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진을 현상한다는 건,
빛에 닿았던 흔적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필름이나 인화지는 이미 빛을 한 번 품고 있다.
다만 그 상태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억이 잠들어 있는 셈이다.
암실에서 현상액(Developer)에 담그면 변화가 시작되는데,
빛을 많이 받은 부분부터 천천히 어둠이 생기고 형태가 떠오른다.
보이지 않던 것이 조심스럽게 자기 모습을 찾아간다.
그다음은 정지액(Stop Bath)에서
더 이상 색이 진해지지 않도록 시간을 멈추는 역할을 한다.
지금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사진에게 말해주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고정액(Fixer)을 사용해 이미지를 안정시킨 후,
사진이 다시 빛 속으로 나가도 사라지지 않게 만들어 준다.
이렇듯 모든 약품처리가 끝난 후 충분히 세척하고 건조하면
비로소 사진이 빛 속으로 나올 준비를 마친 것이다.
현상(現像)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순간을 세상에 드러내는 과정이며
인화(印畫)는,
기억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실체이다.
꼭 실물로 인화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기억을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사진과 글을 함께 남기는 것.
찍고,
쓰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카시>다.
*디카시가 더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0e76dcb1975249f/83
by. 예쁨
암실 안내문
이곳은 일상을 인화하는 <시 현상소>입니다.
사진이 빛을 만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
디카시는 일상의 장면이 언어로 현상되는 순간이지요.
아직 마르지 않은 어떤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
여러분의 기억도 시로 현상해 보세요!
물론, 편안하게 감상하고 쉬어가도 좋습니다.
쉿!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거예요.
밤 사이,
보슬보슬 눈이 내렸다.
새하얀 기대감 속에 다짐이 피어난다.
설(雪) 계도
고운 체에 걸러 뿌려 놓은 듯,
뽀얀 빛깔 찹쌀가루.
지난 밤 애씀은 고물로 묻고,
새 날의 끈기 반죽해 볼까
*메인사진 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