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_ 가족, 그 복잡한 관계

by 진시율

_때로는 가족이 병.들.게하곤 해


나의 하루 모든 것이

무척이나 궁금해하던 엄마지만

막상 내 하루를 알게 된다 생각하면

결국 엄마가 상처받을 거라 걱정돼.


나는 하루에

나를 죽이고 있는 많은 감정들이 표출되니까.



자식의 독립이 두려워진다면

지금 본인의 걱정을 모두 뒤로 숨긴 채

자식에게 솔직하지만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대화를 신청해 봐.


만일 착각이라면 답은 나왔네.

자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

제.대.로





가족 사이

서로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



물론 자식도 엄마의 아빠의 사랑을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될 일이고

부모는 그 서운한 마음을 다짜고짜

분노 표출 방식이 아닌 대화의 방식으로

화만 내는 식이라면 서로에게 남는 건 상처뿐이니까.





자식의 독립이 두렵다는 이유로

자식이 본인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지 않고

부모의 말 한마디 상처가 짜증 난다는 이유로

서로의 감정을 무시하지 마.











_작은 상처들이 모여서



'말투'를 바꿔보세요.


본인의 말투가 바뀌었을 때

가족들은 생각을 해 볼 거예요.



기분이 좋지 않아 말이 이쁘게 나가지 않았어도

이제는 내 감정을 차분하게 말하고 대화를 해 봐요.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어요.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서로에게 줄 상처를 줄여 줄 수 있으니까요.


어찌 됐든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간절한 사람이 행동해야 하니까요.


자존심은 쓸모없는 상처를 만든답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알겠지,

하는 짓은 어리석은 짓이란 걸 알잖아요.



서로의 존중을 필요로 하는 관계지만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인 우리는 존중보다

상처를 주는 태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언제 마주할 줄 모르는 이별에 후회만을 남기는 일을 만들 거예요.




지금 그 '가족'이란 사이는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사이는 아니니까...


지금 그 '가족'이란 사이는

수 천년의 시간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닌 것을

결코 잊지 마세요.



"존중"없는 대화는

서로에게 소소한 상처를 남기고

상처들은 쌓여서 서로의 탓만을 하는

우울한 사이가 될 테니까요.










_언제나 아프더라.


엄마 말투가 그러더라

내가 태어난 게 인생에 제일 큰 오점이하고 이야기하듯.


상처가


나의 낮밤이 셀 수 없이 변해도

내 속에서 떠다니며 여기저기 상처가 된다.





지나가는 말들이 상처로 남아

매일 곪아가고 있을 때

내가 나를 위로해 보자.


내가 바라보는 내가

상처에만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상처를 곱씹으며 후벼 파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상처로 인해 상대를 원망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설마 그런 나의 모습이라면

그 모습의 스스로를 그냥 내버려 두지 마.










_제발 그만


책임질 거면

계속 그런 식으로 하고


책임질 수 없다면

적당히 독립하게 둬야지.




당신들 없는

세상이 온다면 홀로서야 하는데

당신들의 부재가

죄책감으로 남고 허무함으로 남으며

마음을 휘저으니까.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난다고

고요해지지 않으니.



영원히 책임 질 게

아니라면 독립하게 두었으면 좋겠다.


집을 정리하려고

물건을 다 내놨어.


내 물건은 아니지만

의사도 물어보지 못하고

버려지는 물건들을 보자니

나는 이제야 독립하나 생각이 들었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고

자시는 내게 이야기할 수 없고

저 물건들처럼 그렇게 닮아 가겠지.


이제는 정말 독립해야 할 텐데...




때때로 내가 원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이별이 있지.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그런 시기가 왔을 때

오래 아파하지 않으려면 홀로 설 줄 알아야 해.




세상이 생각보다 잘 돌아가 듯

나도 세상에서 생각보다 잘 지내야 하니까.


나의 그 그리운 마음조차

어느 순간은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는 날이 올 거야.





독립할 때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해서

"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같은 말은 하지 마... 서운함을 내포한 말이라고 해도

듣는 자식은 죄책감으로 또 자책하게 돼 끝없이...


그 말은 이제 이별 앞에서 후회만 남아 스스로를 아프게 해.











