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플로리스트, 첫 번째 이야기
2021년 3월, 꽃집을 열었다.
그리고 2022년이 되었다.
2022년이 시작되고 열흘. 우리 집 식탁 옆에는 여전히 2021년 달력이 걸려있었다.
여섯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간 교보문고에서 우리 가족은 '토이스토리' 주인공들이 달마다 눈을 댕그랗게 뜨고있는 달력을 구해왔다. 아들의 안목이었다. 2021년 연말, 코로나 확진으로 꼬박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들은 아빠와 디즈니플러스로 토이스토리를 본 모양이었다.
내가 처음 토이스토리를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장난감이 움직인다는 발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내 눈앞의 커다란 화면에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해낸 '기술력'에 감탄했다. 물론 그 어린 나이에 '기술력'이 무엇인진 몰랐겠지. 하지만, 영화에 가득한 정체불명의 힘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장난감들의 좌충우돌과 함께 흘러가는,
장난감들이 저렇게 매달려 지키려하는,
내 '시간'의 무게를 처음 느꼈다.
어린 내 앞에 펼쳐질 무한대의 시간은 버즈 라이트이어의 무한한 공간처럼, 아주 설레는 대상이었다.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4까지 나오고 나서도 한참 뒤,
2021년의 재이(3n살)는 꽃집을 열었다. 꽃집을 열었다고 쓰면 아름답기만한 문장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쓰면 느낌이 다르다. 이런 말들은 어떨까.
자영업을 시작했다. 어딘가 엄숙히다.
밥벌이를 시작했다. 왠지 지질하다.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다. 약간은 가식같다.
세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거창하다.
그런데 저 엄숙하고 지질하고 가식적이고 거창한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난 그저 꽃집을 열었을 뿐이지만 위의 네 문장도 삐끄덩 소리를 내며 함께 열렸다.
자영업자가 되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고 사업자용 카드와 계좌를 만들었다. 이 어려운 일을 이렇게 짧은 문장에 담을 수 있다니 억울할 뿐이다. 사실 결혼을 하고서도 은행이나 관공서 대기표를 뽑아볼 일이 거의 없던 내게, 아주 작은 일들도 모두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물며 밥벌이가 될 만한 가게 위치를 찾고 권리금과 보증금과 월세를 마련해 이체한 날은-물론 대부분 짝꿍이 함께해줬지만- 아득한 우주에라도 다녀온 듯 숨이 가쁘고 얼굴이 붉어졌다. 돈 쓰는 걸 참 좋아했는데, 이렇게 쓰는 건 너무 어색한 일이었다.
부동산 임대차계약서에 사인을 하던 그날 저녁, 처음으로 예감했다. 지금 출발하는 이 여행은 어쩌면 내게 되돌아갈 기회 같은 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여행은, 공간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뒤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제 계약서에 써있는 이 집의 문을 매일 열어야 한다.
어머나. 내가 도장을 찍었구나! 운전대를 내가 잡고 있는데, 이 여행은 멈출 수가 없구나.
부동산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계약서와 서류뭉치들을 한가득 들고 가게에 들어왔을 때,
차가운 공기가 휘감는 텅 빈 가게 안에는 짝꿍과 다섯 살 아들이 있었다. 짝꿍은 빠진 짐들을 정리하고 아들은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1년 내내 보게 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그렇게 꽃집의 첫날이 시작됐다. 집에 돌아오며 짝꿍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게 많을까?
...
나를 닮아 늘 빈틈이 많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짝꿍은 그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 무렵인가, 짝꿍은 운전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젊었을 때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흑과 백이 뚜렷했던 시절을 지나 막상 세상 속에 들어와보니- 무엇 하나 선을 그을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고. 그때 그렇게 쉽게 생각했던 것의 벌을 받는 게 곧 30대 이후의 삶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에야 짝꿍의 말을 다듬어보지만 나는 요즘 짝꿍의 말을 곱씹을 새도 없이 바쁘고 피곤하다. 연애할 땐 그 말들을 냠냠 먹으며 다정해지곤 했는데, 지금의 내게
명품이 아니라 다정(多情)이 최고의 사치다.
그래도 매출과 매입 숫자뿐인 이 시간여행에 조금의 사치라도 부려보고자
내 마음과 기억에 말을 걸어, 아주 사치스러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