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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샤 pacha Jun 05. 2022

예술혼이 없는 예술 행위

 회화나 조각을 볼 때 감동이 없다면 무슨 까닭일까? 관람자 측면에서 감동이 없는 작품은 예술혼이 느껴지지 않아서이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다. 어떤 사람은 감동을 받아도 또 다른 사람은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취향 차이기도 하지만 보는 눈의 수준 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이 좋다, 멋지다, 훌륭하다고 느끼는 작품을 걸작이라고 부른다. 처음 보았을 때 좋다가도 자꾸 보면 시들해지는 작품이 있다. 반대로 보면 볼수록 더 좋은 작품도 분명 있다. 뒤의 예가 흔히 말하는 불후의 걸작품이다.

 

 20세기 초중반에 대가로 군림한 앙드레 드랭이라는 화가가 있다. 초기 드랭은 마티스 블라밍크와 함께 야수파 시절 색감이 돋보이는 신선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1910년대에 가까워지면 매너리즘에 빠지는 작품 세계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20년대 이후 더욱 퇴보한다. 드랭의 초기 작품은 몇 백 만 유로를 호가하지만 후기 작품은 몇 만 유로로 떨어질 정도로 태작이다. 야수파 시절 이후 드랭의 작품을 보면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명 어디서 본 듯한 형태인데... 누구 작품과 엇비슷한데... 창조적인 예술혼은 간 데 없고 기계적인 제작자의 손길만 느껴질 뿐이다. 그럼에도 젊은 시절 쌓아둔 명성으로 여전히 대가 대접을 받는다. 데뷔작 유명세의 후광이다.


 규칙적인 글쓰기는 한편으로는 부지런함을 부추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매너리즘으로 빠질 가능성도 높다. 정성들여 혼을 다해 쓰는 글이 아니라 손가락 끝에서 기계적으로 제작되는 글이 되기 쉽다.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글이 대표적이다. 회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글감을 찾아내려는 안간힘이 곧바로 드러난다. 정기적으로 서평을 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즘 인스타에 북스타그램으로 규칙적으로 글을 올리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좋아서 공들인 서평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출판사의 요청을 받아 주문 제작하듯 하는 서평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양식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틀에 박힌 글을 쓰기도 한다. 원문의 직접 인용, 간단 요약과 촌평 그리고 공감을 애원하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광고를 위한 글쓰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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