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얼레지
길수는 김참판 댁 하녀 소정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김참판한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지만 악랄한 참판이 농간을 부려 결국 둘은 결혼을 못하고 길수는 지참금으로 마련한 조 백 가마를 불에 태우고 자신도 몸을 던진다. 그런데 죽었다던 소정이 달려오더니 그 뒤를 따라 뛰어드는게 아닌가! 그리고 불이 꺼진 후 그곳에는 짚신 두 짝과 얼레지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고 한다.
얼레지 꽃의 전설이다. 꽃이야 어느 것이든 전설이 있다지만 얼레지 전설의 고향은 바로 내 놀이터 텃밭이 있는 가평 연인산 자락이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짧게 적어보았다.
얼레지, 봄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꽃이다. 6개의 홍자색 꽃잎도 아름답지만 꽃잎을 한껏 젖혔을 때 드러나는 선명한 W자 문양도 신기하기만 하다.
화려한 모양에 걸맞게 꽃말도 “바람난 여인”이다. 왜 그런 꽃말이 붙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얼레지를 볼 때마다 왕년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를 떠올린다. 한껏 젖힌 꽃잎이 어느 영화에서 지하철 바람에 치마가 올라갔을 때 먼로가 당황해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얼레지는 5월에 씨를 떨군 후 한 해가 지나면 잎이 하나, 세 해가 지나면 잎이 두 개, 그 다음해에 꽃대. . . 이런 식으로 꽃이 피기까지 6~7년이 걸린다는데 마릴린 먼로의 그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바로 “7년만의 외출”이다. 매미가 7년을 땅속에 있다가 보름 정도를 지상에서 머물다 죽듯이 얼레지도 꽃이 피고 보름 정도를 머물다 사라진다.
우연히 어느 식당에서 얼레지나물을 얻어먹었는데 그 맛이 또 기가 막혔다. 덕분에 옛날엔 트럭으로 캐가기도 해서 멸종 위기종까지 몰렸다. 지금이야 위기를 벗어났다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선 그렇게 남획을 하고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꽃은 보통 홍자색, 자색이지만 드물게 흰색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워낙 귀물이라 알현이 여간 어렵지 않다. 나도 지금껏 단 두 번 만났다. 네이버백과 사전에는 4~5월에 꽃이 핀다지만 지금은 이곳 경기북부에서도 3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