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죽겠지 3

by 파샤 pacha

3년 전쯤 일이다. 루브르에 출근해서 짐을 맡기려고 단체 사무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왼쪽을 택했다. 화장실 가기 전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었다. 접힌 작은 종이 쪽이었다. 돈이네! 이게 웬 떡! 마침 지나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7미터 전방 왼쪽 구석 안내 데스크에 여자 직원 한 명만 눈에 띄었다. 양쪽 화장실에서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모르는 척하고 얼른 집어 올려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두툼한 느낌이 들었다. 짐을 맡긴 다음 반대쪽으로 돌아 나오면서 접힌 돈을 꺼내보았다. 한 장이 아니었다. 50유로 한 장, 20유로 두 장. 무려 90유로! 지금껏 주운 액수 중 최고다. 50유로를 주운 기억이 나는데 90유로를 줍다니! 기록이네. 이래서 길 갈 때면 늘 땅바닥을 보면서 걷는다. 어떻게 처리하지? 여러 생각이 오갔다. 분실물 센터에 가서 맡긴다. 아니면 내가 갖는다. 분실물 센터에 맡긴다고 잃어버린 사람이 되찾아 갈까? 이미 방문을 마치고 루브르를 떠났을 텐데. 맡겨 보았자 결국 기부금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그렇담 내가 챙기자. 공돈인데 어떻게 쓰나?

아무한테도 돈을 주었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여러모로 머리를 굴린 다음 이렇게 결론 내렸다. 유엔 팔레스타인 구호단체에 기부하자. 나누어서 일부는 오리엔트 쪽 상황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보도하는 신문사에 기부하고. 이미 팔레스타인 난민구호 단체(UNRWA)나 OrientXXI에 몇 번 기부를 한 터였다. 상징적으로 90유로를 직접 은행에 가서 입금시키고 카드로 기부금을 지불했다. 전자에 60, 후자에 30.


많은 돈을 기부하지 않았지만 기부금을 신고하면 세금 공제 혜택을 받는다. 작년도 올해도 기부금 항목에 기부 금액을 기입하지 않았다. 많은 액수도 아니고 되찾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고. 25년 말부터 내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기부하기가 부담스럽다. 노숙자한테도 선뜻 동전을 내밀지 못한다. 프랑스 대중 식당 점심 한 끼(본식과 커피) 먹으려면 25유로 선인데 13유로면 해결되는 일본 라면집 히구마나 베트남 국수집 포14, 중국 식당 태동관도 슬쩍 피한다. 최근 들어서는 카페 바에서 커피 한잔도 선뜻 마시지 않는다. 조깅할 때 거리와 시간 측정하던 Running도 해지해버렸다. 운동을 하지 않게 되어 사용도 안 하면서 가입비만 지불하고 있었다. 이미 기부금으로만 운영해서 광고를 싣지 않는 신문 Mediapart 구독도 해지하였다. 이 신문사는 재정자립이 충분해서 기사를 자주 읽지 않으면서 구독할 이유가 없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올랐다. 24년 파리 올림픽이 열리면서 덩달아 물가가 뛰어올라 갔다. 이스라엘이 옆 나라를 침공하면서 또 물가가 치솟았다. 이란 전쟁 일어나면서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유로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너무 나빠졌다. 1400원 내외가 정상인데 지금 1730원대를 오르내린다. 내 수입은 원화로 받는데 생활은 유로화로 하니 한국 통장에서 송금을 받을 수 없다. 주택부금으로 부은 저금을 털어 쓰는 중.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흠.

영리한 젊은 친구들은 2년 가이드해서 집 산다는 말이 나오는데 25년째 이 업종에 몸담은 나는 내 집이 없다. 어쩌면 영원히 내 집을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 집 없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니다.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닌데 뭐.

25년 12월에 가까스로 생활비를 벌었다. 1월에도 겨우 생활비 정도 수입을 올렸다. 원래 12월과 1월은 성수기처럼 수입이 많은 달이다. 2월은 1월보다 수입이 눈에 띄게 줄었다. 루나가 떠난 지난 2월은 2월 치고 사상 최대의 수입을 올렸는데 자유낙하다. 3월은 집세만 겨우 벌었다. 올 3월부터 관리비 인상분을 적용해 집세가 1265,91에서 1288,91으로 올라갔다. 4월도 3월과 마찬가지다. 이럼에도 한국의 개나 고양이 보호단체에 몇 차례 기부를 했다. 개인이 운영해서인지 고맙다는 연락이 없다. 프랑스의 동물 보호 단체에도 기부했는데 역시 반응이 없다. 감사의 표시를 받으려고 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좀 그렇다.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단체나 OrientXXI은 계속 기부금 내라고 연락을 한다. 이젠 읽지도 않고 메일을 지운다.


