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가 주저된다. 자신을 마주하는 글을 쓸 때면,
끊임없이 포장하고 합리화하려는 나와
그것이 영 못마땅한 또 다른 나 사이에서
나는 고개를 꺾은 채 웅크리고 만다.
한 방을 노리는 마음.
로또가 낙첨되었다고 땅이 꺼질 듯 숨을 내쉬는 나는,
'똑똑한 한 채'를 마련하지 못한 스스로가 못견디게 속상하다.
다들 여기저기 재테크도 잘한다는데,
나의 시작은 미미했고 그 끝은 처참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
윌리엄 스토너는 의자 깊숙이 몸을 늘어뜨린 채
숨이 꺼져가며 스스로에게 무수히 물었다.
나는 무엇을 바랐는가.
하지만 그는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영면에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는가.
예전의 나는 무엇을 바랐던가.
부끄러움을 알아버린 탓에 차마 더 풀어내지 못한 문장들이 입안을 맴돈다.
엄마가 곁을 떠났을 때도,
까맣고 촌티 나는 사투리에 때구정물 범벅이었던 '미자씨'를
몰아세우던 선생님의 독설도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친구 집에 우유 배달을 하시는 부모님을
존경하며 감사할 줄 알았던,
그때의 미자씨는 당당했다.
그런데 그 당당했던 미자씨가 지금은 형편없이 변해버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글을 풀어내지 못했던 이유를.
그럴듯한 메모들 속에 나를 속여 왔지만,
어린 시절의 미자씨는 지금의 미자씨가 못견디게 부끄러운 것이다
.
밀려오는 창피함 속에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품고 가게 안으로 들어설 뿐이다.
이 지독한 이중성. 어디까지가 진짜 나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나는 정말,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