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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옌 Jun 05. 2024

나의 시베리아 생존기(3)

신기한 겨울나라

시베리아 생활은 참 별거없지만 다채로웠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숙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는데 내리막의 연속이라 눈이 오면 발끝에 힘을 빡 주고 걸어야했다.

그래도 넘어져 엉덩이 찧기 다반사였고, 나중엔 나름의 낙법을 익혀 넘어져도 크게 다친적은 없다(가끔 어디 한군데 부러져서 오는 애들이 있었다). 그리고 몇년 있다가는 스케이트처럼 신발을 타고다녔다.

근데 신기한건 러시아 친구들은 높은 굽의 겨울부츠를 많이 신었는데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굽을 얼음에 찍어서 아이젠 처럼 쓰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본적 있으나 글쎄...  그친구들도 답을 못주더라.

또한 러시아신발의 미끄럼방지는 우리나라 신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진짜 미끄럼방지가 잘 된다.

한번은 러시아에서 어그부츠를 하나 사서 한국에 신고왔는데 친언니가 진짜 추운날 신고나갔다오더니 더워서 못신겠다고 했다. 진짜 방한 제품은 최고다.


또한 시베리아에선 종종 아기들을 썰매에 태워다니는걸 볼수있었다. 유모차대신 썰매를 태우는데, 우리나라 눈썰매장에서 보는 그런 썰매가 아니라 진짜 어릴적 동화책에서 보던 그런 썰매였다.

가끔 떨어지지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준 어린아기들을 보면 '과연 효도르의 나라다. 강하게 키운다.' 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https://russia1004.com/board_rhnN85/3386

러시아의 모든건물에는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는데 밖은 영하 3,40도 여도 안은 무지 따뜻하다. 엄청 덥고 건조한데 빨래를 하고 거기다 말리면 정말 바싹 말라있었다. 그래서 건조기없어도 살만했다.

그리고 학교를 가면 한겨울에도 끈나시 입고다니는 친구들이 엄청 많았고 대부분 반팔 차림이었다.

또한 대부분 모피를 입고다니는데 집안대대로 모피를 물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모피가 정말 따듯해서 안에 나시만 입어도 괜찮다더라. 물론 모피가격은 한국보단 훨씬 저렴하지만 나는 사입은 적이 없다.

나의 한국 패딩들이 많이 추워보이는지 담당 교수님께선 딸들이 입던 옷과 모자, 장갑등을 챙겨주셨다. 물론 나는 그들의 쭉쭉빵빵 몸매와는 다른 비루한 몸이어서 태는 안났지만 덕분에 따뜻하게 겨울을 났다.


가끔 모자를 깜빡하고 나가면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꼭 한마디씩 하셨다. "너 뇌감기 걸린다" 고.

물어보니 뇌가 얼어 바보되는 거라고 간단히 설명해주던데 진짜 그런일이 간혹 있다고 했다. 다행히 뇌는 잘 지켰지만 집앞을 나서면 나의 입김에 머리카락도 얼고 콧물도 얼었다가 건물안에 들어가면 한꺼번에 녹아 주르륵 흘러내리곤 했다.


내가 크라스노야르스크에 있는동안 딱 한번 추위로 휴교를 했는데 그때가 낮시간에 영하 40도였다. 모스크바는 영하 20도 정도만 되도 휴교한다고 하더라.

겨울의 낮엔 주로 영하 30도 근처였는데 친구들이랑 벼르고 있다가 영하 29도인 날 날풀렸다고 스키장에 놀러 갔었다.

스키장은 인공 눈이 아닌 생눈이었는데 다른데서 타보지않아 모르지만 좀 타본 사람들 말로는 눈이 더 딴딴하게 잘 뭉쳐서 더 스릴이 넘친다고 했었다. 나는 스키바지가 없는관계로 내복에 면바지를 입고 스키를 탔고 패딩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처음 스키를 탔던거라 거의 엉덩이로 내려왔지만 리프트권이 아까워서 5번을 기어이타고야 말았다.

끝나고 따땃하게 사우나를 가서인지 감기안걸리고 넘어간거 보면 진짜 무시무시한 젊음이다 싶다.

 

스키수업도 있는데, 학교에 구비된 스키를 그냥 길에서 타고다니는 것이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라고 부르는데 왜 러시아가 겨울 운동에 강할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었다. 또한 가끔 자동차뒤에 썰매를 달아 공터에서 타고있는 애들의 모습도 있었다. 거의 루돌프가 끌고있는 산타의 썰매처럼 날아다니는데 무조건 피해가야지 싶었다.


겨울엔 항상 눈이 내렸지만 도로는 아침이면  눈이 다 치워져 있었는데 '황금손' 이란 이름의 제설차덕이었다. 앞의 손같이 생긴부분으로 눈을 부수고 지나가면 뒤에서 모으고 담아 지나가고 나면 눈이 싹 치워져 있었다. 강원도에서 단기연수 왔던 동생과 한국도입이 시급하다고 늘 입모아 말했지만, 사실 한국은 이정도까진 필요없을거 같긴하다.

 

겨울엔 여기저기 공원에 눈으로 만든 미끄럼틀과 조각들, 그리고 그냥 물을 뿌려만든 스케이트장이 항상 있었다. 정말 겨울왕국이다.

출처:vk.com/krasgorpark

나는 첫 1년동안은 냉장고 없이 생활했다. 옆방에 한국언니가 자기방의 것을 쓰라고 해서 같이 썼는데 가끔 언니가 없고 하면 불편해 따로 몇가지는 사서 창밖에 봉지로 걸어두었다. 근데 이게 냉장은 안되고 냉동만 가능해서 우유를 까먹고 오래 걸어놓으면 꽝꽝 얼어있었다. 한두시간만 걸어놓음 살짝 살얼음이 껴서 먹기 좋았는데 항상까먹고 자곤해서 다음날 얼어있는 우유를 한참 녹여 먹곤했었다.


한국에선 눈이 거의 오지않는 남쪽에 살기에 처음에 일년중 8개월가까이 눈이오는 그곳이 참 신기했는데 나중엔 그냥 일상이었다. 그곳에서는 참 별거없는 일상이었는데 가끔 그 일상속에 청춘이었던 내모습이 생각날때가 있다. 시베리아가 나에겐 꽤나 좋은 모습으로 남아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6월의 러시아, 벚꽃아닌 눈꽃



아, 겨울이면 바이칼호수가 얼어서 호수에 있는 섬에 배가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들어갈수 있다고 한다. 근데 그곳에 개썰매를 타고 들어가는 루트도 있다고 하던데 그걸 못타본게 천추의 한이랄까.

언젠가 러시아를 다시 가본다면 꼭 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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