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죽겠지 2

by 파샤 pacha

프랑스 생활은 사건 사고 없이 늘 조용하게 흘러간다. 가물에 콩 나듯이 모임에 참가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가는 일은 없다시피 하다. 친한 사람이 별로 없으니 사람 만날 약속도 드문드문한다. 가족생활이 전부다. 그래도 시간은 참 놀라울 만치 빨리 지나간다. 그러다가도 크고 작은 일들이 느닷없이 생긴다.


2019년 말 코로나가 터졌다. 언제 끝날 지 모르던 전염병은 22년 초부터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조자누룩 해지는가 싶더니 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염병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주요 원인이었건만 완전 반대다. 4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진행 중.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대형 테러를 저질렀다. 이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무차별 공격해서 양민을 학살하고 거주 지역을 초토화시켜 더 이상 살 지 못할 환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들을 이리 몰고 저리 몰고 짐승처럼 사냥하였다. 주택이 다 파괴되어 삶의 터전이 깡그리 사라졌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예전 삶의 기억을 떠올릴 수 없는 낯선 공간이 되었다. 오리엔트 쪽 전통이 그렇다. 고대적부터 한 나라를 침공하면 한 왕조가 다시 일어설 수 없도록 인간을 학살함은 물론이고 공간 자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아시리아 제국이 바빌론을 깡그리 파괴시켰고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를 폐허로 만들지 않았던가!


이제야 뭔가 갈피를 잡을 것 같다. 왜 이리 혼란스럽고 집중할 수 없는지를. 단순히 건강이 나빠서만 아니다. 만성 소화불량만이 집중력을 흩트리지는 않는다. 고된 일 때문에 피곤해서만도 아니다. 몇 달 전 이를 뽑은 뒤 생긴 이명 때문인가?


23년 10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하면서 세계관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은 지상군을 투입하여 테러 행위에 보복한다고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점령하고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유럽 국가 대표적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이 처음에는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을 무조건 지지했다. 테러에 대한 정당방위라고. 유일하게 처음부터 아이랜드만 규탄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복 차원이 아니고 인종 학살에 이르면서 대부분 나라들이 무조건 휴전할 것을 표방했다.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이런 반응이 나왔나? 인간이라면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이렇게 학살하는 걸 남의 집 불보 듯한단 말인가. 바야흐로 우리는 인간이 인간임을 포기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보편적 가치가 사라진 시대! 어디에 기대어 살아야 하나?


10월 중순 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욕실 바닥에 물이 새어 나왔다. 물 문제는 정말 큰일. 전날 내가 하수구로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샤워실 가운데 있는 장치를 분해했다. 어떻게든 막힌 걸 뚫어볼 셈이었다. 나사를 풀었다가 조이는데 무척 애먹었다. 고치려다 망가뜨리는 게 아닐까? 이미 두어 차례 분해했다가 조립한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조립이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끙끙거리면서 어찌어찌 성공했다. 그런데 이튿날 복도와 욕실 벽 아래쪽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진짜 고장인가?


어쨌든 매일 샤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머리는 대야를 갖다 두고 세면대를 이용하면 가능했다. 몇 번을 이사 나간 아들 집 욕조를 이용했다. 몇 달 살다가 다시 들어와서 난방을 끊어 놓은 상태였다. 샤워 장비를 챙겨 버스를 타고 싸늘한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10분쯤 걸리는 192번 버스 종점으로 걸어왔다. 세 번째 갔을 때였다. 내가 욕조 마개를 막았는데 아무리 해도 빠지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샤워를 하고 대야로 물을 퍼내어 변기로 버려야 했다. 설상가상. 욕조 마개는 결국 뽑지 못했다. 이젠 아들 집에 가서 샤워하는 것도 포기했다.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지. 대형 플라스틱 욕조를 구입해서 부엌 바닥에서 몇 차례 목욕 아닌 목욕을 했다. 완전 중세로 되돌아갔잖아! 목욕탕이 없는 시골에서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몸을 씻던 게 떠올랐다.


