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헤매기 선수

by 파샤 pacha

습관은 정말 무섭다. 열한 시쯤 오전 일을 마치고 샹젤리제에 있는 외환은행으로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 생각 없이 1호선 플랫폼에서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런 방송이 흘러나온다. 일 분 뒤 샤토드뱅센행 첫 번째 기차, 오 분 뒤 두 번째. 이크, 반대 방향이잖아! 이 방향은 집으로 갈 때 늘 타는 쪽. 라데팡스행을 타야 하는데 집으로 가는 쪽에 서 있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미 타고 가다 내려 바꿔 타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기는 더 자주 생긴다. 이번엔 방송 덕분에 시간도 벌고 실수도 피했다. 물론 실수를 했다 치더라도 볼일 보는데 지장이 생기지는 않는다. 열두 시까지만 은행에 도착하면 되니까.


9호선에서는 반대편을 타고 가다 바꿔 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오스만 대로의 백화점 동네에서 좌표를 잘못 잡아서이다. 동쪽 서쪽이 가늠이 잘 안 되어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지른다. 세브르행을 타야 할지 몽트뢰이행을 타야 할지 거기만 가면 이상하게 가는 곳이 동쪽인지 서쪽인지 헷갈린다. 한국식품점 간다고 퐁드세브르까지 여러 번 갔다. 태권도 도장에 간다고 몽트뢰이까지 몇 차례 가기도 했다. 몽테뉴가에 있던 외환은행 간다고 9번선을 자주 타곤 했다. 파리 20구에 살던 시절 9번선을 늘 타서 익숙한데도 중간 지점인 백화점 동네만 가면 갈피를 못 잡는 건 무슨 조화인지. 지하에서는 좌표 설정이 힘들어서일까.


지하에서만 헤매는 게 아니다. 지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쏘로 이사 온 뒤 시테 위니베르시테르역에서 트람을 탈 때면 오른쪽으로 가나 왼쪽으로 가나 늘 알쏭달쏭 하다. 포르트 베르사유, 카르티에 데 푀플리에, 반브, 몽루주, 쟝티이… 일하러 가기도 하고 병원 진료나 검사하러 다닌다. 트람을 타고 보면 반대쪽으로 가고 있다. 어떤 때는 샤를레티에서 어떤 때는 포르트 도를레앙에서 내려 얼른 바꿔 탄다. 이 뱡향이 포르트 도를레앙인가 스타트 샤를레티인가? 집에서 올라온다고 치면 오른쪽이 중국 동네가 있는 동쪽이고 왼쪽이 샤를레티 구장 쪽이지. 처음 파리에 도착해서 국제대학기숙사 노르웨이관에 한 달을 살았고 그 이후 시테 도서관 이용한다고 적잖이 다녔다. 시테역에 내릴 때마다 남북을 가늠해 보고 머릿속으로 동쪽 서쪽을 판단하고 타지만 반대일 때가 반은 된다. 병원 약속을 하고 여유 있게 나섰지만 이렇게 반대로 탔다 내려 바꿔 타면 약속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게다가 처음 가는 진료소를 갈 때 대중교통에서 내려 다시 헤매기가 시작된다. 전화기에 내비게이션을 켜고도 반대로 가는 수가 적지 않다. 약속 시간이 코 앞인데 이렇게 될 때는 뛴다. 헐떡 거리며 뛰다 걷다 하여 겨우 진료소에 도착한다.