25년 10월 27일(월) 드디어 오른쪽에 하나 남은 어금니를 뽑았다. 벌써 몇 년째 고약한 입 냄새 난다며 빨리 손쓰라고 마누라로부터 수천 번 잔소리를 들었다. 치과 의사 정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프랑스에서 좋은 치과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게다가 원하는 대로 빨리 약속 잡기도 쉽지 않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자! 내 금언대로 오늘내일하다가 몇 년을 버텼다. 마누라의 잔소리가 귀에 딱지가 앉고 나서 부스러진 지도 오래다.

실로 몇 년 만에 치과를 갔는지 모른다. 지금 흔들거리는 오른쪽 어금니가 일부 깨지면서 앙토니에 있는 치과에서 덮어 씌우고는 8년은 넘었지 싶다. 왼쪽 사랑니가 조금씩 흔들거리면서 그쪽에서 입냄새가 났다. 습관처럼 혀로 사랑니를 건드리곤 했다. 오른쪽 안쪽 어금니도 조금씩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21년 9월에 새날이 추천해서 부르라렌에 있는 치과를 갔다. 간호사 없이 의사 혼자 운영하는 치과였다. 스케일링을 하고 돌아왔다. 큰 문제가 없다며 일 년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뭐 그런대로 괜찮았다. 21년 10월 치통이 생겨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바로 이때 죽 이어오던 조깅을 그만두었다. 약속이 바로 잡히는 앙토니에 있는 치과 센터로 갔다. 발음을 듣자 하니 동구권 여자 의사였다. 필요한 몇 마디만 건네고는 검진을 마쳤다. 환자보다 의사가 말을 더 적게 하는 경우는 첨 보네. 여긴 안 되겠군. 22년 2월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쏘에 있는 치과를 갔다. 검사 결과 오른쪽 어금니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기간 중 수입이 거의 없어서 비용 때문에 좀 나중에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의 여자 의사가 운영하는 치과였다. 간호사까지 두고 규모가 제법 컸다. 파노라마로 찍는 장비가 최신으로 보였다. 그러면 우선 깊게 하는 스케일링을 해보자고 제안하면서 약 처방을 주었다. 진통제와 항생제였다. 그리고 다음 약속을 잡았다. 약속 날 갔는데 의사는 이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어금니 두 개를 다. 진통제와 항생제 처방이 이를 뽑을 때 필요한 처방이었다. 분명 나중에 발치를 하겠다고 밝혔는데 오해가 있었나. 그날 치과에 들렀을 때 고객과 의사는 좀 격앙된 톤으로 통화를 길게 하던 참이었다. 중간에 들어서 그렇지만 분명 치료에 이상이 생겨 항의하는 내용에 무마하는 답변 같았다. 결국 다음에 뽑겠다고 밝히고 치과를 나왔다.


그다음에 부르라렌의 치과센터에 약속을 잡았다가 취소하고 말았다. 요즘 곳곳에 생긴 의료센터는 여러 명의 의사들이 공동으로 공간을 쓰고 약속 잡기가 훨씬 편하다. 문제는 의사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의사들이 주로 일한다. 그리고 자주 바뀐다. 몇 년을 다닌 부르라렌의 안과센터가 그랬다. 보통 세 달을 기다려야 보통 안과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센터는 일주일 안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 부르라렌 안과센터를 몇 년을 다녔는데 그 사이 의사가 계속 바뀌고 처방을 준 안약(Ganfort)이 별 효과가 없었다. 4년 이상을 다닌 거 같다. 결국 26년 초 한번 간 적이 있던 안과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아내와 같은 날 약속을 잡았다. 3월 초에 안과 진료를 받고 안약 처방을 받았다. 전혀 다른 약이었다.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문제는 안압이 높아서인데 눈에 핏발이 서서 늘 눈에 뭐가 낀 것처럼 불편했다. 센터 의사가 처방한 약이 전혀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핏발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효과도 없는 안약을 4년 이상 투여한 꼴이다. 지금 많이 좋아졌다. 두 달간 안약 투여해 보고 안 되면 다른 해결책을 찾자고 했다. 다음 달 5월에 약속이 잡혀 있다.


