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나의 친할머니께

by 진시율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

이미 다 늦어버린 이야기 같기도 하고,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도 이렇게라도 나의 마음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할머니를 떠올리며 글을 써.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지는 않아...

오류동의서의 시간들도,

그 집의 공기나 냄새도,

다 흐릿하게 번져 있는 느낌이지만.

일부러 지워버린 건지. 그냥 시간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지 잘 모르겠어.


그런데도 그 안에 할머니는 항상 있었어.

분명하게 떠오르진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처럼..


나는 어렸고, 할머니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

크게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았던 사람.

무던하고, 말이 많지 않았던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무던함이 나를 편하게 했어.


어떤 날은 아무 말도 없이 옆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었고,

어떤 날은 굳이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었어.


그래서였을까?

나는 할머니를 좋아했던 거 같아.

아주 많이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분명 좋아했던 사람이라도 말할 수 있어.


조금 더 커서는, 마음이 복잡했어.

할머니가 나를 대하는 캐도 속에서,

애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더 중요해 보일 때가 있었거든.

남자아이들, 남자들.

그 기준 안에서 밀려나는 기분이 들 때마다, 이유 오를 화가 났어.


왜 나는 덜 중요한 사람처럼 느껴져야 했는지,

왜 같은 손주인데도 무게가 다른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걸 이해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더 싫었던 적도 있어.


이해하려고 했던 건,

어쩌면 내가 할머니를 완전히 미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내가 다 커서는 우리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

같이 여행 가자고도 했고,

어디 가자, 뭐 먹자, 그런 이야기들.

가끔은 엄마 욕도 하고, 아빠 욕도 하면서 웃기도 했고.


그 시간들이 길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나는 할머니와 꽤 가까웠던 것처럼 느껴져.

그게 진짜였을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

지금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거 이상한 감정들이 남는 거 같아.

좋아했던 건 맞는 것 같은데,

충분히 사랑했는지는 모르겠고,

가까웠던 것 같은데,

정말 가까웠는지는 확신이 없어.


그런데 마지막 기억만은 너무너무 또렷해.

그래서 마음이 아파.


할머니가 너무 괴로워 보였던 그 모습.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그저 버둥이는 할머니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어야 하는 나.


그때의 아는 너무 무력하고,

무능력했고, 쓸모없었어...

지금 생각해도 그건 변명처럼 들릴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래서일까.

할머니를 떠올리면,

그 전의 기억들보다 그 마지막이 더 크게 남아.


조금 더 자주 볼 걸,

조금 더 말을 걸어볼 걸,

조금 더 손을 잡아볼걸.


이런 생각들이 계속 따라다녀.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계속 그런 생각들이 들어.


할머니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런데 한 가지는 알 것 같아.

나는 할머니를 그냥 지나가는 사람처럼 여기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는 건

아직 내 안에 할머니가 남아 있다는 거겠지.


그걸로 충분한 건지

아니면 너무 부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할머니.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나를

조금만 이해해 줘.


나는 정말 몰랐고, 못났고

서툴렀고, 무지했어.


그리고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웠어, 그리고 미안해요.


잘 가요, 나의 친할머니


수, 토 연재
이전 09화사_멀지 않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