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어, 전혀 안 들어가네."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보석함을 열어 반지를 하나 꺼내 끼어봤다.
연애할 때 끼던 커플링은 겨우겨우 들어갔고, 살면서 제일 날씬했던 결혼준비 기간에 맞춘 결혼반지는 두 번째 마디에 걸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음.. 요즘 살이 찌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다이어트 결심만 하고 다시 반지를 넣었다. 그때 거실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싸움소리와 남편의 화난 고함소리.
"왜?? 무슨 일인데??"
"엄마~아빠가 우리한테 화냈어."
아이들은 싸우고 남편은 화내고, 그 상황을 지켜보는 내 눈에는 아이들이 온통 꺼내놓은 장난감들과 남편이 먹고 거실테이블에 그대로 놔둔 바나나 껍질과 콜라가 보였다.
'애들한테 뭐라 할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먹은 거나 제대로 치우지.'
속으로 실컷 욕을 하고 답답한 마음에 바나나 껍질과 빈 콜라통을 챙겨 부엌에 갔다. 평소 식기세척기를 살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나에게 설거지는 잠시 이 상황을 벗어나 혼자 그릇을 씻으며 마음정리하는 시간이었기에 고무장갑을 한 짝씩 끼며 아이들에겐 싸우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혼자 있고 싶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는지 남편이 나에게 말한다.
"여보, 뭐 먹을 거 없어? 입이 심심하네."
"먹을 거 없어."
어느새 결혼반지가 맞지 않는 것처럼 우리 둘 사이엔 점점 맞지 않는 게 늘어가고 있었다.
연애 때는 뭐든지 해주고 싶어 고민했었지만 지금은 해달라고 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뭐로부터 시작되었을까?
육아?
오래되서??
아니면 오늘따라 생리시작해서 그냥 다 싫고 짜증나는걸까,
이대로 있다간 그냥 감정 없이 지내는 부부가 될 것만 같아서.. 요즘 TV에 많이 나오는 이혼프로그램들, 이혼뉴스들, 지인들의 소식.
내 이야기가 될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