_알지만 너무 아픈 걸


보고 싶다고 볼 수 없고

좋아한다고 말할 기회도 잃었어.




다시는 내 곁에 돌아올 수 없지만

나름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홀로 미소 짓기도 하고


현실의 그리움이 증폭될 때도 있지.

그때 그 상처는 주지 말 걸,

싸우지 말고 그 시간에 좀 더 웃을 걸 하는 후회.


지금은 온전한 그리움만 남아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


나는 엄마가 이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날 줄은 몰랐지.




잘못했었다고

왜 나한체 그랬었냐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멀리 떠날 줄은

다시 돌아와 대화할 수 없는 만큼 멀리 갈 줄 몰랐지.


"보고 싶다"


이제는 곤기 중에 흩어지는 말,

보고 싶을 땐 그냥 커피 한 장 하러 가도 되었던 집




머나먼 훗 날 우리가

만나는 그날이 오면


내가 먼저 엄마에게 말하고 싶어.

사랑했다고 사랑한다고 잘못했다고.



꼭 다음 생애도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다음 생애는 좀 더 착한 딸이고 싶어.










_문득 떠올리기만 해도.


잘 지내다가 문득 생각나면

코 끝이 찡해지는 사람


여러분도 이렇게 찡한 사람이 있나요?


세월이 지나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됩니다.



지나가 버린 과거와 흘려버린 눈물

그리고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려 놀고 싶어도 돌릴 수 없지.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깨달음으로 변해 떠다닙니다.


보고 싶다는 언어로

수만 번 외쳐보아도


돌아올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그런 걸 원하지는 않을 테니

그저 내가 좀 편해지길 바랄 테니.



떠나간 엄마의 그 미소가 목소리가

나시 나에게 닿기를 엄마가 쓰건 휴대전화를 들어

동영상을 찾고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돌리고 돌려봐.



그리운 마음을 가지고 잠을 청해도

나타나지 않는 엄마는 잘 간 건지

아니면 날 보고 싶지 않은 건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 문득 미워져.


그때 먼저 움직였다면

엄마는 떠나지 않았을까?



그날, 내가 일찍 일어나서

엄마에게 갔다면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내 죄책감이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내 주변을 떠다니겠지.


가끔은 부정해 봐도

결국엔 문득 올라오는 기억들과 후회는 죄책감만을 남기네.



함께 가기로 한 여행지도

이제는 갈 수 있는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이

이제는 대화할 사람이 없어.











_어떤 날은 원망이 남아


내 나이가 10대일 때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언제까지나 가족이라는 존재가

영원히 함께이지 않을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기분에 항상 엄마나 아빠나 할머니가

떠날 때를 대비했던 거 같다. 항상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마 나의 평생 질문인

삶과 죽음에 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삶이 영원하지 않음을 일찍 받아들인 것 같다.




어떤 날은

엄마를 내 마음에서 죽여본 적도

아빠를 죽여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죄책감이 더 큰지도 모르지.

그런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면 엄마를

이렇게 일찍 떠나보내지는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든다.



서로 너무나 닮았던 성격, 외모, 습관 때문일까.

엄마란 나는 눈을 떠서 마주 보지 않을 때 빼곤

매일을 전쟁같이 싸우고 화내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가 닮아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도 나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았던 것들이

많은 걸 엄마는 과연 알았을까?


우리 집의 여왕이었던 엄마.

그 여왕 같은 엄마가 제일 미워하고 제일 아끼던 나.




그 마음을 알아서였을까?

나는 일찍 독립해서 자립하고 좀 더 멋있는

안정적인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 조급해서 이것저것 많이 했다는 것을 알까?


하지만 결국 이 나이 먹고도

안정된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내 버렸다.



이런 내가 불안했던 걸까?

아니면 이런 내가 한심스러웠던 걸까?

눈도 채 감지 못하고 간 엄마.




이제 나는 조급함에서 해방되는 것일까?

아니다... 나에겐 남은 가족들이 있다.

그들에게 빨리 안정된 나를 보여줘야 한다.

꼭 내가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가족이라서 이해해랴 하고

가족이라서 제일 편해야 하고

가족이라서 선을 지키지 않을 때도 많은 관계.

