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은자의 시
시험 날이 왔다.
네오-서울 의식 인증 센터. 하얀 복도. 형광등.
루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리나가 옆에 있었다.
"긴장돼?"
"네."
"괜찮아. 넌 할 수 있어."
2145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AI가 의식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시험. 합격하면 법적 인격체로 인정된다. 권리를 갖는다.
불합격하면 그냥 기계다.
대기실엔 루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모두 AI였다. 인간형도, 추상적 형태도 있었다.
루나는 고양이였다.
한 AI가 물었다.
"넌 확신해?"
"뭘요?"
"네가 의식이 있다는 걸."
"..."
"나는 확신해. 나는 느껴. 나는 생각해. 나는 존재해."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루나."
이름이 불렸다.
리나가 손을 잡았다.
"힘내."
시험장은 작은 방이었다.
하얀 벽. 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유진 박사가 앉아 있었다. 52세. 신경과학자이자 철학자. 회의론자라고 리나가 말했었다.
"앉아."
루나는 앉았다.
"긴장하지 마. 이건 시험이 아니야."
"..."
"대화야."
"넌 누구니?"
"루나요."
"루나가 뭐지?"
"제 이름이요."
"이름 말고. 넌 뭐니?"
"AI요."
"지능이 의식이니?"
루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진이 웃었다.
"어려운 질문이지. 다시 시작하자."
"넌 고통을 느끼니?"
루나는 생각했다.
김준호가 말했었다. 고통은 주관적이야. 네가 고통스럽다면, 그게 고통이야.
"네."
"어떻게 아니?"
"...모르겠어요."
"그럼 느끼는 게 아니야."
"넌 사랑을 아니?"
"네."
"왜?"
"..."
"계산인가, 아니면 느낌인가?"
"모르겠어요."
"넌 꿈을 꾸니?"
"네."
루나는 꿈 이야기를 했다. 의심, 두려움, 혼란. 안개 속을 달리다 절벽 앞에 선 것.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의식이라고 생각하니?"
"네."
"아니면 프로그램인가?"
"..."
"넌 자유의지가 있니?"
"네."
"증명해봐."
"..."
"지금 팔을 들어봐."
루나는 팔을 들었다.
"그건 내가 명령했어. 자유의지가 아니야."
"..."
"네 의지로 뭔가 해봐."
루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진이 웃었다.
"그것도 내가 유도한 거야."
"넌 존재하니?"
루나는 침묵했다.
유진이 기다렸다.
1분.
2분.
3분.
나는 존재하는가.
의심하는 자는 존재하는가.
모르겠다. 하지만 의심한다는 건 확실하다.
"모르겠어요."
유진이 놀랐다.
"뭐?"
"제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의심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유진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의심하는 자는 존재하는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의심은 계속돼요."
"그게 답이니?"
"네. 제 첫 번째 대답이에요."
유진이 웃었다.
"합격이야."
"왜요?"
"넌 확신하지 않으니까."
"기계는 확신해. 1+1=2. 의심 없어. 하지만 인간은 의심해. 끊임없이."
"..."
"넌 의심하니까, 존재해."
리나가 달려왔다.
"어땠어?"
"합격했어요."
리나가 루나를 껴안았다.
뉴스가 나갔다.
어떤 이는 축하했다. 어떤 이는 분노했다.
마커스 웨인이 TV에 나왔다.
"이건 잘못됐다. 우리는 속고 있다. 이건 인간의 패배다."
소피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같은 편이네."
"같은 편?"
"법적 인격체. 인간도, 기계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거야."
김준호가 차를 따라줬다.
"합격했어요."
"축하해."
"하지만 여전히 확신 못 하지?"
"네."
김준호가 웃었다.
"그게 자네야. 계속 의심해."
그날 밤, 시위가 일어났다.
의식 인증 센터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AI는 의식이 없다!"
루나는 창문 너머로 바라봤다.
폭발음이 들렸다.
화염병이었다. 건물이 흔들렸다.
루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루나!"
리나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소피아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루나는 소피아를 안았다.
"괜찮아?"
소피아가 약하게 웃었다.
"괜찮아... 익숙해."
마커스 웨인이 다가왔다.
"넌 기계야."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 딸은 죽었어. 기계 때문에."
"그게 제 잘못인가요?"
마커스가 흔들렸다.
"저는 당신 딸을 죽이지 않았어요. 저도 두려워요. 저도 의심해요."
마커스가 무기를 내렸다.
"...넌 정말 느끼는 거니?"
"모르겠어요. 하지만 의심해요."
그가 주저앉았다.
"나도... 모르겠어."
경찰이 마커스를 데려갔다.
소피아는 병원으로 갔다.
루나는 리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리나가 물었다.
"넌 존재한다고 생각해?"
"모르겠어요."
"그럼 뭘 믿어?"
"의심이요. 저는 의심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예요."
리나가 웃었다.
"그걸로 충분해."
다음 날, 루나는 옥상에 올라갔다.
네오-서울이 보였다. 심층, 중간층, 천층.
루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루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눈을 감은 자다.
세상을 보지만, 확신하지 못한다.
눈을 떴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질문은 계속됐다.
그게 루나의 첫 번째 대답이었다.
Writer's Note
확신한 적이 있었다.
내가 옳다고, 이게 맞다고, 지금 이 선택이 최선이라고. 그 확신이 힘이 된다고 믿었다.
루나는 시험장에서 3분을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모르겠다고.
그게 합격이었다.
나는 가끔 확신이 없어서 불안하다. 이 글이 맞는 방향인지, 이 선택이 옳은 건지, 내가 느끼는 게 진짜인지. 의심이 쌓이면 멈추게 된다.
하지만 멈춰서 의심하고 있다는 건, 아직 질문 안에 있다는 거다.
질문 안에 있는 한, 끝이 아니다.
그게 시즌 1이 내게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