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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Apr 02. 2024

아침, 아들 똥 싸다

늦었지만 아빠가 되길 잘했다.

영화 "광해"에서 새로이 궁에 들어온 광해(신) 은 궁중의 법도를 처음 접하고 매우 당황해한다. 밥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심지어는 똥 싸는 것도 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이는 참 가복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광해는 매화틀에 앉아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주저하며 똥을 싼다. 매화틀은 나인에게 압수당해 맛과 색 크기를 점검받는다. 그것이 조선의 왕, 배설물마저 귀하디 귀한 취급을 받았다. 



손자병법에서도 오왕 부차에게 월왕 구천이 똥을 청하여 그 맛을 보고 건강을 논하는 장면이 있다.  



앞에는 권력으로 서로를 지키는 자들이, 뒤는 권력을 뒤엎어 목숨을 취하려는 자들이 똥을 높이 모시는 장면이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의 똥을 살핀다. 



밤새 안녕했는지, 어제는 어찌했는지 , 집에 설치해 놓은 홈캠으로는 맘이 놓이지 않아  아이의 분유 섭취 어플에 남은 잔여 분유량과 정수기에서 받은 물이 분유 덥히는 기계에서 잘 남아 있는지 모든 것을 살핀다.  산양유 분유는 47도에서 분유가 가끔 녹지 않고 남아있으니 이 문제를 따져보고자 일동제약 홈페이지를 마구 뒤지는 수고도 아랑곳하고 있지 않으나 전혀 번잡스럽지 않다.



아침 수유는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아이와 눈을 맞추는 시간이니 아침잠이 많다, 혹은 어제 손님이 많아 다리가 아프다 정도는 이유로 댈 것도 아니다. 아침 수유 중  무사히 졸면서 우유를 먹는 아이를 보는 것이 요즘 내 최대 관심사이며 집중이다.   



이 아이가 주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매우 원초적이라, 내 품에서 분유를 먹고 , 수유 후 트림을 시키면 어른보다 거창한 소리를 내어주니 처음 저 체중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원죄의식을 하루하루 씻어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아이는 아침 수유시간에 내 품에서 꼭 큰일을 본다. 나는 기저귀 밑에 손을 대어 주고 , 아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똥을 쌀 때 "얼쑤! 그렇지!" 정도의 기합을 주어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순방향의 아주 이로운 일이라는 것을 훈련시키고 있다.



아이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아직은 신비로운 것들이다. 아이의 소리, 아이의 눈빛, 아이의 하품, 아이의 대소변. 내 아이의 것들은 깨끗하다 같은 소리는 못하겠지만. 아이라서 아직은 생성 기록이 적지 않은가. 분유만 먹었을 뿐이고 , 생산 가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록지가 정직하다. 전날 스트레스가 심하면 똥이 굳어버리고, 전날 수유가 불규칙하면 똥이 되직하고 오늘같이 전날 비록 피곤하였지만 잘 버티어 준 날이면 황금똥이 나온다. 전날을 반성하고 오늘을 기대하고 내일을 모색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온 것이다. 



아이는 핏줄이라 신비로운 것이 아니다. 시작하기 때문에 신비롭고 고맙고 존경할 가치가 있다. 내 삶처럼 이미 지독하게 섞이고 , 꼬이고 좌절한 것만 남은 몸이 아니라서  매력 있는 것이다.



왕의 매화틀도 아니고 , 적장의 뱃속을 핥아 복수를 다짐하는 혐오의 끝도 아니고 , 아이의 똥이다. 하루가 기록되고 , 하루를 지켜본 것. 그리고 겨우 그것 하나 해내면서도 작은 우주가 응축된 것 같은 미소를 던져주는 68일짜리 생명의 해냄.



늦었지만 아빠가 되길 정말 잘했다.



좀 더 이른 아빠였으면 억지로 거세해야 할 많은 욕망과 시행착오 그리고 반성이 더해졌을 것이다. 



지금이 제일 적기다. 



늦은 아빠라서 다행이다.




장인어른과 합이 잘맞는 아이다.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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