24년 말 고르고 골라 쏘 시내의 치과에 약속을 잡았다. 오른쪽의 안쪽 어금니를 뽑기 위해서였다. 이미 흔들거린 지 오래였다. 아픈 게 아니고 악취 없애려고 뽑으려는 거다. 근데 치과 약속 바로 전날 스스로 이를 뽑았다! 혓바닥으로 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해서 어렵지 않게 뽑혔다. 돌팔이로 뽑은 어금니를 들고 코에 갖다 대어 보았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리 칫솔질을 열심히 하고 가글을 잘해도 냄새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 뿌리에 바이러스가 먹어 거기서 악취가 생겼다. 이를 뽑을 일이 없어졌지만 하나 남은 어금니도 제법 흔들거리는 참이라 어쨌든 검진이 필요했다. 그나마 빨리 잡힌 치과였다. 엄선해 고른 두 치과는 약속 날짜가 너무 멀리 있었다. 젊은 의사였다. 보조로 간호사가 있었다. 일본인 같았다. 부인인가? 아무튼 젊은 의사는 촐싹대는 어투에 말이 굉장히 빨랐다. 임플란트 가격까지 미리 알려주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어금니를 뽑아야 할지 아니면 간직할 수 있을지 그 방면 전문 치과에 가서 검사를 하라고 추천해 주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오라고 했다. 추천해 준 파리 9구에 있는 치과에 약속을 잡았다. 아주 예전 하나투어 사무실이 있던 거리네. 생트리니테 성당 오른쪽 길 블랑쉬 길을 따라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 장바티스트 피갈 길에 있었다.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발치를 해야 합니다.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쏘의 동료 의사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말투였다. 검사 결과를 동료한테 메일로 보낼 거라고 알려주었다.

결국 오른쪽 어금니 둘 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군. 우선 어금니를 뽑아야 한다. 이를 뽑는 것을 외과수술이라고 한다. 큰일이다. 잘못하다가 죽기까지 한다고 누군가 말했다. 치과 진료는 늘 이가 떨리게 겁나.


누구한테 뽑고 임플란트를 맡기나? 또 뒤로 미뤘다. 이러던 중 친한 사람이 알려준 치과로 가보기로 했다. 온 가족이 다 다니고 믿을 만하다고 했다. 특히 의사가 일반교양이 뛰어나서 아이들 어릴 때 가서 뭘 물으면 척척박사라고 몇 번씩 강조했다. 2028년에 은퇴한다는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임상 경험이 많으면 믿을 만하다. 임플란트는 이 의사의 동료가 전문이라고. 파리 14구에 진료실이 있고 유태인인데 현금으로 내면 진료비를 깎아주기도 한다고. 푸토 치과가 위치한 동네가 바뉴(Bagne)라 거리가 멀다. 거리가 대수냐? 좋은 의사라면 감수해야지. 자동차가 없는 나로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첫 번째 갈 때는 걸어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뭐 그렇게 힘들라고.

푸토 치과 약속 잡는 데 몇 달 걸렸다. 목요일은 닫는 데다가 인터넷으로 예약을 잡을 수 없고 전화로만 가능했다. 보조로 푸토 의사의 부인이 전화를 받는데 진료 중이면 통화가 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푸토 치과입니다. 목요일은 푸토 의사가 교육받는 관계로 닫습니다. 전화번호를 남겨 주시면 전화드리겠습니다. 응급의 경우는 이 번호로 문의하세요."

몇 차례 자동 응답기에 남겼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고.

액스앙프로방스로 내려가는 기차 간에서 푸토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감이 좋지 않아 다시 통화하자고 하고 끊었다. 이때 보슬이가 최악의 상태로 치닫던 날이었다. 미리 잡아둔 1박 2일의 여행을 취소할 수 없어 무거운 마음으로 떠났다.

대부분 의사는 기존 환자 아니면 잘 받아들이지 않아 약속 잡기가 더 힘들다. 어쨌든 아는 사람의 소개라고 밝힌 게 유효했다. 대기실이 없으니 시간을 잘 맞춰오라고 했다.


지도 연구를 자세히 하고 출발했지만 현실 지형과 지도로 살펴본 것은 늘 차이가 난다. 내비게이션을 켰다. 내비게이션을 보고도 지름길을 가지 못해 한 동안 우왕좌왕했다. 언덕배기로 올라가는 바뉴 시내 쪽은 차를 몰고 여러 차례 지나간 적이 있지만 길이 어지간히 복잡하지 않다. 여유 있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잘 찾지 못해 진땀을 흘렸다. 시간에 맞춰가야 하는데 늦으면 어떡하지.

딱 맞춰 도착! 큰 공원이 주변에 있었다.

나보다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의사였다. 파노라믹 사진뿐 아니라 정밀 수동 카메라로 곳곳을 세밀하게 촬영했다. 화면을 보여주면서 "반쪽이 바이러스를 먹어서 손을 써야 합니다. 반을 쪼개서 뽑는 방법과 온전한 반쪽까지 완전히 뽑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어쨌거나 임플란트를 하려면 완전히 뽑긴 해야 하지만요."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반을 쪼개 뽑는 것도 나쁘지 않고 완전히 뽑는 것도 좋아요."