마침내 12월 초 초조하게 기다리던 정식 체류증을 손에 넣었다. 10년짜리를 갱신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제대로 넘어가리라고 믿었지만 가슴 한 구석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래 이게 프랑스에서 마지막 체류증 갱신이다. 만료되기 전 영구 귀국하자. 코로나를 겪으면서 정말 힘든 경험을 했다. 고국 가서 뼈를 묻자. 프랑스에서 프랑스 양로원에 들어가 프랑스 말로 의사소통하고 프랑스 음식 먹다가 죽기는 싫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이웃을 통해 들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중무장한 특공대원들이 총으로 유리창을 부수고 창문을 뚫고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 시민들이 벌떼 같이 국회 앞으로 집결하였다. 국회 안에 있던 사무처 직원들과 기자들이 집기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계엄 선포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3분의 2가 필요했다. 몇몇 의원은 국회 정문이 아니라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집권여당을 제외한 야당의원이 총 194명. 어쨌거나 여당의 이탈표가 필요한 상황. 가까스로 국회의 정족수를 채우고 여당 의원 몇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계엄 선포는 막아냈다. 가슴이 떨리고 울분이 치솟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JTBC 방송의 생중계를 컴퓨터로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되려나.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국내에 위태로운 소요 사태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계엄이라니!


20여 년 동안 한국 뉴스를 거의 접하지 않았다. 부모님 돌아가시고는 한국 방문이 의무감이 사라졌다. 이 사태가 벌어지고는 프랑스 뉴스보다 한국 뉴스에 더 자주 접근했다. 한겨레 신문, 연합통신, JTBC를 즐겨찾기에 두고 틈난 나면 들여다보았다.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열리는 탄핵 시위에 두 차례 나갔다.


물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인터넷 검색하여 기술자를 물색하고 업체도 알아보았다. 집주인도 괜찮은 업체를 소개해주었다. 아는 이한테도 전화번호를 받아 기술자와 연락을 취하고, 보험 업체하고도 번질나게 전화를 해댔다. 약속이 바로 빨리 잡히는 데가 없었다. 빨라야 1주일 뒤쯤이나 가능했다. 그러다가 인터넷 광고를 통해 어찌어찌 곧바로 기술자를 불렀다. 형제가 운영하는 업체인데 국적을 따지기는 그렇지만 성으로 보아 외국 출신이었다. 뭐 이런 손으로 하는 험한 일은 대개 다 그렇지. 처음 한 번은 아예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같은 사람인데 온다고 하고서는 약속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도착한다고 전화 연락을 주었다. 게다가 원래 정한 비용보다 훨씬 웃돌 수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취소한다고 했더니 전화통에 대고 길길이 날뛰며 갖은 협박에 욕을 퍼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지막 순간에 취소하는 게 어딨냐! 불법인 거 몰라. 경찰을 부른다. 말도 안 돼!" 포르투갈 출신의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부터 기술자와 연락할 때는 사기 치지 안 나는 의심부터 하게 되었다.

보험회사 직원이 검사를 하고 욕실 바닥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진단을 내린 터였다. 엄청난 공사에다 집주인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게 되었다. 벽이며 욕실 바닥 타일을 다시 깔아야 하는 대공사다.


12월 초 친한 부부를 집에 초대했다. 본인들이 사는 단독 주택 옆에다 손수 별채 건물을 지어 세를 놓는다. 집수리에는 도를 턴 사람이다. 하수구 막혔다고 이미 전화로 자문을 구한 터였다. 손님으로 왔는데 물 빠지는 장치를 분해하여 조립해 주었다. 조립할 때 나사를 하나하나씩 번갈아 가며 조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난 하나를 완전히 조인 다음 또 다른 나사를 조였는데 이게 잘못되었나? 물이 샐까 두려워서 우리는 샤워 꼭지 트는 것을 무서워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집주인도 와서 이 부분을 만지고 갔다. 이때 샤워를 틀었는데 물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아무튼 뜯었다가 다시 조였을 뿐인데 물이 새지 않았다. 지하실에 내려가서도 확인해 보았다. 그전에 아주 짧게 샤워를 틀면 지하실 천장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결국 내가 잘못 조립해서 사달이 났고 이웃이 고쳐 준 거였다! 보험회사 전문가의 감정은 완전히 엉터리였다. 욕실 바닥에 설치된 관이 파열되어 누수가 생겼어요. 와서 사진만 몇 개 찍고 문제의 부분에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25년 2월 17일, 절대 뗄 수 없이 달고 다니던 병마에 못 이기고 루나가 하늘나라로 갔다. 다섯 살 반, 사람으로 치면 스물다섯 쯤이다. 문을 열면 이 놈이 꼭 맞으러 나올 듯한 느낌이 사라지기까지는 퍽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그나마 보슬이가 있어서 슬픔을 누그러뜨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재발한 코로나, 백혈병, 빈혈... 귀에 고름이 흐르고 눈에 눈곱이 끼고 입에서는 진물이 움직이는 고드름처럼 드리워졌다. 말을 못 하니 아프다는 내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귀여운 천사! 수의사는 이빨을 전부 뽑아야 한다고 해서 다 뽑고 나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도 온 집안에 녀석이 묻혀둔 진물 자국 천지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공식 인정되지 않은 코로나 특효약을 구해 며칠 먹여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되었다. 마지막에 강제로 투여하던 습식 캔 세 개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이미 여러 바이러스를 끼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 먼 루마니아에서 장거리 이동을 해서 살겠다고 프랑스에 왔는데... 코로나에 걸려 우리가 돌볼 수 없어 협회로 돌려보냈다. 매일 주사를 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루나가 코로나를 이겨냈다. 두 살반이 된 까만 고양이를 입양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임시로 맡았다가 그놈의 정 때문에 입양을 하게 되었다.