1841년 네르발이 처음 발광증세를 보인 곳과 가까이 있는 지도교수의 집을 찾아갈 때면 으레 난 9구의 복잡한 길에서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참 아리송하다. 길이 하도 여러 갈래로 나 있어 그런지 아님 방향감각이 떨어져서인지 알 수 없다. 라마르틴길에 있는 그 집으로 가려면 펠르티에역에 내리거나 아니면 카데역에서 내린다. 문제는 내린 다음 약속 시간이 늘 어두워진 겨울 저녁 밤눈이 특히 나쁜 나는 메트로를 나오기 전 주변지도를 통해 좌표 설정을 하고 걷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막상 그 집을 찾으려면 늘 멈칫거리곤 한다. 박사과정 재등록을 위해 인쇄한 결과물을 들고 면담하러 가는 길은 늘 부담스럽다. 더 이상 지도교수를 만나러 가지 않아 메트로를 나와서나 집으로 되돌아갈 때 방향을 잘못 잡을 일이 없다. 가브리엘 할머니 아직 살아계실까? 보니 선생님은? 보니 선생님께서 꼼꼼히 교정한 내 논문을 돌려보낸다고 하고선 아직 갖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3월 어느 날 집에서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를 향해 걸어가던 날이었다. 산기슭 범어동에서 학교까지는 삼십 분 너끈히 걷는 거리였다. 학교 갈 때는 주로 16번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이날은 무슨 까닭에선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마도 차비를 아끼려고 그랬지 싶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주로 걸어 돌아왔다.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 골목을 잘못 접어들었다. 복잡하지도 않은 야트막한 주택지대인 대봉동 골목길을 헤매다 콩죽 같은 땀을 흘리며 그 골목을 되돌아 나와 지각할까 봐 헐레벌떡 달음박질을 쳤다. 한 골목을 먼저 접어들었으니 학교로 가는 길이 나올 리 없었다. 한 박자 먼저하는 습관 때문에 늘 그르치는 게 많다. 주차할 때 보통 뒤차를 박을까 봐 먼저 들어가면서 다시 빼서 들어간다. 국민학교 시절 받아쓰기 할 때면 늘 다음 낱말을 지레 쓰면서 앞 글자를 빠뜨리기 일쑤였다.


대학 일 학년 늦은 봄날 야구시합을 마치고 뒤풀이로 술을 억병으로 마시고 과모임이 파해 자정 무렵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다. 걸음을 떼는데 앞에 보이는 아스팔트가 자꾸만 내 앞으로 솟아올라 가로막는 것 같았다. 기숙사에 사는 친구랑 둘이서 신림사거리에서 방향을 두고 서로 다투었다. 나는 한사코 시내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반대쪽이라고 빡빡 우겼다.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옥신각신 티격태격했다. 결국 친구의 의견대로 따랐다.

