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는 해방되었다, 그런데 구미호는?
마녀란 개념은 중세의 잔인한 여성혐오적인 종교범죄 마녀사냥 제도로 인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소수의 여자들을 제물 삼아 다수의 평온을 찾는 공리주의적인 병폐기도했다.
이러한 마녀개념은 낭만주의시대의 미학을 거저 신비성과 미학적 상징성을 얻었다. 낭만주의 작품에서 마녀는 마법과 신비의 아이콘이 되어 대중에게 닿았다.
오늘날 마녀는 마법소녀물이란 장르가 되어 페미니즘, 여성서사와 접목되곤 한다. 마녀의 표면적인 성별은 물론 마녀의 역사에 얽힌 여성혐오적인 맥락까지도 현대의 페미니즘에 의해 해체되고 여성서사로 재구성되기 딱 좋은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여성혐오 범죄에서 시작된 개념은 여러 역사적인 맥락을 거쳐 여성서사의 대표적인 심볼 중 하나가 되었다.
마녀가 이렇다면 구미호는 무엇일까?
구미호를 신성한 존재로 해석하는 전승이야 분명히 있다,하지만 가장 유명한 구미호이자 가장 상징화기 많이 되어온 구미호는 어디까지나 중국 고대국가 은나라의 요부인 '달기'이다.
구미호 달기의 이미지는 명대 신마소설 <봉신연의>의 파급력에 힘입어 중국 본토에 널리 퍼졌을 뿐만 아니라 조선에도 퍼져 그 자체가 <소달기전>으로 향유되기도 하고 <이화전> 같은 여우요부담을 파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에선 <타마모마에>와 융합되고는 에도시대 요괴문학의 정수로 떠올랐다.
달기를 빼고 구미호를 말할 수는 없다. 달기의 고향인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구미호의 뿌리는 달기 이야기다. 심지어 구미호 전승의 역사적 연계성이 비교적 약한 한국에서도, 달기 이야기에 담긴 여성에 대한 공포와 멸시는 한국 구미호 설화와 미디어 속에 알게 모르게 녹아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봉신연의>의 달기는 구미호지만 초월적인 권능을 지닌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봉신연의> 속 달기는 주왕의 권력에 철저히 의존하는 인물이며 자체적인 마법능력이나 전투능력은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 달기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건 어설픈 책략과 미모뿐이다, 그것으로 왕에게 아첨하고 왕권을 어지럽히며 달기는 고전적 팜파탈로서만 기능한다.
즉, <봉신연의>의 달기에게 붙은 구미호란 상징은 여성을 향한 멸시와 두려움이 간악한 여우의 이미지와 결합한 것에 불과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미호란 정체는 권능 보단 낙인에 훨씬 더 가까웠다.
이런 달기가 신적존재다운 특출난 권능을 얻은 건 달기 이야기가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의 일인데 이는 다다음 문단에 자세히 후술 하도록 하겠다.
<봉신연의>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도 중국사람들은 달기를 구미호로 낙인찍으며 달기를 은나라의 몰락 원인으로 지목했다. <봉신연의>는 그런 민간에 돌던 인식을 문자화 한 것이다.
이런 달기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은 여러 갈래로 갈리지만 한 여자가 제국의 체제를 몰락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견해만큼은 통일된다.
즉, 구미호 낙인찍기는 고대 중국판 마녀사냥이었다. 한 체제붕괴의 원인을 모조리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시켜 체제를 안정화하는 수법에 여성혐오적인 관념까지 배어있었다.
하나라가 망한 원인은 말희, 은나라가 망한 원인은 달기, 주나라가 망한 원인은 포사. 중국의 고대 국가들은 하나같이 제국이 망한 이유를 다 여자 탓인 걸로 덫 씌운다. 구미호 달기는 이중 대표주자다.
마녀란 개념을 변모시킨 중간과정이 낭만주의 시절 마녀문학이라면 구미호란 개념을 변모시킨 중간과정은 일본 에도시대 때 정립된 요괴학의 <백면금모구미호>였다.<백면금모구미호>는 전술한 일본의 여우요부담 <타마모마에>와 <봉신연의>가 융합한 결과물이다.
기존의 전승에선 은나라의 몰락과 함께 죽었던 달기가 <백면금모구미호> 전승에선 은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를 망하게 한 뒤에도 죽지 않고 다른 나라로 건너가는 생명력을 얻었고 일본의 군대와 맞서 수만의 병사들을 무력화하는 무력적 권능까지 얻는다. 단순한 경국지색에서 '최강의 요괴'로 도약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 있는 남자에게 아첨하여 나라를 망치는 요부라는 여성멸시적 이미지는 여전히 달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서 부각된다.
전술한 대로 낭만주의란 중간과정을 거친 마녀는 결국 현대에 도달해 여성영웅적인 심볼로 탈바꿈하였다. 하지만 구미호는 이러한 중간 과정을 거친 뒤 어떻게 되었을까?
