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 방문 후기 2

by 파샤 pacha

둘째 날

오전 건강 검진을 받기 전 의사 면담이 필요해서 판교에 있는 미래내과에 들렀다. 지금까지 가까운 누나네 집 근처를 빼면 자형이 전속 운전사로 활약하셨다. 혈압을 재고 검사에 필요한 시약을 받고 의사로부터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들었다. 마중 나온 처형과 처제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이때부터 만남의 시작이다. 처제는 볼일로 자리를 떴다. 대신 카페에 합류한 큰 처형네 맏딸과 함께 점심 식사하러 갔다. 엄청나게 큰 통유리창으로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으리으리한 호텔이었다. 이번에는 조카가 운전사였다. 시설도 깨끗하고 전면 유리창 밖으로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온통 아파트가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음식은 깔끔하고 종류도 많았다. 교사 시절 스승의 날이라고 학부모회가 초대해서 간 남산 자락의 호텔 뷔페가 떠올랐다. 처형 칠순 생일이라고 큰딸이 초대한 거였다. 식사 후 처형집으로 가서 차를 바꿔 타고 장모님 댁으로 향했다. 그 동네 식당에서 장모님이 사주시는 저녁을 먹고 처형의 운전으로 분당으로 되돌아왔다. 하루에 기사만 세 번씩 바뀌었네!


셋째 날

먼저 수내동 동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 등본을 뗐다. 전산화가 잘 되어 있어 발급받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직원한테 해외 거주 주민 등록 증명서를 어떻게 떼느냐고 물어보았다. 외교부 출입국 사무소에 가셔야 합니다. 그러고 복사집에 들렀다. 마이리얼트립 정산 서류를 인쇄하기 위해서였다. 수입 증명할 제출 서류로 필요했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맥북을 들고 다녔다. 누나네에 있는 프린터가 잘 연결되지 않아서였다. 복사집 직원한테 사정 사정해서 겨우 인쇄를 할 수 있었다. 복사집은 이용자가 직접 연결해서 인쇄하게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매킨토시를 많이 쓰지 않아서 연결이며 사용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구비 서류를 들고 혹시나 하나 누나네 가까운 하나은행에 다시 들렀다. 서류를 들이밀며 사정사정을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내 참 더러워서. 프랑스 영주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가 이 꼴이네.

이튿날 건강 검진을 위해 금식을 했다. 화장실을 줄 불나게 드나들며 드르륵드르륵…


넷째 날

9:30. 예정대로 미래내과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먼저 흉부 엑스레이를 찍었다. 초음파 검사도 했다. 그다음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 초음파 검사에서 감지된 대장 끝에 있는 용정 하나를 떼내었다. 2주간 금주입니다. 당장 오늘 저녁 동기들과 숙대 앞쪽에서 보기로 했는데. 입원 환자를 돌보듯 다시 나온 처제와 처형의 호위를 받으며 처형네로 갔다. 수면제를 먹고 누워 잠을 두 시간 정도 잤다. 시계를 맞춰두고 잤지만 그보다 일찍 깨었다. 낯선 공간에서 점심으로 처제가 사준 흰 죽을 혼자 먹었다. 처형은 볼일 보러 외출하고 없었다.


처형이 알려준 대로 아파트 앞 큰길을 건너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한국 온 지 닷새 만에 드디어 서울 입성! 시청 쪽에서 내렸다. 빌딩 숲에 가려 어딘가 어딘지 통 알아볼 수가 없군! 숙대 앞이 약속 장소인데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 시청역은 1호선과 2호선이 있는 역. 내가 파리로 떠나기 전까지는 5호선까지 개통되었는데 그 사이 새 노선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지하로 내려갔다. 지금까지 분당 쪽에서 이동할 때는 주로 승용차로 이동했으니 교통카드를 쓸 일이 없었다. 젊은 시절 12년 반을 서울에서 살았건만 이젠 너무 낯설다. IMF로 강제 귀국하여 서울에서 2년 살다 프랑스로 다시 떠난 지도 22년이니. 2002년에 두 번 2007년에 두 번 다녀갔다. 2015년. 그리고 8년 만에 다시 왔다. 일 년 만에 가도 어리둥절하다는데 이렇게 뜸하게 오면 당연 외국인이지. 말은 통하니 그나마 다행.


교통카드는 어떻게 사나? 창구가 있겠지.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도 창구는 없다. 직원이 앉아 있는 표 팔던 창구는 온데간데없다. 기계로 사야 하는 모양.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다가 가까스로 판매기를 찾아냈다. 노는 공간이 이렇게 넓구먼 왜 창구를 없앴지? 다들 척척 충전을 하고 카드를 갖다 대고 지하철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해결했다. 카드를 잘못 갖다 대었다가 다시 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아 이거 힘드네!

