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외할머니께

by 진시율

할머니께 제대로 된 편지를 써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난다..

할머니는 나의 엄마이자 아빠였는데.. 난 어쩜이리도 배응망덕했을까.


할머니.

나는 아직도 누군가가 “엄마”라고 부르면, 이상하게 할머니 얼굴이 먼저 떠올라.
나에게 엄마는 당신이었고, 아빠도 당신이었어.

어릴 때 나는 몰랐어.
그저 왜 우리 집은 다른 집이랑 다를까, 왜 나는 조금 더 힘들까, 왜 우리는 늘 빠듯할까.
그게 할머니 탓인 줄 알았어.
내가 사는 이 삶이 가끔 버거울 때면, 나는 속으로 원망도 했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고, 너무 몰랐던 마음이야.

할머니가 “밥만 안 굶기면 되는 줄 알고 미안하다…”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괜히 더 딱딱해졌어.
그 말 속에 얼마나 많은 미안함과 자책이 담겨 있었는지,
그때는 몰랐어.
할머니는 이미 모든 걸 다 주고 있었는데,
나는 자꾸 더 가지지 못한 것만 바라봤어.

내가 잠 못 이루던 밤,
등이 가렵다며 뒤척이던 밤,
불안해서 숨이 가빠지던 밤마다
할머니는 말없이 내 등을 문질러줬지.
그 손이 참 따뜻했어.
가려움도, 불안도, 세상의 모서리 같은 것들도
그 손이 쓸어내리면 조금씩 괜찮아졌어.

그때는 몰랐는데
그 손은 이미 늙어가고 있었더라.

요양원이 죽어도 싫다던 할머니를
나는 결국 요양병원에 모셨어.
그 선택을 할 때, 나는 너무 무서웠어.
내가 다 감당할 수 없을까 봐.
혹시라도 더 큰 일이 생길까 봐.
그래서 ‘안전한 선택’을 했어.

그런데 지금은 그게
내가 제일 비겁했던 순간처럼 느껴져.

10월, 그 어느 날.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심장은 같이 멈춘 것 같았어.
나는 계속 생각해.
내가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조금만 더 빨리 알았다면,
조금만 더 돈이 있었다면,
조금만 더 용감했다면.

그럼 할머니의 마지막은 달라졌을까.

나는 스스로를 불효녀라고 부르면서
벌을 주고 있어.
그런데 할머니,
솔직히 말하면
나는 끝까지 할머니를 사랑했어.
지금도 사랑해.

병원에 자주 가지 못한 날들,
피곤하다는 핑계로 전화를 짧게 끊은 날들,
내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외로움을 충분히 보지 못한 날들.

그 모든 날들 위에
내 사랑이 부족했을까.

할머니는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괜찮다.”
“너 잘 살면 된다.”

그 말이 나는 더 아파.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잘 사는 게 뭔지 모르겠거든.

하지만 하나는 알아.
내가 지금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건
할머니가 내 등을 문질러주던 그 손 덕분이야.
그 손이 내 안에 남아 있어.
내가 불안할 때면
이제는 내가 나를 쓸어내리면서
그 온기를 흉내 내.

할머니,
나는 불효녀가 아니라
사랑이 서툴렀던 손녀였던 것 같아.

나는 당신을 병원에 보냈지만,
버린 적은 없어.
나는 자주 가지 못했지만,
잊은 적은 없어.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진심이 없었던 적은 없어.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당신이 “밥만 안 굶기면 되는 줄 알고 미안하다”고 말했던 마음.
당신도 최선을 다했듯,
나도 그때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던 거야.

할머니.
나는 여전히 당신이 보고 싶어.
여전히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울어.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말해보려고 해.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당신이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등을 따뜻하게 문질러줄 수 있는 사람이 될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늦은 효도일 것 같아.


당신의 손녀가.

수, 토 연재
이전 07화삼_ 가족, 그 복잡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