현대 미디어는 마성의 존재에게 권능을 부여했다. 마녀도 그렇고 구미호도 그랬다.
일본의 구미호는 '나라를 망조로 모는 경국지색'에서 '자체적으로 나라를 망하게 할 힘이 있는 초월적 괴수'로 탈바꿈한다.
한국의 양상은 약간 다르지만, 일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국의 구미호는 '인간에게 핍박받는 미물'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인간을 초월하는 신적존재'가 된다.
그런데 이 탈바꿈과 탈피가 이루어지자마자 구미호는 남성영웅 서사의 심볼로 흡수되는 이상한 양상이 발생한다.
초월성을 얻은 구미호는 남자영웅의 힘의 원천이 되고 구미호남성은 권위 있고 멋지며 수동적인 여성을 구해주는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구미호의 탈여성화 및 남성화가 '젠더프리의 추구'라는 견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매우 안일한 생각이라 본다. 구미호는 성별의 자유를 얻었을지 몰라도 구미호란 낙인으로 멸시받아온 여성성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미디어에서 남성 구미호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는 동안 아직도 현실에서 어르신들은 여우,불여시,심지어 구미호란 단어를 약아빠진 여자를 칭하는 멸칭으로 쓴다.
구미호의 탈여성화는 성 평등을 위한 성 관념의 전환이 아니다, 오히려 구미호의 역사에 내재된 여성혐오적인 맥락은 싹 다 무시한 채, 구미호가 권능적인 존재가 되자마자 그 상징성을 남성의 것으로 만들려는 상징의 탈역사화와 가까운 모양새다.
여성 구미호를 주체적으로 그리려는 현대매체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몇몇 작품은 여성 구미호를 단순한 유혹자에서 벗어나 욕망과 권능을 지닌 존재, 혹은 인간성과 초월성을 오가는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캐릭터로 묘사하곤 한다.
물론 구미호처럼 신비롭고 이질적인 이미지를 여성에게 부여하는 것 자체도 여성 대상화의 한 방식이란 것도 알고 있다. 안일한 태도로 현대적인 여성 구미호를 창작하고 향유하며 대상화하는 건 자칫하면 또 다른 형태의 미소지니를 낳을 수 있다.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미디어 속에서 남성 구미호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건 남성을 신비롭고 매혹적인 존재로 대상화하고 싶은 여성들의 욕망이 거리낌 없이 드러난 결과이자 여성이 보다 능동적이고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단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단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여성멸시의 상징이었던 구미호가 재해석을 거치며 단순한 유혹자나 경계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신적이고 초월적인 이미지에 가까워지자마자, 슬그머니 구미호란 상징을 남성 캐릭터의 속성으로 귀속시켜 버리려는 양상이 뚜렷해진 건 이상한 것을 넘어 약간 기묘하기까지 하다.
오늘날의 수많은 여성 문화 향유자들은 초월적 권능을 지닌 여성 구미호에 이입하여 컨텐츠를 향유하는 것보단, 초월적인 힘으로 여자를 지켜주는 ‘멋진 남성 구미호’를 대상화하며 컨텐츠를 향유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이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구미호에 얽힌 여성혐오적인 역사적 맥락을 지우거나 무시한 채, 현대 미디어가 얼마나 자주 구미호를 권위 있고 초월적인 남성의 상징으로서 제시해 왔는지가 반영된 약간은 씁쓸한 결과다.
구미호를 남성영웅서사의 상징으로 차용한 창작자들이
악의적으로 구미호의 역사와 그 속의 여성혐오적 맥락을 지우려 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너무 익숙하게, 너무 쉽게,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는 심미성과 동양적인 색채가 뚜렷한 코드를 가져다 쓰며 별생각 없이 젠더클리셰를 비튼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인 왜곡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그런 안일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미 보편화된 남성 구미호 코드와 그 향유자들을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랜 역사동안 여성혐오와 여성멸시의 맥락으로 이어져온 구미호란 상징이 권능을 얻는 순간 곧바로 역사적인 맥락을 지운 채 남성의 상징으로서 소비되는 현상에 대해, 작은 속삭임으로라도 경계하고 싶었을 뿐이다.
구미호가 남성 서사의 심볼로 채택되는 흐름을 막을 수도 없고, 그럴 권리도 내겐 없다. 다만, 나는 서사 창작자들과 향유자들에게 한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싶을 뿐이다.
역사의 맥락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길 중 하나를 받아들이는 일에 불과하고 이미 열린 길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이미 열린 옆에 길 조심스레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펫말을 놓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제시하는 길이 정답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답은 오직 미래만이 알 것이다. 다만, 과거를 되짚고 과거의 실수나 폐단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쪽이 조금 더 정답에 가깝지 않겠냐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해 본다.
여성 구미호 서사는 단순하고 진부한 성별 클리셰가 아니다. 여전히 질문할 지점이 많고, 다시 쓰일 가능성이 열려 있는 소재이다. 나는 그 오래된 상징 위에 새롭지만 고전적인 이정표를 살짝이나마 제시하고 싶을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