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베리아 생존기(5)
중국친구 씬(Синь)
내가 입학했을 때 우리 학교에는 한국에서 입학한 외국인이 나와 김 씨 오빠 둘 뿐이었다.
다른 언니, 오빠들은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다 편입한 경우여서 우리 학교에 왔을 때는 언어는 그럭저럭 하는 정도였단다.
학교에는 외국인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시베리아연방대라는 학교에 가서 러시아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러시아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어 자격증(토르플)이 필요했다. 러시아어 자격증은 나름 국가시험이라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선 연방대에서만 칠 수 있었는데 한국인은 나 혼자였기에 중국인들과 시험을 쳤다. 듣기, 쓰기 시험을 다 같이 치고 말하기, 읽기는 몇분의 심사위원들 앞에서 한 명씩 들어가서 시험을 쳤다. 그 대기시간, 씬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뻘쭘하게 구석에 서있는 나에게 다가왔고, 우린 짧은 러시아어로 짧은 소개와 대화를 나눴고, 시험이 있기에 그날은 서로 번호만 따고 헤어졌다. 그 친구의 중국이름은 슈신이라고 했는데, 중국어를 몰랐기에 그냥 러시아식으로 Синь, 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냥 스쳐갈 인연인 줄 알았는데 씬은 며칠뒤 진짜 나에게 연락을 했고 만날 약속까지 잡게 되었다.
우리 학교 바로 앞에는 Китайский город:끼따이스키 고라드(중국시장)이 있었는데 4층 정도 되는 큰 쇼핑몰같은 건물에 엄청나게 많은 중국 상점이 있었다.
씬의 엄마는 그곳에서 모피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중국시장의 돈도 다 융통하시는 듯 했다. 처음 씬을 만나는 날, 엄마일을 돕고 있다고 끼따이고라드에 오래서 찾아갔는데, 씬은 은행의 돈 세는 기계로 돈을 세서 묶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참 돈을 세더니 엄마에게 뭐라 인사를 하고 그 돈 뭉탱이를 집어서 나왔다.
씬은 처음부터 자기 엄마가 돈이 많으니 돈은 생각하지 말고 자기랑 친구 하자고 얘기했다.
처음엔 밥도, 커피도 사주는 씬이 의심스러웠다.
혹시 나를 원양어선에 팔려는 건가 경계했지만, 나 따위 팔아 푼돈 받는 수고로움이 무색할 정도로 씬은 부자였다.
혹시 한국친구가 필요한 건가 해서 소개해주겠다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몇 번 만나보니 정말 순수하게 호의적이었다.
우리는 러시아어로 대화를 했는데 왜인지 모르겠으나 대화가 잘 통했다.
우리는 2,3주에 한 번은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자기 삼촌이 요리를 잘한다고 집으로도 초대했는데 풀코스로 배 터지게 먹다 나왔다. 그리고 그 삼촌은 친삼촌이 아닌 씬의 어머니와 함께 일하시는 진짜 요리사였단 것도 알게 됐다.
한 번은 여름 방학 때 한국에 갈 때 북경을 거쳐서 나오는데 씬이 자기랑 같이 나오자고 했다. 씬의 집은 크라스 인데 러시아 선생님들 관광을 시켜드리기로 했단다.
본의 아니게 나는 그 일행에 합류했고, 12시간의 북경 체류시간 동안 택시로 북경으로 가 이화원과 자금성을 구경하게 됐다. 밥에 입장료에 무슨 체험까지 하고 다시 택시 태워 공항까지 보내줬는데 중국돈 구경도 못했으니 진짜 친구 잘 만난 덕에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1년 뒤, 그녀가 한국에 놀러 왔다.
혼자 오면서 연락 왔는데 통역 겸 가이드로 만났다.
첫날, 서울에 왔으니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인터넷 검색까지 하고 왔는데 백화점을 일단 가잔다.
그리고 나는 쇼핑의 신세계를 보았다.
백화점을 돌며 옷을 몇 벌이나 사 입었는데, 비싸게 산 옷 다 놔두고 굳이 원숭이가 크게 그려진 운동복을 위아래로 샀다.
씬은 중국에서 모델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키도 크고 늘씬한데 한예슬을 닮은 예쁜 외모도 가졌다.
그러니 그 원숭이 캐릭터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리고 나도 원숭이가 그려진 옷과 운동화도 선물 받았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 명품관.
나는 태어나서 명품관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 원숭이 옷을 입고 온 우리에게 아무도 관심 없었는데 씬이 그 자리에서 가방을 3개를 체크카드로 구입하니 어느새 뒤에 사람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것말고도 지갑,벨트 등등 이것저것 많이 구입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부자들의 쇼핑법이었다.
밥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고 카페 가니 하루가 다 갔다. 숙소인 작은 숙소에 데려다주고 쉬라고 하고 동생 집에 가려는데 내일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얘기했다.
바로 성형외과.
나는 그날밤 연예인들이 성형했다는 강남의 유명한 성형외과를 밤새 검색해서 몇 군데 찾았다.
다음날 아침부터 성형외과 투어가 시작됐다.
택시로 이동할 때부터 기사아저씨가 성형외과로 가달라하니 나에게 성형할 거냐고 묻는 실례를 범했다.
옆에 친구가 한다니 친구는 별로 할 게 없어 보인다며 한예슬도 닮았고 김태희도 보인다며 칭찬하며 내려줬다.
성형외과에서도 비슷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의사들은 씬을 상담하면서 나에게도 더 관심이 많았고 계속 수술을 권했다.
어쨌든 몇 군데를 돌아 씬은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3천만 원을 일시불로 결제했다. 중국코디들이 기분 좋은지 나도 쌍꺼풀 거의 공짜로 해준다고 계속 꼬드겼지만 딱히 예뻐지고 싶단 마음은 없는터라 무시했다.
씬은 턱을 살짝 깎는 거라 몇 주간은 병원 근처에 레지던스에 있으면 케어해 주겠다 했다.
나는 씬이 수술하고 하루정도 있다가 붕대 칭칭 감은 모습을 보고 다시 집으로 왔다. 다른 일정 없이 쭉 쉬다가 간다고 했고, 성형외과 중국코디가 알아서 관리해 준단다.
한 달 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씬을 만났는데 원래 예뻤던 애라 어디 수술을 한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 후로도 종종 만났는데 마지막해에는 결혼할 사람이라며 같은 모델학교 출신 남자도 소개해줬고 결혼식을 중국에서 할 건데 신혼여행대신 가족, 친구들과 중국일주를 하는데 나를 초대했다.
하필 졸업시험과 겹쳐서 못 가게 되었는데 나보다 더 아쉬워해서 미안했다.
내가 크라스를 떠나면서 간간히 페북으로만 연락을 하고 있는데 자길 똑 닮은 딸을 낳아서 너무 예쁘게 키우고 있다.
씬, 어디에 있든 네가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