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열정과 같다
난 4년 전 전자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첫째를 낳고 6개월이 되던 달에 박사를 시작해서, 둘째를 임신하고 만삭인 채로 졸업 예비발표를 준비하고 발표했다. 그렇게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내가 혼자였을 땐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도 쉬지 않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했고,
주말에도 별일 없으면 연구실을 나가 논문을 읽고 실험을 했다.
그냥 재미있었다. 그러다 내가 생각했던 결과가 나오면 얼마나 기쁜지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그렇게 즐겁게 대학원 생활을 하고 실험도 했는데, 나만의 공장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창업준비도 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연구에 대한 갈증은 깊어만 간다.
연구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연구하고 실험해야 할 절대적인 시간이 있다.
지금은 하루종일 실험을 하지도 연구에 빠져 살지도 못한다.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먹을 때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한 명씩 돌아가며 숙제를 봐주고,
그리곤 함께 놀고 싶다는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나면
자야 할 시간.
6세가 된 둘째는 아직도 내가 없으면 중간에 깰 때가 있어서, 재워놓고 무언갈 마음 편히 하지 못한다.
(지금도 아이 옆에서 숨죽여 글을 적고 있다.)
난 지난 2년간 두 권의 에세이를 썼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공저)
<저는 왜 이렇게 육아가 힘들까요>
그리고 2주 전 열렸던 북 페스티벌에서 짧게 강연도 했다.
다른 작가님들도 많이 오셔서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자꾸 뭔갈 쓰고 있을까..?'
언젠간 노벨상을 받겠다는 작가님과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서,
작가로서의 나 자신을 상상해 보니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아직까지도 어디 가서 책을 썼다고 잘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내가 작가인 것 같지 않다...
내가 글을 잘 쓴 것 같지 않아서일까?
글을 적으면 논문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에세이를 적으며 감정표현이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다니 하며
내 감정을 글로 표현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고 행복했었다.
쓸 땐 분명히 열심히 달렸고 무슨 이야기든 세상에 전하고 싶었는데..
다 끝나고 나니 그냥 한 가지를 하고 끝난 기분이다.
쓸 땐 분명히 그다음 책도 쓰고 싶고 아이디어도 여러 개 떠올렸는데,
지금은 내가 뭘 하고 있나 싶다.
그런데도 그냥 뭐라도 하나 적어보자며 브런치에 들어왔다.
'내가 왜 자꾸 글을 적고 있을까?'
'뭘 원하는 걸까?'
'진짜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적다 보면 뭔가 될 거 같아서 그런 걸까?'
그러다 한 문장을 봤다.
일은 열정과 같다.
열정... 좋아하기에 계속할 수 있는 것.
내가 블로그에 글을 적는 것도, 인스타에 글을 남기는 것도,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 적었던 글들도,
내 열정을 표현할 곳이 없어서 그랬나 싶다.
내가 좋아하는 연구를 맘껏 할 수 없는 현실과 나만을 바라보는 아이들.
그 사이에서 내가 뭐라도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오프라인으로는 힘들었다.
헬스장을 등록해도 못 가는 날이 부지기수. 듣고 싶은 강의도 오프라인으론 힘들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뭐라도 해낼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글이었다.
내가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적고 발행을 누르고 나면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나만의 글을 만들어 낸 것 같았다.
세상에 하나 내가 만들어 냈다 싶은...
오롯이 나 혼자서 나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글을 적기 시작하고 나서 생긴 습관이 있다.
머릿속에 내 감정을 정리하고
걷다가 문득 예쁜 풍경이 보이면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오늘도 브런치에
내 열정을 올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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