부천에 있던 반지하의 J의 자취집이나 사당동에서도 후미진 곳에 있던 K의 자취집도 그 친구들이랑 같이 가지 않으면 절대 못 찾을 게 뻔했다. 신림동 카페에서 만나 저녁을 보내고 헤어지기 아쉬워 동행한 삼선교의 H네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파리에 와서도 종종 반대쪽으로 좌표를 잡을 때가 자주 생긴다. 아무래도 공간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맨 처음 파리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되어 혼자 시내로 나갔다. 국제대학기숙사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루브르에서 내린 다음 걸어서 에펠탑을 가볼 양이었다. 에펠탑이 빤히 보이는 데서 저걸 못 찾으랴 하고 무턱대고 걸었다. 그런데 아무리 걷고 걸어도 에펠탑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데도 도무지 에펠탑을 찾아갈 수 없었다. 결국 포기했다. 그러고는 바로 가까이에 있던 역으로 들어가 기차를 탔다. 그게 메트로인지 아니면 RER인지도 모르고 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메트로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멋도 모르고 처음 RER를 탄 셈이었다. 메트로와 달리 내릴 때도 표를 집어넣어야 개찰구를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더욱이 내가 가진 표가 2 존 표였는데 2 존을 벗어나 내렸으니 삑 소리와 함께 빨간불만 표시되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자꾸만 표를 집어넣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내가 내린 역은 내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구조를 요청할 수도 없었다. 엄청나게 높게 설치되어 뛰어넘기 곤란한 개찰구에 머리를 처박으며 어찌어찌 뚫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가려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방향으로 타서 2 존을 쉽게 벗어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메트로가 아닌 C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내린 역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2 존을 바로 벗어난 Issy Val de Seine 아니면 Issy역이다. 역에서 내린 다음 다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발길 닿은 데로 마구 걸어갔다. 파리를 벗어난 줄도 몰랐다.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어떻게 되돌아가나. 파리는 지하철 역이 아주 촘촘하다니까 아무 데로 걷다 보면 메트로 입구가 나오겠지. 아무리 걸어도 메트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걸어갔다. 본의 아니게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다. 방향도 목적지도 없었다. 얼마나 헤매 다녔을까?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쉬지 않고 걸었더니 등골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나? 이 낯선 곳에서 누가 날 알아보고? 삼층에서 창문을 열고 손짓하며 날 불렀다. 아사드였다. 호경 형과 아파트를 나눠 쓰는 이란 친구. 그 전날 형네 집에서 하룻밤 묵어 막 안 사이였다. 어떻게 그곳으로 내 발길이 닿았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파리도 아닌 이시네물리노인데...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예닐곱 살 적 일이다. 고사 지내는 아버지를 따라 우리 동네에서 꽤 먼 ‘소올’ 동네로 갔다. 하얀 도포를 차려입고 두건을 쓴 집안 어른들이 무리를 지어 문중 묘사를 지냈다. 그 당시 우리 문중에서 고사를 드리는 곳이 크게 세 곳이었다. 첫 번째가 지일 아래쪽 선산인 ‘땅짜네’, 두 번째가 ‘소올’ 문중산, 마지막이 우리 동네 뒷산 너머인 ‘고기너머’ 산골짝이었다. 하루에 서로 상당히 떨어진 세 곳을 다니려면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거리였다. 두 번째 고사 지내는 산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쪽 등성이 저쪽 등성이 할 것 없이 우리 집안뿐 아니라 다른 집안에서도 고사꾼들이 붐비던 날이었다. 한 순간 우리 문중 사람들과 같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먼저 내가 있는 데서 위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우리 문중 사람들은 없다. 그다음 빤히 보이는 맞은편 등성이로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우리 집안사람들이 아니잖은가! 덜컹 겁이 났다. 하는 수 없이 무작정 산기슭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자락을 끼고 들판이 맞닿는 작은 길로 내려왔을 때 날 찾으러 오던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얼마나 겁에 질려 가슴을 콩닥그렸던지 자세한 정황은 다 잊었어도 해맑았던 그날의 공포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

내가 아홉 살 난 아들 녀석을 잃어버렸을 때도 바닥 모를 공포심을 느꼈다. 남프랑스 퐁뒤가르에서다. 둘이 언덕배기 위로 같이 걸어 올라가던 중이었다. 어느 순간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앞서가던 녀석이 홀연히 숲길로 사라졌다. 가다가 마주치겠거니 하고 나도 가던 길을 따라갔다. 대단하진 않지만 표지판이 알리는 구경거리가 있는 데로 가던 길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아들과 나는 꼭대기라면 어디라도 오른다. 시청이나 성당의 종탑, 성의 망루... 파리 성심성당의 돔, 마르세유의 언덕 위 노트르담 성당, 허물어진 성의 폐허가 있는 니스의 언덕,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종탑, 브뤼헤의 시청 종탑, 프로뱅의 세자르탑, 로카마두르의 성탑, 라로쉘의 무슨 성탑... 이날도 우리는 퐁뒤가르가 끝나 이어지는 언덕배기 어디메의 조촐한 유적을 보려고 걸어가던 중이었다. 간간이 사람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정말 한적했다. 그리 크지 않은 관목 수풀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 오솔길치고는 제법 번듯한 길이지만 길 양쪽으로 나무들이 빽빽해서 길 이외엔 다른 걸 볼 수 없었다. 같은 길이 아니면 지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들을 만날 거라고 믿고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볼거리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유적이었다. 워낙 하찮은 거여서 그게 뭔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하긴 아들이 없어진 사실에 놀라 다른 건 안중에도 없었을 테지만. 아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갈 만한 데는 모조리 가 보았지만 녀석은 흔적도 없다! 점점 더 불안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딜 갔단 말인가? 유괴당한 건 아니겠지. 더 멀리까지 가버렸나. 별별 생각이 다 그려진다. 이 넓고 나무 빽빽한 숲에서 어떻게 아들을 되찾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해서 제 엄마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을 때 녀석이 먼저 내려와 있었다.