내 가슴에 올라와 자다가 밀어놓으면 발치에서 자곤 했다. 책상 위에 올라와 컴퓨터에 앉기도 하고 포도주 박스로 만든 책꽂이 위 시계 앞에 앉기도 했다. 소리를 잘 안 내는 녀석이 제 입에 맞는 습식이나 추르가 나오면 "앵"하고 소리를 지른다. 특히 연어 구이를 하면 어김없이 날름 부엌으로 달려왔다. 식탁 의자에 올라와 고개를 식탁 위로 디밀어 올리고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연신 코를 갖다 대며 혀를 내밀며 입맛을 다시곤 했다.

애교 덩이 루나! 하지만 고양이들 사이에는 카리스마 폭발! 덩치가 보슬이의 반 밖에 안 되는 녀석이 기센 터줏대감을 두 달 만에 제압했으니...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밀어냈다. 2년 반 가까이 루나와 보슬이가 한 집에 살았건만 둘 다 워낙 개성이 강한 녀석들이라 끝내 잘 어울리지 못했다. 동네 고양이 폼은 와도 쪽도 못 피고 꼬리를 내리고 바로 줄행랑을 치곤 했다. 눈알에 힘 딱 주고 한번 째려보면 폼은 바로 뒷걸음질 쳐서 얼른 집밖으로 나갔다. 루나가 오기 전에는 몇 시간 머물다 가곤 하던 녀석이었다. 폼은 루나 온 뒤로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제 발로 나갔다.


그쯤 해서 보슬이가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혹 루나한테 전염병이 옮은 걸 아닐까. 더럭 겁부터 나서 동네 병원에 가서 피검사부터 해보았다. 다행 전염은 아니었다. 당뇨 판정을 받았다. 몸무게가 줄어들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창밖으로 점점 뜸하게 나가게 되었다. 하룻밤에도 서너 번 나가던 녀석이 나가도 바구니에 달아 내려보냈다. 올라올 때는 그럭저럭 안간힘을 다해 창문을 뛰어올랐다. 그러다가 바구니로 건져 올리게 되었다. 밤에 덜 깨우면서 편해지긴 했지만 한편 녀석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당뇨약 센벨고(Senvelgo)를 먹인다고 갖은 쇼를 다 연출했다. 녀석이 워낙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때는 상태가 좋은 거였다. 내가 녀석을 사타구니에 끼다시피 하고 앞다리를 제압하면 아내가 주사기로 주입시켰다. 발버둥을 쳐서 약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십상이었다. 저녁 아홉 시로 시간을 정했다. 이때가 가까워오면 우리 둘 다 긴장하였다. 어떻게 무사히 약을 먹이지. 영악한 보슬이 약 먹이는 시간이 되면 지레 숨어버렸다. 약을 먹지 않으려고 버팅기는 보슬이가 힘이 역발산! 제압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약을 입 안으로 넣을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목욕 수건을 방바닥에 깔고 녀석을 둘둘 감쌌지만 귀신 같이 빠져나갔다. 그다음에는 수건 없이 직접 녀석을 제압했다. 날이 갈수록 녀석의 기력이 떨어지면서 혼자 녀석을 끼고 입을 벌리고 먹여 센벨고 투입하기가 쉬워졌다. 이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닌데… 동네 병원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몸 무게는 점점 줄고 약을 먹이는데도 당뇨 수치가 오히려 올라갔다. 몸놀림이 점점 둔해졌다. 똑바로 일어서서 걷기 힘들어했다. (보슬이 이야기는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25년 6월 3일 대선에서 이재명 당선으로 한 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한국 뉴스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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