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바람

오래된 원형 도시의 미학

by 밥 짓는 사람

삼십 년 전통이면 뉴비라고 봐야 하나.....

춘천 시청 닭갈비 골목. 전병을 파는 할머니는 젊어 보였다.

별스러울 것 없는 시장 골목에서 파는 뽑기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나니 , 허기는 아니지만 입안이 헛헛한 것은 좀 사라졌다.

춘천 시내는 올 때마다 새로운 도시다. 사실 남한 땅 어느 도시를 가도 도심이 움직이는 속도가 더 느린 곳은 춘천이 유일할 것이다. 원형 도시라서 그런가. 도시 바깥쪽 아파트들이 더 세련되어 있고. 도심에는 예스러운 지명들만 남았다. ' 몇 호 광장' 이 그러하고 언덕길 옆 벽화가 그러했다. 오래된 성당 옆 수로가 개선된 것이 가장 큰 변화인가.

한사코 닭갈비를 먹자고 열기 가득한 저녁 , 하늘하늘한 걸음걸이로 불 꺼진 시내를 걷던 것이 생각난다. 기억의 오류다. 하늘하늘 한 건 걸음걸이가 아니라 옷이었다. 아니면 그냥 내 기분이었을 수도. 도시의 기억치 고는 퍽이나 유랑객스러운 기억이다.

그래 물고기. 여기 오니 내가 살던 도시에서 일부러 기억을 봉합해둔 아버지를 생각해도 물이 넘치지는 않겠다.

그런 곳도 있어야 계속 기억하지 싶다.


어릴 때 춘천은 아부지 따라서 낚시하러 온 게 처음이었다.

한강 미사리 , 뚝섬, 홍천 , 청평 , 양평. 소양강 , 각종 지류들. 그래서 민물생선 배 따는 건 열 살 전후부터 했다.

배 아래에 손가락 넣고 쭈욱 밀어 내장 걷어내기. 대가리도 땄다. 그렇게 다듬은 물고기에 고추장 좀 넣고 파 , 감자 넣고 끓이다가 밀가루 엉개서 장떡만 한 크기로 한방에 넣어 익힌 후 찢어서 양을 늘렸다.

국물이라도 꿀떡 하고 마시면 술맛도 해장국도 모르던 열 살도 배를 두드리며 '뜨뜻하다'를 느꼈다.

강변에 있던 자갈 중 이쁜 자갈만 모다서 강가로부터 물을 끌어들이는 조그마한 수로 만들어 놓고 잡아온 물고기 넣어주고 징거미 넣고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밥 먹고 돌아와 보니 허연 배를 내밀고 돌아버린 돌무지 , 빠가 , 피라미. 햇볕이 금세 공기를 말려버린다는 것을 알리가 있는가. 먹기 위해 잡아온 놈들 배 딸 때는 모르던 미안함이 생긴다.

떠내려 가라고 물에 내려주면 거 참 안타깝게도 뒤집어진 물고기들은 다시 또 강가에 붙어버린다. 차라리 인근 농가에서 놀러 나온 오리들이 주워 먹으면 덜 미안할 텐데.

손에서 나는 민물 비린내는 강가 모래톱에 손 담그고 잠시 버석거리면 말라버린다. 맞은편 강에서 수박 냄새나는 바람이 부는 걸 보니 낡은 텐트로 돌아갈 시간이다. 주파수 잡히지도 않는 라디오에서 놓고 온 서울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 저녁 술안주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미군부대 레이션이다. 프라이팬에 은행 몇 개 구워 기름진 레이션 고기하고 먹으면 다른 날 보다 몇 병을 더 드신다.
강가에 세워놓은 낚싯대 또 질질 끌려서 저기 아래 돌무덤에 끼어버렸다. 밤낚시는 글렀고 쥬브 위에 앉아 별 떨어지는 거에 맞추어 침 삼추기 놀이나 해야겠다. 이슬 떨어지기 전까지.

아버지를 기억하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싶다.

그분이 나에게 할애하는 시간보다 많이 썼다.



이 년 전 여름. 춘천의 밤거리에서 비슷한 밤바람을 만났다.
습하지만 얼굴에 계속 붙어있길 바라던 바람.

성당 앞 불 꺼진 건널목을 무단횡단하면서 느끼던 습기 어린 바람.

물가에 있는 도시라 습기가 많다. 이별하면서 눈물 몰래 흘려도 잘 안 흐를법한 곳이다.

도시 춘천을 기억해냈다. 습기가 필요한 저녁시간이라 그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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