자동차를 끌고 숙소를 찾아갈 때 지도를 연구한 다음 단번에 간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악의 경우는 하이델베르크의 호텔을 찾아갈 때였다. 숙소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지 믿은 게 화근이었다. 시내 중심 쪽에 있을 거라고 여긴 호텔은 시내라고 하기엔 무색할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그래도 휴대전화기 내비게이션을 철석같이 믿고 겁도 없이 출발했다. 시내구경을 다 마치고 성과 철학자의 산책로만 남겨둔 채 숙소로 향했다. 아뿔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내비게이션이 작동되는 듯하다가 먹히지 않았다. 이를 어떡한담? 내비게이션을 빌려왔어야 했는데... 상세지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도가 있잖아. 단순히 지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하이델베르크를 드나드는 간선도로와 지선들의 얽힌 정도가 아주 복잡했다. 게다가 공사구간도 적잖았다. 고속화도로를 빠져나와 방향을 잡고 한적한 시골마을을 찾아가야 하는데 도로 구조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었다. 같은 길을 적어도 스무 번쯤 돌았다. 투르드프랑스 마지막 날 파리 코스를 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자칫 길을 타다간 시내를 빠져나가는 꼴이 된다. 그건 어찌어찌 모면했지만 되돌아오면 다시 중심가로 가는 간선도로로 되돌아오길 몇 차례 되풀이 했던가? 처음엔 열을 받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다음엔 오기가 발동했다. 몇 번을 갓길에 정차하여 지도를 보고 좌표 설정을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급기야 지도 읽는 능력이 괜찮은 아들한테 지도를 넘겼다. 녀석이 나보다 훨씬 나았다. 그렇지만 한 번에 해결될 리 없었다. 그만큼 호텔은 도달하기 힘든 카프카의 성이었다. 한적한 마을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큰길로 다시 빠져나오려는 참이었다. 어디서 솟아났는지 나이 지긋한 인상 좋은 남자가 다가와서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도 프랑스말로!! 이런 데서 구세주를 만나다니. 파리에 6개월 정도 체류한 적이 있다고. 프랑스 번호판을 보고 선심을 베푼 거였다. 노신사의 길안내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호텔 위치나 대강의 방향을 잡긴 했지만 호텔에 이르려면 쉬운 일이 절대 아니었다. 아들은 자기 말대로 안 한다고 지도를 엄마한테 넘기고 우리더러 알아서 하라고 꼬장을 부렸다. 부아가 치밀대로 치밀고 짜증은 극에 달했다. 다시 내가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래도 얼추 위치 파악은 할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아무리 같은 길을 돌고 또 돌아도 호텔 가는 길을 아직 보이지 않는다... 미로 같은 낯선 마을 길들은 공사하는 곳도 많고 일방도 많았다. 아들을 달래어 조수 역할을 다시 맡겼다. 헤매고 헤맨 끝에 마침내 호텔 있는 동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휴 살았다! 밤새 헤맬뻔했는데... 호텔은 한적한 주택가와 길 하나를 두고 떨어져 언덕 중턱 외딴곳에 우뚝 서 있었다. 적지 않은 크기에 하얀색으로 칠한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다. 내부 시설이나 실내장식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언덕 위라 굽어보는 전망도 썩 좋았다. 저 아래에서 다람쥐 쳇바퀴를 골백번 돌았구나! 내비게이션을 통하지 않고 간략한 지도를 통해 찾기란 처음부터 지난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모로 가나 둘러 가나 카프카의 성에 도착하면 성공인데 도착하기 전에 진이 빠지고 혼쭐이 났다. 그래도 찾아온 게 어디야! 인간 승리다 인간 승리, 흐흐흐!!

아무튼 난 어떤 풍경이나 기억을 통해서는 길을 잘 찾지 못한다. 지도를 연구하고 좌표를 따져 길을 찾는다. 감각으로 길 찾다가 늘 헤매기에 이런 방법을 두고 스스로 논리적인 길 찾기라고 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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