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방문 후기 3

by 파샤 pacha

또 전에 없던 요양병원 간판이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고령화 사회임을 알리나요. 출퇴근 시간대를 벗어나 분당에서 전철을 타면 딱 두 부류만 보여요. 젊은 층과 노년층. 중간층을 보기 참 힘들어요. 한국 사회를 떠올릴라 치면 늘 흑백 둘로 나눠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중간은 없나요? 분쟁 지역에서 완충지대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그런 중간 지대가 없을까요?


3월 중순 바깥 기온이 25도를 넘지 않는데 전철과 버스에서 벌써 냉방을 하더군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팔을 움켜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겨울에도 방 안 온도가 27도 수준이더라고요. 그러니 더워서 늘 잠을 설칩니다. 이번에 시차 적응이 더뎠던 것도 이 때문일지 몰라요.


우리네 조상이 물려준 금수강산은 편리함과 유용성을 앞세워 뚝뚝 자르고 마구 깎아내리며 걸핏하면 터널을 뚫습니다. 대한민국 곳곳이 피칠갑되었어요. 난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들 길이 잘 뚫려 빨리 이동할 수 있다고 자족합니다. 살풍경한 주변에 꽃나무가 무더기로 강제 이주된 양 심어져 있습니다. 산자락을 깎아 세운 아파트 숲 사이로 일부 남은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진달래가 옹색하게 핍니다. 벚꽃, 개나리, 수양버들, 심지어 세콰이어까지 가로수로 등장했더군요. 굳이 외국 수종을 길가나 숲에까지 심어야 할까요? 생각 끈이 짧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당한 선진국으로서 한국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지금도 외국 것을 선호해야 할까요?


분당과 판교, 서울 주변을 오가면서 아직도 남아 있는 한국 풍경은 거대한 아파트 건물들 사이로 산자락에 초라하게 자리 잡은 산소였습니다. 산을 깎아 아파트 숲이 들어선 한편에 용케 살아남은 무덤이 더러 보입니다. 대구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변 산기슭에도 주변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산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도 조상숭배 전통은 죽지 않았나 봅니다.


폭이 어찌나 넓은 지 길 한번 건너려면 몇 분을 족히 기다려야 합니다. 이건 보행자뿐 아니라 운전자도 동시에 겪는 어려움이지요. 사람도 차도 움직이지 않는 죽은 시간대가 존재하는 듯 보여요. 신호 체계를 바꾼다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장흥에서 돌아오던 밤 친구가 판교에서 내려주었다. 전철을 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바로 가까이 버스 정류장이 보이길래 노선도를 통해 한참 방향 연구를 했다. 웬걸 서울로 달리네! 노선도를 통해서는 올바른 방향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판교에서 서울까지는 서는 정류장 없이 직행이다. 첫 정류장인 순천향 병원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야 분당으로 가는 방향인데 건너는 방법은 바로 가까이에 전망대로도 손색이 없는 엄청난 높이의 육교다. 저 계단을 어떻게 올라간담. 그래도 엘리베이터가 있군. 아 차라리 판교 오기 전 동행이 내렸던 사평역에서 내릴걸. 바로 가까이 신분당선으로 연결되는데… 서울에서 판교까지 구간은 고속도로라 무척 빨리 달린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자극성 강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술도 별로 안 마셨는데. 내렸을 때는 참기 힘들 정도로 속이 불편했다. 괄약근에 온 힘을 주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급한 김에 잠시 뛰어보기도 했다. 내가 가는 아파트 단지에 가려면 큰길을 건너야 한다. 오른쪽으로 두 번 퇴짜 맞은 은행이 보이는 넓은 도로다. 달리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빨간 불이었다. 그냥 신호 무시하고 건널까? 다들 얌전하게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데. 이젠 내용물이 쏟아질 것 같다. 그래도 신호를 기다렸다. 이렇게 길 수도 있나?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휴 용케 집까지 무사하게 왔다.


예를 들어 전철의 배차 간격을 두 배로만 줄여보세요. 지옥철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테고 혼자 타고 이동하는 자가 운전자도 그만큼 줄 게 뻔합니다. 그와 동시에 대기 오염도 줄어들겠지요. 전철 플랫폼에서 목 빼고 기다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출퇴근 시간대를 벗어나면 10분 이상 기다릴 때가 대부분이죠. 기다리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도착한 기차를 타면 전철 안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게 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배차 간격을 짧게 하여 이용자가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고 전철 안의 환경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자연 안내 방송으로 우려하는 « 과도한 신체 접촉 »도 당연히 피할 수 있을 거예요. 출퇴근하는 이용자의 시간 낭비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파리 쪽의 운영 실태를 본다면 이쪽 역시 출퇴근 시간대를 벗어나면 배차 간격이 뜸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서울처럼 터무니없이 오래 기다리는 배차 간격은 절대 아닙니다. 이 경우 열차의 차량을 줄여 운행해서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방법도 씁니다. 제가 주로 이용하는 RER B선의 경우 출퇴근 때 배차 간격은 2-3분을 넘지 않습니다. 사람이 꽉 차오는 열차를 피하려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면 몇 대를 보내고 타곤 하죠. 그만큼 자주 다닌다는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 타는 파리 한 복판 레알역에서는 내리는 사람이 많아 앉아 올 때가 대부분입니다. 소비자가 왕으로 군림하는 한국에서 대중교통 이용자가 쓰레기처럼 버려져서는 안 될 텐데…


