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무게를 느낀 하루

함께 있고 싶지만, 늘 함께할 수는 없는 자리

by 딸들바라기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일요일이었다.


아이들과 공원에 가서 벚꽃을 구경하고, 둘레길을 걷고,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봄 햇살 아래서 아이들은 마음껏 웃고 뛰어다닌 후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기 위해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리로 했다.


큰아이가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몇 시에 올 수 있어?”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손을 다쳐서 지금 응급실 가는 중이야.”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놀란 마음에 여러 번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많이 안 다쳤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응급실이 집에서 멀어 당장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답답한 마음에 전화로만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몇 바늘 꿰매고 다시 일하러 가서
마무리를 하고 오겠다는 말에
나는 그 말이 야속하기만 했다.


결혼 14년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남편이 일하다가 응급실에 가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라 많이 놀랐다.


20년 넘게 한 직종에 몸담아 온 그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그날따라 더 크게 와닿았다.


“다쳤는데… 그냥 치료받고 집에 오면 안 돼?”
내 말에 남편은 예민해진 목소리로
짧게 “알겠어.”라고 답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전화를 해보니

정형외과 의사가 없어 내일 오라는

말만 들었다고 했다.

그저 소독만 하고 주사 한 대 맞고 온다는 남편이다.


나는 응급실에 주치의도 없는 병원 시스템이
너무 답답해 남편에게 그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뒤늦게 식당에서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제발… 주말 하루만이라도 쉬면 안 될까.”
“나도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보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 나는 조심스럽게 직업을 바꿔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보기도 했다.

예전에도 수없이 직업 변경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한 곳에서 20년 넘게 일해왔기에
쉽게 바꿀 용기가 나지 않는 듯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랜 시간 쌓아온 자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내 마음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아빠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질까 걱정된다고 말하자,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듣기만 했다.


그 침묵 속에서
가장의 무게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면서도,
그의 삶이 얼마나 무거운지
조금은 알 것 같은 하루였다.



가장이란, 아파도 멈추지 못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그 무게를, 오늘에서야 조금은 더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