남영역에서 내렸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짜식들이 중심가를 두고 왜 이쪽으로 정했지? 숙대 쪽은 처음 오는 걸. 음식점 이름이 붕이네집이다. 주소와 주변 약도는 카톡으로 받아 갖고 있다. 멀지 않은 덴데 어디로 가야 하지? 도무지 좌표를 잡지 못하겠네. 국제전화 요금을 물지 않고서는 내 전화기로 지도 참조할 수 없는데… 한국 전화기가 없으니 도무지 불편해서. 요즘 세상에 휴대전화기 없으면 인간도 아니네.

멈칫멈칫 고민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도움을 청해보자. 골목길 언저리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젊은이한테 구조 요청을 했다. 다행 친절하게 본인의 앱을 통해 참조하더니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20대 청년한테 고마움을 표했다. 다행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다.


첫 번째 만나는 사람들은 대학 동기들. 언제 만나도 허물없는 역전의 용사들. 줄어든 머리숱이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기가 늘어났어도 분위기는 그 시절 그대로다. 2주간 금주라고 했는데. 세현, 창호, 병일 셋은 이미 와서 마시는 중이었다. 음식은 거의 동이 났고 요리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었다. 나를 뒤이어 송렬이 나타났고 마지막에 스타로 현애가 왔다. 누가 새로 올 때마다 요리를 더 시켰다. 먹을 만한 것은 그다지 없었다. 금주라고 했지만 안 마시실 수가 있나!


« 켄터키 치킨 치킨 오비 맥주! » (때밀이 소년)

« 창밖의 여인 » (조용필)

« 너네 하나님! » (유일한 기독교 신자)

« 아휴 저 밥창화 » (불평분자)

« 오늘 오전에 건강 검진받았는데 용정 두 개 떼냈다. »

« 나도 지난번 용정 네 개 떼냈어. 별거 없어. »

« 일산에 산다고? »

« 출퇴근 때 많이 막히지 않아? »

« 아들만 셋이라고? 야, 힘들었겠다. »

« 주식 계속해? 태상이는 잘 있고? »

« 같이 살지. »

« 인천 친구들하고 친했잖아? 미숙이 하고 또 누구였지?»

« 경희. 한국 나오면 만나지. 며칠 뒤에 보기로 했어. »

"혜정이, 교장되었다는데."

"윤종이도 선출제 교장에 입후보해서 됐다더라."

« 거래처 약속 때문에 오늘밖에 안 됐어. »

"사장님이 되더니 역시 바쁘셔."

« 요샌 신문도 안 봐. 그냥 일에만 신경 써. »

« 낮에 딸내미 병문안 갔다 왔어. 그거 집안 내래기다. 여기 우리 손자 아이가. »

« 작년 홍천에 갔을 때 83 모임에 길혜가 왔지. »

"홍천?"

"창호가 은퇴하고 내려가려고 땅을 샀어."

"역시 부부교사는 재벌이야."

"동네 사람들한테 일단 막걸리 한잔 돌렸어."

« 길혜, 옷 디자인 한다는데, 그림도 그리고. »

« 다 길혜 좋아했잖아? »

"싹싹하고 예쁘잖아?"

« 아 그때 좀 취해가지고… »

« 난 아니야. »

« 은하, 혜경이 몆몇은 오늘 집회 나갔다. »

« 수아는 안 와? »

« 오늘 나오라고 했는데… 내가 연락해서 함 만났지. 잘 지내더라. »


자정이 가까워 오는 시각 2차 장소인 호프집의 열기는 더해간다. 거의 모든 고객들이 대형 스크린을 보며 환호를 지르고 왁자지껄하다. 세계 야구 경기 중계를 하는 모양. 리버풀의 펍이 그랬듯이 이제 한국도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함께 보는 게 주된 오락거리가 되었나 보다. 요즘 밤 문화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들었는데 와 보니 그게 아니네. 여전한데. 아무래도 분당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라 일어설 생각이 없는 녀석들을 두고 먼저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서울역으로 와서 분당 가는 좌석 버스를 찾는데 진땀을 뺐다. 예전에 버스 정류장이 있던 데가 아니었다. 서대문 쪽 정류장을 헤매다가 남대문 쪽으로 건너갔다. 어찌어찌 버스 서는 데를 찾아냈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도 버스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아직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적잖다. 전에 없던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시간은 적게 걸렸다. 물론 이 시각에 막힐 리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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