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방문 후기 1

by 파샤 pacha

환경 문제에서 한국은 영락없는 후진국입니다. 국민 총생산 지표로 보아 세계 11위권(2017년 국내 총생산 기준) 경제 대국인데 말이죠. 2020년대가 넘어서면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와 거의 같아졌어요. 201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이 뜨겁습니다. 앞에다가 K만 붙이면 다 잘 됩니다. K드라마, K시네마, K팝을 앞세워 유행을 선도하고 최근에는 K뷰티까지 한국 문화는 지금 세계적인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칸 영화제에서 대종상을 수상함은 물론 빌보드 차트에서 넘버원을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BTS나 Black Pink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자 한국의 꽃미남 꽃미녀의 인기도 덩달아 상한가를 찍고 있습니다. 김치나 불고기를 앞세워 한국 음식 박람회도 활발히 열립니다.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대학에 한국어 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학원에서도 한국어 강좌가 개설된 지 오래고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강의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8년 전부터 일부 중고등학교에서도 한국어 과목이 개설되었습니다. 이와 발맞추어 대학입학 자격시험에서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30년 전 한국어 강습을 한 적이 있어요. 프낙 테른(Fnac Ternes)의 간부 여직원한테 몇 달 가르쳤어요. 20구의 우리 집과 5구 무프타르의 카페에서 강습을 했었죠. 이상하게 끝났어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유선전화로만 약속을 하던 때라 약속 장소에 배우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 뒤로 가타부타 연락이 없었어요.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전화해도 아예 받지 않았어요. 그렇게 친절하게 아양떨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안면몰수였어요. 5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받아 간 적도 있었는데 끝은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20대 말 30대 초반의 날씬하고 잘생긴 멋쟁이 파리지엔으로 자신만만하고 도도했어요. 두 살배기 아들이 있고 재혼남인지 남편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났어요… 이러고 보니 저는 한국어 개인 교습의 선구자네요.


오륙 년 전부터 루브르에서만 보아도 몆몇 직원들은 먼저 한국말로 « 안녕하세요. » «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겁니다. 심지어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엉터리 발음으로 새해 인사까지 건네더군요. 파리에는 한국 식당이 구석구석에 둥지를 틀었어요. 이미 2000년대 초 연변 동포가 운영하는 한국 식당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15구에 북한 사람이 하는 한국 식당도 있어요. 중국 사람이 주인인 한국 식당도 제법 됩니다. 글쎄, 맛은? 현지인을 겨냥해서 대부분 한국 식당의 맛은 퓨전입니다. 연변 동포가 하는 식당은 양념이 덜 된 듯 뭔가 부족하고 북한 사람이 만들어준 평양 냉면도 기대치에 못미쳤습니다. 90년대 말까지 네 개였던 한국 식품점은 이제 거의 동네마다 자리잡았어요. 이미 들어선 빵집이며 호프집, 라면집에다가 이 글을 쓰는 지금 2026년 한국식 카페며 김밥집도 생겨났죠. 재작년 마레 지구에서 팥빙수집까지 선보였어요.

한 가지 아쉽네요. 한국 서점은 누가 20여 년 전쯤 문을 열었다가 실패하고 아직 문연 데가 없어요. 물론 한국 문학 작품은 번역이 꾸준히 늘어나서 독자들 층도 더 두터워졌어요. 특히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한국 문학의 위상이 한층 올라갔습니다. 특이하게 한강 소설은 프랑스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북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합니다. 유사 이래로 한국이 이렇게 일류 선진국가가 된 것은 처음이지 않나요.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최고점에 이르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국 관광 상품 광고도 활발합니다. 한국에 거주 중인 외국인이 올리는 릴스도 심심찮게 봅니다. 그것도 한국말로. 한국 여행하는 외국인이 올린 관광지 소개나 한국 대학 졸업장을 받은 외국인의 인스타 사진도 종종 보았어요. 또 외국인이 추억의 80-90년대 한국 가요 선집까지 소개를 하더군요. 웬 복고풍! 요즘은 아마 레트로라고 하죠. 한마디로 한국은 전 세계인이 탐하는 인기 상품이 되었습니다. 70년대 일어난 일본 붐을 떠올려 봄 직합니다. 한류가 막 불어닥치던 즈음 정치학 전공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한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은 바로 한국인입니다." 선배의 말에 이렇게 대꾸하였어요. "한국이 경제 성장을 하면 굳이 광고 안 해도 제 발로 알아서 찾아올 겁니다."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보던 [대장금] 같은 한국 드라마가 인기몰이하기 시작한 시절이었어요. 2014년 한국 방문했을 때 비원의 가이드가 대장금의 주인공하고 고교 동창이라고 밝혔어요. 이영애 배우에 버금가는 우아한 미모의 도슨트였답니다. 언제부터 한국에서 도슨트라는 용어가 쓰입니다. 가이드라고 하면 될 걸 굳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어감도 별로인 도슨트를 고집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가이드보다 도슨트라고 부르면 격이 올라간다고 보는 걸까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흥청망청 물자를 소비하고 쓰레기를 엄청나게 배출합니다.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배달 배송으로 구입하면 쓰레기가 엄청 늘어나는 거 아시죠? 포장지 박스며 배달 음식의 플라스틱 용기는 다 환경오염의 주범입니다. 돈을 물 쓰듯 하는데 이 어마어마한 자금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나요? 가는 곳마다 식당이며 카페, 호프집들이 즐비하고 밤이면 업소마다 고객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코로나 때 이동이 힘들어서 생긴 게 아닌가 싶은데 맞나요? 최근 유행어 가운데 하나가 호캉스라네요. 호텔로 바캉스 간다는 말! 힐링의 시대가 저물고 호캉스 시절이 왔나요. 힐링도 아직 쓰이죠 아마. 맛집은 여전히 유행인가 본대. 제 일터인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면 코로나 전 아시아 관광객은 중국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는 한국 관광객이 중국을 앞질렀어요. 그야말로 한국은 소비 천국인데 정작 생산은 누가 하는지 궁금해요. 한국 다니다 보면 쉽게 마주치는 외국 노동자들인가요? 80-90년대까지 제조업으로 이름을 날리던 한국, 그 이후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들이 중국으로 넘어간 뒤 뭘로 버티는 걸까요? 재산 증식에 일등공신 부동산인가요? 주식이나 코인 투자인가요?


