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 회사 대신 가상회사

[우아의 이야기]

by 우아


등줄기가 서늘할 만큼 와, 이대로 살면 안 되겠는데? 란 예감이 강하게 들 때가 있다. 마치 너 지금 새됐어라고 신호라도 주듯.


작년부터 유독 압박이 들어왔다. 누군가는 내 나이가 정규직 신입으로 취업할 마지노선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학벌이 아깝다며 지금이라도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을 치라고 했다. 지금 한가하게 책이나 보고 산책 다닐 때가 아니라고.


왜지? 정석적인 루트는 아니라도 나는 나름 마음에 들었는데. 그치만 정녕 마음에 들었다면 대체 왜 흔들리는 건데?


생계형 고립 청년*이자 욜로였던 지난 20대를 보내고 청년활동가, 공공기관 계약직, 주말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기자, 부동산 투자 등으로 새롭게 구축해 온 5년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말에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부 진심과 애정을 담아 건넨 말이었으니까. 그렇지만은 않은데요!라고 증명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았다만.


* 생계를 위한 근로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청년


책 <증명과 변명>에서는 이를 ‘잔인한 낙관’이라고 부른다.


좋은 대학에 가면 성공할 수 있고, 그래서 아무도 나에게 증명이나 해명을 더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 비관조차도 지속되려면 낙관이 필요한 것이다.

<증명과 변명>, p.138, 안희제, 다다서재



‘아무도 나에게 증명이나 해명을 더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란 나의 순진하고도 잔인한 낙관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지금과 같은 길을 택한다면 다음에도 겪게 될 일들은 불 보듯 훤했다. 계약만료를 끝으로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지만 알았겠는가? 회사보다 더한 가상회사에 빠지게 될 줄이야. 그때는 미처 몰랐다. 주 7일을 일하던 것보다 빡센 나날이 이어질 거란 걸 알았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