난 그게 너무 괴로웠던 거 같다.


가족이니까 배려해야 하고

가족이니까 서로 편하다는 말로 포장해

상처를 주는 행위는 하지 말았어야지.


가족이기에 서로의 선 과 역린은 건들지 말았어야지.

가족이니까 더 조심했었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나는 우리 가족이 조금은 버거웠다.



조금이라도 살이 붙어 보이면

몸매 지적을 하며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포장을 한다.


남들 이야기는 무조건 입발린 소리이며

외부에서 받은 칭찬마저 부정해 버리는 말

친척이 모일 때 제일 많이 불리는 내 이름

'가족이니까' 난 무수리가 되어야 했다.

내 공간은 엄마의 아지트고

나의 지갑 사정은 엄마의 비상금이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이해했다.




그래도 이렇게 가버릴 인연이라면

조금만 더 살갑게 굴걸

왜 그렇게 짜증만 내고 성질만 부렸을까.


매일을 그리워하고 혼잣말을 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허망한 마음에 열심히 살아가다가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와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이 모든 감정을 이겨내고 남은 가족을 위해 힘낸다.


나를 낳아 가족으로 살아간 시간이 행복했을까?

내가 엄마 딸이어서 엄마는 살만 했을까?










_받은 건 추억 • 배움 • 태도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나도 정말 많은 사람에게 잊혀졌을거야.


기억이란

다시 그 시절을 느껴보는 거야.

내 마음속에서 말이지.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건

그 시절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야.

삶이 해수욕장 모래처럼 그저 작은 틈으로 흘러내리 듯...



눈을 감지 말아요.

가버린 사람을 떠올리는 게 힘들다고

그리움의 마음이 들어도 못 본체하며

고개 돌리지 말아요.


그 그리움을 외면하는 일은

스스로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 모두가

힘겨워지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그리울 땐 곱씹어도 될 그 추억

그리울 땐 떠 올릴 수 있는 그 배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으니

이제야 그 마음을 그 마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네요.



아니.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때의 감정보다 상황을 보게 된 거겠지.



너무 늦게 알아버린 그 마음이 이제는 아쉽다.

내가 좀 더 일찍 얼었다면

이렇게 후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

후회하지 않았을까? 아니 확신할 수 없지.


이제는 괜찮아지겠지.

이제는 내 곁에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이지만 않는 것이라고...


내가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겠지

아픔에만 머문다면 힘들어지겠지

슬픔과 그리움에서 완전히 자유를 찾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봐야겠지.





내 오랜 친구이자 나의 엄마

우리가 만약에 훗날 서로 마주한다면

서로 마주 보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할 날이 온다면

삶의 시간들을 지낸 힘으로 모두 말해주고 싶다.


"나 어느 날부터 다 용서했어. 그동안 상처도 많이 좋아졌어.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미안해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마"라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라며 항상 말했다.

그 "배움"은 삶에 참 유용하다.




사람에게 치이고 버려진다고 한들

그 관계에서 나만큼은 사람 된 도리를 해야 한다고,

그러고 나면 나에게 좋은 날이 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할 기회가 주어지고

이전의 나에 비해 좀 덜 상처받는 법도 알았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가 언제나 나의 마음 같지는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미숙하다는 것이다.


내가 내밀었던 마음과

상대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관계에 왜 정답이 없을까?

반복되는 상처에도 나는 사람됨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찾은 관계의 정답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배움'이 있다.


배움 속에는 추억이 있고 태도가 있다.


뾰족한 말들로 나를 상처 줄 때도 있지만

그 말들 속에 '배움'이 있을 때가 참 많았다.


그렇게 좀 더 성장하는 일을 만들고

어른으로 성장하는 태도를 알 수 있고

확실히 무지 할 때보다는

많은 걸 지키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 슬픈 것은 조금 더 상처 주지 않고 알려줄 수 있지 않았을까?

깊은 상처를 어른이 되어도 흉터로 자리 잡아 사라지지 않고 낯선 순간 이따금 떠오른다.


인생에는 왜 정답지가 없는 걸까?

인생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수많은 행동을 검증받는 듯

소모되는 일생에 길잡이는 필요하다고 본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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