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by 춘동

코로나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 우리는 단순히 바이러스만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사회가 병들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뎠고, 어떤 이는 우울에 잠식되었다.


내가 처음 우울을 마주한 것은 21살 무렵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늘 바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으니, 이번 방학만큼은 원 없이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는 방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먹고, 자고, 가끔 볼일을 보러 나가고, 다시 방에 돌아와 쉬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을 쏟았다. 내가 무슨 병에 걸린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팽배했다. 나 역시도 스스로가 아프다는 걸 알았지만,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부정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무력해졌다.

숨이 가빠지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치 100m 전력 질주를 한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방학은 단 2주 만에 정신과 방문이라는 결말을 맞이했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심신이 원래도 불안정했던 터라, 이번 기회에 한 번쯤 가보자는 마음으로 집 근처 정신과를 찾아갔다. 상담실에서 나는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기분이 들고, 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내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어느 순간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으리라.


상담이 끝난 뒤, 신경안정제와 공황발작 대비 비상약을 처방받았다. 꾸준히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의문이 들었다.

"왜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 약을 끊었다.

(※ 정신과 약물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며 감량해야 한다. 내 선택이 누구에게도 권장될 수 없음을 밝힌다.)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약을 끊은 시점과 다시 바쁘게 살아가기 시작한 시점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로 일상을 채우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코로나 이후, 변화한 시선

그때는 정신과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블루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 상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신과 방문율이 급증했고, 더 이상 ‘정신과에 다닌다’는 것이 비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세상이 오길 바랐다. 우울증을 앓던 시절, 나에게는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졌다. "조금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 그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나는 숨기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가족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병원비를 어머니 카드로 결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학창 시절, 정신 건강 검사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부모님께서 했던 말들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내 우울을 숨기지 않았기에,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우울을 마주하는 법

나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 우울을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인지하고 대처할 수 있는가다. 평소에는 무심코 넘겼던 우울이, 어느 순간 압도적으로 커져 나를 집어삼킬 때가 있다.

"난 아무 준비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우울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늘 내 안에 있던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다면, 우울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당황하지 말자.

"큰일 났다"*라고 생각할 필요 없다. 우울은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이다. 초반부터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냥 “아, 우울한가 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둘째,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자.

정말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평소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아 보자.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엔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어서 병원을 찾았지만, 내 주변 사람들 중에는 대화를 나눈 후 병원 방문을 접은 이들도 있었다.


셋째,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병원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면, 심리 상담을 받을 것인지 정신과 진료를 받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심리 상담은 주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정신과는 상담과 더불어 약물 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울과 함께 살아가기

우울증을 ‘극복’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울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감정이다.

누구나 우울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우울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되, 너무 무겁게 짊어질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나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울을 인식했다면,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끝으로 책의 내용을 인용하고자 한다.

만약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서 견디기 어려울 만큼 괴롭다면 당신이 성장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생각하라는 의사의 말을 떠올립니다. 사는 건 계획대로 흘러가는 순간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앞으로 청사진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부디 당신을 힘들게 하던 일이 당신을 가장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길 바라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때 그 순간 덕분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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