 것만 같아도, 사실 네가 지나온 작년의 여름과 이번 년의 여름은 확실히 다르잖아,

분명히 어떤 쪽으로든 잘 되길 바라, 너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말야.

사라질 것 같지 않던, 내내 뜨겁던 뙤약볕이 어느새 서늘해지고 긴긴 장마 끝에 맑게 갠 하늘이 우릴 반겨주는 것처럼,


나는 네가


결국엔


행복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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