알쏭달쏭하게 답해주었다. 임플란트를 할 때는 어쨌든 다 뽑아야 한다니까 "그럼 완전히 뽑는 걸로 하겠습니다".

항생제와 진통제 처방을 주면서 부인하고 다시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 예상대로 믿음이 갔다.


어금니를 뽑은 날 저녁부터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우선 항문에 통증이 생겼다. 발바닥과 다리가 저렸다. 왼쪽 귀에 이명이 생겼다. 수술한 이 부분은 별 탈 없이 아물었는데 다른 쪽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물론 수술 후 오른쪽 얼굴 부기는 며칠 갔다. 시간이 지나자 차츰 사라져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문제가 이명과 항문 통증이었다. 이를 뽑고 몇 주 후 11월에 다시 수술 상태를 점검하러 푸토 치과에 다시 들렀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스케일링을 해주었다. 일 년에 한 번 해야 한다고 답해주었다. 한국에서는 6개월에 한 번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시 올 1월에 치과에 다시 갔다. 왼쪽 아래윗니 일부 갈아내고 땜질 처리를 했다. 푸토 의사가 참 세심하기는 해도 손놀림은 좀 거칠다. 손재주는 한국인이 세계 최고다. 치과술도 한국이 최고다. 흔들거리는 왼쪽 사랑니는 23년 한국에서 뽑았다. 뽑는 듯 마는 듯 했다. 뽑고나서도 통증이 거의 없어 진통제도 먹지 않았다. 푸토 의사가 덜덜 소리를 내는 기구로 갈아내고 처치 하는데 이 뽑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솔직히 땜질 처치는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하고 나서도 이가 좀 시리고 이물질적인 느낌이 여태 남아 있다. 한국에서 땜질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임플란트 전문의 타이에브 의사를 추천해 주었다. 2월 10일에 예비 검사를 하고 2월 17일에 임플란트 시술을 했다. 임플란트 상태를 점검하러 5월 초에 갈 예정이다.


신경 쓰이던 치질 증세는 2월 말인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친한 사람이 추천해 준 파리 20구에 위치한 치질 전문 병원에 약속을 잡으려고 하다가 불발이 되었었다. 병원 사이트에 예약 신청을 해둔 상태였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제때 받지 못했다. 일하는 중에 전화가 오면 받지 못한다. 유선 전화면 의도적으로 받지 않는다. 대신 응답기에 남겨두었다. 그나마 친절하지 뭐야. 상태가 나아지면서 약속 잡을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그전에 치질 관계로 전문의를 찾아갔었다. 약속 빨리 잡히는 13구의 사립병원으로 갔다. 앙토니 사립병원과 같은 계열로 이미 비뇨기과 의사와 약속 잡고 간 적이 있다. 사립이 약속이 빨리 잡히기는 해도 맹점도 있다. 비뇨기과 의사는 대타였다. 항문 통증 때문에 간 거였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항문 통증을 알아보려고 소화기, 내분비, 암 수술 전문의로 그중에 항문병도 취급하는 의사를 찾아갔다. 직장 MRI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라고 처방전을 주었다. 내시경 검사를 위해 내과 전문의와 약속을 잡으려고 시도했는데 의사가 메일을 보내 메일로 의견 교환을 했다. 병원으로 오라고 해서 잠시 상담을 했다. 23년에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고 했더니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돌려보냈다. 한국에서는 2 년에 한 번 건강 검진을 하라고 권하는데 이쪽은 하겠다는데 돌려보내네. 직장 MRI 결과는 이상이 없었다. 일단 심리적으로 안심이 되었다. 한편 수술 전문 여자 의사는 12월 초에 약속을 펑크내고 그다음 연기해서 다시 잡았는데 또 연기라고 비서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좀 못 미더워하던 참이었는데 더 이상 약속을 잡지 않았다. 이 사립 병원하고는 땡이다. 약속이 빨리 잡히는 대신 비용이 공립에 비해 턱없이 세다. 사립이지만 공립 비용을 받는 생조젭 병원을 이용하자. 검사도 그렇고 검진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쪽으로 가자고. 이비인후 관련 MRI는 생조젭 병원에서 받았다. 비용이 사립의 6분의 1도 안되었다.


