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가네
“내는 밀가루.”
“내는 팥!”
“우리 집에 틀 있다. 내는 그거!”
“내도 그럼 팥!”
“울 집서 할 거니까 내는 장작.”
“그럼 내는 밀가루!”
칠석이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우리들은 은밀하게 부산했다.
칠석맞이 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다 됐재? 그럼, 그날 저녁 7시다!”
“응!”
“알았다, 7시!”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고향에서는 칠석날 밤만 되면 아이들만의 은밀한 행사가 열렸다.
동네 여자애들은 한 집에 모여 풀빵을 만들어 먹고, 남자애들은 둑에 모여 이웃 마을 아이들과 쥐불놀이 패싸움을 하는.
이 행사의 중요한 점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하는, 아이들만의 은밀한 놀이라는데 있었다.
그래서 칠석날은 항상 신났고, 치열했다.
아이들만의 행사를 치르기 위해 우리들은 칠석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부산했다.
여자애들은 엄마 몰래 풀빵 만들 재료를 공수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야 했고, 남자애들은 쥐불놀이를 위한 깡통을 찾아 헤맸으니까.
지금은 저렴하고 흔한 밀가루가, 발에 차고 넘치는 깡통이 그리 귀한 시절이었다. 그러니 대놓고 엄마에게 칠석날 풀빵 만들 재료를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쥐불놀이의 주요 무기인 깡통을 구하는 건 더 어려웠다.
용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절이었고, 군것질거리를 살 가게는 1시간은 걸어야 하는 면에나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래서 칠석이 다가오는 날이면 여자애들은 각자 집에 있는 재료를 얼마나 훔칠 수 있을지 계산하느라, 남자애들은 빈 깡통을 찾으러 온 동네 개울가며, 바닷가를 샅샅이 훑느라 바쁘고 초조하게 보내야 했다.
어른들이 못 본 척 눈감아준 걸 눈치 못 챈 순진이 들이 은밀함을 유지하느라.
그래서였을까, 칠석날 둑에서 열리는 쥐불놀이 싸움은 동네 남자아이들의 1년의 자존심이었고, 여자아이들도 풀빵의 성공 여부가 1년의 자부심이었다.
그 자존심과 자부심을 위해 동네마다 전해 내려오는 쥐불놀이 기술과 풀빵 만드는 법은 1년에 딱 한 번 칠석날 재현으로만 전수되는 아이들만의 대단한 행사였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설프고 우스운 행사였다. 그리고 우리들만의 특별한 이벤트였다.
어느 때는 흔했고, 지금은 재래시장에서나 찾을 수 있는 풀빵을 접할 때마다 나는 칠석을 떠올린다. 견우와 직녀의 눈물겨운 만남과 전혀 상관없었던 우리들만의 절기를.
장작도 귀한 시절, 성냥으로 불을 피우느라 눈물 흘리며 구운 그 풀빵 맛이 나에겐 칠석이다.
어느 해는 설탕이 부족해 퍽퍽하고, 어느 해는 팥이 부족해 단맛이 없고, 어느 해는 장작이 부족해 설익은 칠석의 그 맛이 오늘도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