얼마 전 삼 주 동안 한국을 방문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문제점들입니다.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환경 문제는 절대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대구에서 출발, 대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고 올라오던 날 서울역에 내려 바깥으로 나왔을 때 숨 쉴 수가 없었어요. 시야를 완강하게 가로막는 빌딩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가슴이 갑갑해 걸을 수가 없었어요. 대기 오염은 너무도 심각한데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습니다. 미세 먼지를 옆 나라 중국 탓으로만 돌릴 뿐 정작 자신들은 대기 오염을 줄이려는 의지가 전혀 없어 보여요.


한국에 있는 삼 주 내내 소음에 시달렸습니다. 어디 가도 소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전철은 물론이고 식당이며 카페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식당에서 마주 앉아 대화하려면 고함을 지르고, 카페에서조차 상대방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버스 안은 조용했습니다. 심지어 아파트 안에서도 동 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보내는 방송을 들어야 했어요. 아, 이건 예전부터 있었지요. 무슨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고 아직도 관공서에서 전시 체제처럼 방송을 내보내는지, 참. 그뿐인가요? 외교부에서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무책임한 문자를 일방적으로 보내요. 시위가 있으니 파리로 여행 가는 분은 주의하세요.


그 가운데 전철 안의 소음은 그야말로 역겨워 죽을 거 같습니다. 우선 열차 자체가 내는 소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파리에서 조용히 이동하는 메트로를 타다 굉음 내는 서울 지하철은 참기 힘들더군요. 장황한 역 안내 방송에다 이젠 광고 방송까지 하더군요. « 어디 어디로 가려면 몇 번 출구로 나가세요. » 그 출구란 게 서울 시내에서는 적어도 열 개가 넘으니 이런 광고도 할 만하죠. 잠시도 귀를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내릴 역 안내 방송, 화면으로 표시되는 안내, 그러고 실제 역에 적힌 표지판 이렇게 모두를 참조해도 신경을 곤두 세우지 않으면 내릴 역을 쉽게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안내 방송은 소음에 묻혀 한국 사람인 나도 잘 알아듣기 힘들고, 천정이나 문 위에 달린 화면 표시는 사람들에 가려 잘 보기 힘듭니다. 역 구내에 표시된 역 이름, 출입문 위에 붙은 전철 노선도는 너무 작고 복잡하여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도 찾기 힘들더군요. 물론 휴대 전화기에서 참조하면 되죠. 그럼 전화기가 없고, 있어도 노선도를 깔지 않은 사람은 어떡하죠.


어마어마하게 넓은 역 구내에는 안내 창구나 직원이 없고 표 파는 기계만 덜렁 놓여 있습니다. 물론 역무원을 호출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처음 서울에 발을 디디는 외국인이나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너무나 비인간적인 환경입니다. 분명 전철 운영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인데 이용자가 다 알아서 해야 하니.


단 한 가지 서울 지하철의 편리함은 역마다 화장실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만은 세계 최고입니다. 게다가 시설도 좋고 깨끗합니다. 한국 전철 화장실 만세! 값싼 인력에 힘입어 가능하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젊은이들이 환경 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 젊은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물론 환경 운동은 주로 좀 먹고살만한 선진국에서 합니다. 2020년대 들어 분명 한국은 1인당 국민 소득으로 보면 당당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환경 문제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입니다. 아는 사람과 만날 때면 어김없이 환경 운동 좀 하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돌아오는 반응은 아예 없거나 아주 미온적이었습니다. 오염이 심해도 마스크만 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무튼 한국에서 보는 얼굴은 다 좀비처럼 마스크 낀 모습이 표준입니다. 심지어 조깅할 때도 어떤 이는 마스크를 끼고 뛰더군요.


배달겨레라고 하는 한국인은 같은 핏줄로 우리말을 쓰는 한 동아리를 강조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라는 공동체의 정체성도 정체성이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한편 평균 또한 추구합니다. 이게 자칫 특색 없는 균일성으로 빠질 수도 있어요. 게다가 유행에 참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남이 하는데 내가 따라 하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이번에 가서 눈에 확 들어온 것 중 하나가 출입 유리문의 자동화였습니다. 이용자가 모를까 봐 자동문이라고 써 붙여두었더군요. 누르면 미닫이로 스르르르 열리고 닫히더군요. 또 한 가지는 변기였습니다. 앉으면 따뜻하게 데워주는 변기 받이가 집집마다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거의 엇비슷한 아파트 출입문은 예전부터 그래왔어요. 그뿐입니까? 버스 정류장 앉는 자리에도 전기선을 깔아 데워주더군요. 사람이 이용하지 않을 때도 전기가 흐른다면 분명 낭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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