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26년을 바꿨다
27년간 일했다. 그 중 마지막 1년, AI와 함께 일했다.
이 1년이 이전 26년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AI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내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였다는 것을.
오늘은 이 1년 동안 배운 모든 것을, 10가지로 정리한다. 이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나의 시행착오 끝에 남은 깨달음에 가깝다.
처음 ChatGPT를 쓸 때, 나는 명령했다. "보고서 써줘." 그리고 기다렸다. 나온 결과는 평범했다. 실망했다. "이게 AI인가?"
문제는 AI가 아니라 나였다.
AI는 명령을 받는 도구가 아니다. 대화하는 파트너다. 한 번 질문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5번, 10번 대화하며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건 어때?" "더 구체적으로 해줘" "리스크는 뭐가 있을까?"
대화가 깊어질수록, 결과도 깊어진다.
어느 날, 나는 AI에게 물었다. "우리 팀 기획안 써줘." AI는 1분 만에 3페이지를 만들어줬다. 하지만 읽어보니 엉망이었다. 너무 일반적이고, 우리 상황과 안 맞고, 핵심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내가 구조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쓰기 전에, 나는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목적은 무엇인가? 독자는 누구인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3가지를 정리하면, AI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초안을 만들어준다.
구조화가 먼저다. AI는 그다음이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는 말을 27년간 들어왔다. 하지만 AI를 쓰고 나서야, 그 의미를 이해했다.
막연한 질문: "마케팅 전략 짜줘"
→ 결과: 평범한 3페이지
구체적 질문: "30대 여성을 타겟으로, 감성적 톤으로, 인스타그램 릴스용 15초 대본 3개를 만들어줘. 첫 3초에 후킹 포인트를 넣고, '시간 관리', 'AI 활용', '루틴 만들기' 키워드를 포함해줘."
→ 결과: 바로 쓸 수 있는 대본
맥락, 목적, 제약, 형식. 이 4가지를 담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
3개월 전, 나는 AI가 계산한 숫자를 그대로 보고서에 넣었다. 회의에서 누군가 물었다. "이 숫자 맞아요?"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틀렸다. 창피했다.
그날 이후, 나는 AI 결과를 무조건 검증한다. 숫자는 원본 데이터와 대조하고, 분석은 맥락과 비교하고, 이상하면 재확인한다.
AI도 틀린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AI를 제대로 쓸 수 있다.
AI에게 물었다. "우리 팀 신규 프로젝트 리스크를 분석해줘." AI는 5가지 리스크를 제시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리스크가 빠져 있었다. 작년에 비슷한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력. 보수적인 조직 문화. 반대하는 부서와의 갈등.
AI는 이걸 모른다.
과거 실패 이력, 조직 문화, 이해관계, 정치적 고려. 이런 맥락은 내가 채워야 한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지만, 맥락을 이해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AI가 제안했다고 해서, 그게 정답은 아니다.
어느 날 회의에서, 팀원이 말했다. "AI가 이렇게 하자고 했어요." 나는 물었다. "당신 생각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AI는 제안한다. 하지만 판단은 인간이 한다. "AI가 하자고 했어요"는 변명이 안 된다. 책임은 항상 나에게 있다.
AI를 처음 쓸 때, 나는 모든 걸 자동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깨달았다. 자동화할 것과 자동화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AI에게 맡길 것:
데이터 정리
초안 작성
템플릿 적용
내가 할 것:
인사이트 도출
전략 수립
판단과 결정
반복 작업은 AI에게. 전략적 사고는 나에게. 이 경계를 명확히 하는 순간, AI는 진짜 도움이 된다.
예전의 나는 한 번에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루프가 중요하다.
1단계: AI에게 초안 요청 (30분)
2단계: 내가 검증하고 보완 (30분)
3단계: AI에게 재작성 요청 (10분)
이 루프를 2~3회 반복하면, 초안보다 10배 나은 결과물이 나온다. 완벽을 추구하지 말고, 반복을 추구하라.
AI가 2시간을 만들어줬다. 나는 그 시간을 어디에 썼을까?
처음에는 더 많은 이메일을 확인했다. 하지만 3개월 후, 나는 그 시간을 전략적 사고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6개월 후에는 팀원과의 1:1 미팅에 썼다.
반복 작업이 줄어든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무엇에 재배치하느냐다.
AI는 시간을 만들어주지만, 의미는 만들어주지 않는다.
AI를 쓰기 시작한 첫 달, 나는 실망했다. 시간이 절약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복잡했다. 프롬프트를 쓰는 시간, 결과를 검증하는 시간, 수정하는 시간.
하지만 3개월이 지나자, 달라졌다. 프롬프트가 템플릿화되고, 검증이 빨라지고, 프로세스가 정립됐다. 6개월이 지나자, 반복 작업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AI는 즉각적인 마법이 아니다. 3~6개월의 실험 기간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이 학습이다.
"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AI를 쓰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합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불안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말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한다.
AI를 쓰는 것과 AI를 잘 쓰는 것은 다르다.
구조적 사고, 좋은 질문, 본질 이해, 검증 능력, 맥락 파악, 판단력. 이것들은 AI 시대에도,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중요하다. AI는 이 능력을 더 빠르게, 더 넓게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27년간 일하며 배운 것이 쓸모없어진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 AI는 나의 능력을 대체하지 않는다. 증폭시킨다.
그걸 깨닫는 데, 나는 1년이 걸렸다.
당신도 아마 AI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혼란스러울 것이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 "내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나도 그랬다. 1년 전의 나는 불안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AI는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단, 그 기회를 잡으려면,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명령에서 대화로. 완벽에서 반복으로. 자동화에서 재배치로.
이 10가지가, 당신의 1년을 조금이라도 덜 혼란스럽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이 글은 'AI와 일하는 법' 시리즈의 23편입니다. 다음 주 최종편에서는 '지금 당장 시작하는 법'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