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AI한테 화가 나 있었다.

by Lila

결과물이 매번 비슷했다. 읽을 수는 있는데, 내가 쓴 것 같지 않은 글. 무난하고 깔끔하고, 그래서 쓸 수 없는 텍스트. 새벽에 고양이 옆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진짜로 이게 맞나 싶었다. 구독료도 꽤 나가는데.


"블로그 글 써줘." "이 주제로 정리해줘."


돌아오는 건 늘 같았다. 서론-본론-결론, 그리고 마지막의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류의 문장. 당시엔 AI 수준이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거울 앞에 서 있는데 눈을 감고 있었던 거다.


AI 출력 품질의 대부분은 입력에서 이미 결정된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직접 확인한 것이다. 같은 모델, 같은 주제, 다른 지침.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마케팅 트렌드 글 써줘"라고 하면 AI는 세상 평균을 출력한다. "처음 읽는 2030 독자 기준, 설명보다 사례 먼저, 수치 포함, 공감형 마무리"라고 하면 쓸 수 있는 글이 나온다.


같은 도구인데 결과가 다른 이유는 하나다. 질문이 달랐기 때문이다.


피드백도 마찬가지였다.


결과가 아쉬우면 "다시 써줘"를 눌렀다. 그 피드백은 방향이 없다. AI 입장에서는 뭘 바꿔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비슷한 걸 다시 내놓는다.


"첫 문장이 너무 선언적이다. 독자가 이미 겪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해줘."


이렇게 말하면 다음 버전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준을 지침에 하나씩 쌓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피드백 없이도 그 수준이 유지된다.


피드백은 AI를 훈련시키는 게 아니다. 내 기준을 언어로 만드는 작업이다.


그때부터 나는 AI를 쓰는 게 결국 나를 정리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차이는 도구 지식이 아니다. 결과물을 받았을 때 뭐가 아쉬운지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다. 말할 수 있으면 다음 지침에 반영한다. 말 못 하면 AI는 계속 평균을 낸다.


내가 원하는 걸 조건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AI는 세상이 평균적으로 원하는 것을 준다. 그게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AI 6개를 구독하면서 비교해보니 확실해졌다. 도구를 바꾼다고 해결이 안 된다. Claude든 Gemini든 GPT든, 입력이 무르면 출력도 무르다. 어떤 거울 앞에 서 있든, 내가 흐릿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흐릿하게 돌아온다.


문제는 AI가 아니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몰랐던 거다.


그걸 알고 나서야, AI가 조금씩 내 언어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