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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옌 Jun 28. 2024

나의 시베리아 생존기(6)

좌충우돌 목재통역

앞의 글에도 썼지만 내가 살던 당시 크라스노야르스크에는 참 한국인이 없었다. 내가 나올 때쯤엔 더 없었고 전쟁으로 뒤숭숭한 지금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2학년이 됐을 때는 내가 알던 모든 한국언니, 오빠들이 나가서 학생은  나 하나 남았다.

2년 차에 한국학생 중 러시아어 일인자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내 삶은 뜻하지 않게 흘러갔다.


시베리아 연방대의 한국어과 수업 도와달라 해서 가서 학생들과 잠깐 프리토킹을 했는데 러시아 친구 한 명이 물었다.

"들어보지 못한 어미야. 했노? 는 무슨 뜻이야?"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투리의 종결어미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보게 됐다.

한국어과 친구들의 원활한 공부를 위해 서울말처럼 보이려고 끝을 올려서 얘기해야 했고 때아닌 가성에 내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려올 때가 많았다.

"너희 밥 먹었나? 아이지, 밥 먹었니?"


반대의 상황도 있었다. 김해에서 목재상을 하는 아저씨 한 명이 왔는데 무려 주러 한국영사관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그러나 목재 관련 단어라고는 나무(дерево)만 아는 나로선 너무 부담스러워 연방대 수업을 갔다가 친해진 한국어과 1등, 율랴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그리고 다음날저녁 율랴에게 연락을 받았다.

 "쏘옌, 나 사투리 때문에 그 아저씨 얘기 못 알아듣겠어."

만나서 보니 아저씨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셨고, 심지어 네이티브스피커인 나조차 문맥으로 알아들어야 할 단어들도 가끔 구사하셨다.

율랴는 목청도 큰 아저씨가 얘기할 때마다 깜짝 놀라며 큰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했어서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내가 난생처음 통역을 맡게 됐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기라 통역을 위해 율랴가 통역 전 한글공부를 위해 꼭 필요한 단어들을 러시아어-한국어로 적어놓은 단어장을 넘겨줬다. 그걸 달달달 외우고 처음 갔는데 러시아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첫날 나는 '통나무를 베다'라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해야 했고, 나의 단어장은 친절한 러시아 사장님의 글씨와 내 한국어가 계속 추가되었다.


며칠 지나고 나니 다들 얼굴도 익고 말투라든지 그런 것들이 적응돼서 어느 정도 할만해졌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알렉산드로프'

본인 이름도 성도 아버지이름도 알렉산더인 러시아 목재 사장님은 그 목재업계에서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담배도 안 피고, 매일 깔끔한 정장에 친절한 말투  무엇보다 젊고 잘생겼었다. 만나는 장소도 담배연기 자욱한 러시아 식당이 아니고 깔끔한 카페 같은 곳이었고 그 자리의 유일한 여자인 나를 위해 맛있는 디저트도 꼭꼭 시켜주는 젠틀맨이었다.

돈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잘생긴 사람도 보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시간이 지날수록 운송, 관세문제 등으로 말이 어려워져 공부를 많이 해야 했지만 그 시간에 내 러시아어가 가장 많이 늘었다고 자부한다. 그 후로도 본의 아니게 썩 잘하지도 않는 러시아어 통역을 정말 많이 했지만 첫 통역의 긴장감, 설렘, 밤새 단어를 외우던 열정 등등은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여담으로 그때 그 율랴는 지금도 한국어통역 일을 계속하고 있고 한국국적까지 취득했는데, 나보다 서울말을 훨씬 잘 구사하게 됐다.

그리고 싸샤(알렉산드르) 사장님은 통역 이후엔 다시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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