한국 도착 이튿날 바로 볼일 보러 나갔습니다.

대기 번호표를 뽑아 널찍한 소파 자리에 앉아 전광판을 보며 기다렸다. 동네 은행인데도 이렇게 크네. 프랑스 은행 지점은 카페의 바처럼 안내 데스크가 있고 고객이 편히 앉아 기다릴 공간은 거의 없다. 물론 볼일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기다릴 경우도 드물다. 으리으리하게 넓군. 번호표를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렸다. 이 번호표를 보면 체류증 사무실이 먼저 떠오른다. 대기실에서 빼곡히 앉아 제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앙토니 도청 사무실 풍경. 혹 내 차례는 언제 오나? 아직도 한참 멀었네. 어쩜 내 차례가 지나간 건 아닐까?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전광판을 뚫어져라 본다. 번호표를 내려다보고 눈을 들어 전광판을 훔쳐본다. 가져온 서류가 제대로 맞나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본다. 어떤 이는 책을 읽는다. 신문을 펼쳐 들기도 한다. 누구는 좁은 복도를 왔다 갔다 한다. 누구는 아래층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온다. 옆 사람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달팽이 시계인가? 왜 이렇게 느리게 바뀌나? 일대일로 마주하는 창구 앞에 가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진다.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새벽에 도착해서 몇 시간을 버티었나? 언제 그랬냐 싶게 볼일 보고 돌아가는 길은 발길이 가볍다. 도청 사무실과 달리 은행에서는 금방 내 차례가 왔다. 직원과 나 사이에 막힌 장막도 없이 바로 얼굴과 얼굴을 맞주하는 창구다. 참 인간적이다. 모든 게 간접화된 시대에 이렇게 쉽게 약속도 않고 대면 접촉 면담이 이루어지다니. 역시 서비스는 한국이야.


외국에 사는 사람인데 이런 이런 목적으로 통장 개설하러 왔습니다. 한국 주소가 명기된 주민등록증을 내밀었어요. 영주권 같은 거 있습니까? 네, 10년짜리 체류증이 미국으로 보면 영주권에 해당합니다. 체류증을 보여주었다. 통장 개설 조건을 더 잘 아는 사람한테 전화로 문의하더니 체류증을 가진 사람이면 재외국민 주민 등록증을 떼 와야 합니다. 외국에 나갈 때면 원칙상 외교부 출입국 관리사무소나 체류하는 관할 대사관에 재외 국민 신고를 해야 한다. 이것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나 자신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여태 하지 않았다. 체류증이 있다는 말씀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지만 이 사실을 아는 이상 그냥 계좌 개설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에 멀쩡이 주민등록이 살아 있는데 은행 계좌를 못 연다네. 금융 사범도 아닌데. 언제부터 이렇게 통장 개설이 까다로워졌나?


그다음 알뜰폰 개통 하려고 가까운 동네 우체국에 들렀다. 큰 우체국에서만 알뜰폰 취급합니다. 서현역 쪽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보세요. 가져간 소포 하나만 달랑 부쳤다. 좀 더 멀리 떨어진 큰 우체국으로 갔다. 도착한 때가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오후 2시부터 창구가 열린다고 한다. 언제부터 서비스 제공하는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지 모르겠다. 노동 조건이 눈부시게 개선되어서인가? 아님 자형 말대로 노조 입김이 세져서 그렇게 되었나? 그게 아닐지도 몰라요. 비정규직을 많이 고용해서가 아닐까? 다른 부서에는 직원들이 고객을 맞고 있었다. 아무튼 8년 4개월 만에 한국에 다시 발을 디디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누나네 집 근처 상가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쉬었다 다시 나갔다. 한 끼에 만이천 원이네. 유로로는 10유로도 안되지만 예전 한국 물가를 떠올리면 상당히 오른 셈.

같은 동네에 있는 같은 계열의 은행에 들렀다. 이번에는 거래 실적이 전혀 없으니 수입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 서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퇴짜군! 그래도 증빙서류를 가져가면 가능하다는 말씀. 오케이. 서류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큰 우체국에 다시 들렀다. 외국에서 인터넷 뱅킹 목적으로 알뜰폰을 만드려고 하는데 어떤 게 좋은 지 추천해 주시겠어요? 직원이 내민 상품 카탈로그는 짧은 시간에 훑어보고 결정하기에는 너무 다양했다. 한국이 언제 이렇게 되었나? 선택 폭이 이렇게 많아지다니… 직원이 추천해 준 상품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가격이 비샀다. 이거 안 되겠는 걸. 가입하면 결제는 어떻게 하면 되죠? 저는 지금 신용카드도 은행계좌도 없는데… 가입하려면 결제 계좌가 필요하고 본인 게 아닌 경우 가족 관계 증명서가 필요합니다. 젠장 전화 개통도 쉽지 않네!


이번에는 발걸음을 돌려 건강관리 보험 공단에 들렀다. 여기서는 군말 없이 1분 만에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오히려 관공서가 낫네! 완전히 허탕은 아니군! 볼일 두 가지는 해결했으니까. 어쩌면 운전면허증 갱신도 수월하게 넘어갈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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