26년 2월 28일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 정권 교체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일. 아무런 명분 없는 전쟁이 이란의 기반 시설은 다 파괴되고 인명 피해도 엄청나게 나왔다. 때는 이때다 하고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테러 단체 헤즈볼라를 박멸한다는 명목으로 이란과 함께 베이루트 남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엄청난 인명피해는 물론 수 십만이 짐승 떼처럼 우르르르 피난을 떠났다. 자국의 안위가 위협받는다는 핑계를 앞세워 힘없는 나라를 무차별 공습하는 짓거리는 언제까지 갈 것인가? 신제국주의 국가의 신식민주의 정책을 직접 보고 있는 중.


아 좋은 소식도 들려온다. 4월 12일 헝가리의 국우 지도자 빅토로 오르반이 16년 간의 장기집권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물러갔다. 부라보 헝가리언! 새로 당선된 페테르 마자르 수상은 친유럽연합에 반러시아파이다. 세상은 이래서 공평한가? 늘 나쁜 쪽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아 그런데 이놈의 이명은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진다. 심장 전문의와 이비인후 전문의한테 검진하여 검사를 거쳤지만 결과는 다 정상으로 나왔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처방해서 생조젭 병원에서 받은 MRI 결과도 이상이 없었다. 이미 주치의가 몇 달 전 처방해 준 코에 뿌리는 약이며 귀에 넣는 약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처방해 준 먹는 약도 효용이 없었다. 이비인후과 의사가 보청기를 착용해 보라고 추천해서 보청기 업체에 들렀다. 어릴 때부터 오른쪽이 청력이 약해 장애가 있다. 이비인후과 보다 더 정밀하게 청력 검사를 하고 기구 설명을 자세하게 해 주었다. 보청기 끼고도 이어폰 사용이 가능할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늘 이어폰을 끼고 일하기 때문에 물어본 거였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3개월 테스트 기간은 무료고 그 뒤에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낮은 단계의 보청기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양쪽 합쳐 2910유로였다. 거기다가 충전기가 560유로나 된다. 지금 진행 중인 임플란트 두 개 가격이 3300인데 거기에 맞먹네. 아직 임플란트에 덮어 씌우는 비용은 남아 있다. 평생 이러고 살아왔는데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대꾸하고 일어섰다. 단 검사 비용은 받지 않았다. 들어설 때도 그랬지만 나올 때도 안내 데스크의 두 젊은 여자 직원이 친절이 뚝뚝 떨어지게 안녕히 가세요 하고 사이렌처럼 합창을 했다.

그렇다면 그냥 병을 안고 가야 하나.


4월 초 소파에 앉았다 일어서면서 허리가 삐끗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늘 겪는 일이라 별거 아니라고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차츰 나아지는 요통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나아지는가 싶더니 오히려 도졌다. 하루 동안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할 심한 통증이 왔다. 다행 이튿날 진통 소염제를 복용하고 통증이 약해졌다. "빨리 일반의를 찾아가 봐. 괜히 병 키우지 말고. 다른 증세일지도 몰라. 인공지능한테 물어보니까 허리디스크와 비슷해." 내 주치의는 약속이 멀리 있었다. 아내가 찾아준 가장 빨리 잡히는 일반의와 약속을 잡았다. 몸 상태가 그래서 월요일과 화요일 일은 다른 사람한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 일 없는 철에 일을 놓치다니! 지난번 살던 집에서 다니던 동물 병원이 있는 쪽에 진료실이 있었다. 이리 움직여라 저리 움직여라. 제깍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영어로 할까요?"하고 두 번씩이나 핀잔을 주었다. 첫 반응이 프랑스말 잘하시네로 시작해 놓고선 이게 뭐야. 처음 마주하는 환자한테 지도 아프리카 출신이면서 고압적인 말투로 틱틱거렸다. 대기실에 갔을 때 기다리는 환자나 다음에 도착하는 환자 모두 제3세계 출신이었다. 엑스레이 촬영 처방과 이미 갖고 있는 바르는 약(Diclofénac)과 진통제 처방을 받고 진료실을 나오면서 기분이 상했다. 바로 이틀 뒤 내 주치의한테 자리가 나서 약속을 잡았다. 내가 내세운 원인 분석에 반박을 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별거 아니에요. 포마드(Diclofénac) 바르고 아프면 진통제 드세요. 환절기나 일교차가 큰 거하고 관계없어요. 운동하세요, 운동. 조깅으로 안되고 배드민턴이나 탁구 같은 운동 말이에요." 이때는 상태가 많이 나아지기도 했고 주치의가 해주는 말에 안심이 되어 진료실을 나섰다.


양말도 제 손으로 못 신던 것이 이젠 거의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혹 이란 전쟁이 끝나면 이명도 사라지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한 시 바삐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늘 이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죽겠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