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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쁨 Nov 09. 2024

삼봉이 이야기(1)

어렵게 꺼내는,

인연의 시작


장래희망란에 수의사를 쓸 만큼 동물을 좋아했다.

(수의사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인줄 몰랐으므로.)

복잡한 유년시절엔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고,

남들보다 빠른 결혼과 육아가 이어지자 더욱더 품지 못할 꿈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아이들은 손이 갈 나이가 지났고, 신랑이 가지고 있는 반려견에 대한 인식도 개조(?)했다.

그렇게 파워 J형 인간은 반려견을 키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사무실, 피자집, 카페, 샌드위치 가게, 빵집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내 힘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금전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애 첫 반려견을 위해 유기견 사이트에 가입하고, sns, 블로그를 검색했다.

딸과 함께 보호소를 다니며 관심을 기울였고, 우리의 철칙은 결코 감정에 쏠려 데려오지 말자였다.

오산에 있는 한 보호소에서 눈에 밟히는 아이를 발견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신랑을 설득해야 했고(당시만 해도 반대한 유일한 가족이었으므로.)

몇 번은 더 만나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이 녀석은 다른 곳에 입양되었고, 늦은 결심에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던 중 사설 보호소에서 눈여겨보던 아이가 아직 입양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너무 예쁜 아이 었고, 당시에는 분명히 입양처가 정해졌다고 했었다. 딸이 하교하기만을 기다렸다가 보호소로 출발했다.

알콩이는 달콩이라는 친구와 같이 파양견으로 입소되었다고 한다. 달콩이가 먼저 입양되고 알콩이도 입양 예약은 되어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양자의 마음이 바뀌어 다른 아이로 데리고 갔다고 했다. 드디어 녀석과의 첫 대면이었다.

응? 분명 사진 속 아이는 말끔하고 예쁜 말티즈였는데, 덥수룩한 털에 굳어버린 똥을 대롱대롱 매단 채 달려오는 털뭉치가 낯설었다.

한 눈에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속았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를 빨리 이곳에서 데리고 나오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갑자기 딸이 속삭이며 브레이크를 걸었다.

”엄마,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그리고 쟤는 좀 과하게 밝은 것 같아. 괜찮을까? “

하지만 또다시 늦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다. 후다닥 입양계약서를 쓰고, 미리 준비해 간 케이지 문을 열자 아이는 익숙하게 들어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한 번에 쏘-옥.



새로운 식구


집에 돌아오는 길 케이지 안에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고, 방금 전까지 보였던 깨발랄함은 사라진 채 얌전히 숨만 쉬고 있었다.

멀미를 하나 싶어 걱정했지만 집에 오자마자 배변패드에 쉬를 하고, J형 인간이 준비해 둔 사료를 먹었다.

무언가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이상한 기분마저 들었다. 다음 날, 가까운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보고 목욕과 미용을 시켰다.

피검사에는 문제가 없었고, 눈병 치료를 위해 약을 처방받았다. 약간의 컥컥거리는 증상은 환경 문제일 수 있겠다며 더 지켜보자 하셨으니 건강상태도 양호한 편이었다.

털뭉치 같던 아이는 예쁜이로 활골탈태 했고, 모든 걱정을 잠재운 채 우리 집의 새 식구가 되었다.

이름은 가족투표로 지어졌다. 왜인지 모르게 딸은 촌스러운 이름으로 짓고 싶어 했는데, 말하는 이름마다 영 마뜩치가 않았다.

결국 최종적인 이름은 ‘삼봉’으로 지어졌다. 지어놓고 보니 까맣고 큰 두 눈에 까만 코 하나, 마치 봉우리 세 개가 우뚝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보호소 직원은 녀석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소개했지만, 훗날 키워 본 결과 특징이 말도 못 하게 많은 강아지라는 걸 알았고 이 사실을 너무 알려주고 싶었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 보호소는 폐업을 했다.


특징이 말도 못 하게 많은 우리 집 강아지, 삼봉이


1. 삼봉이는 산책을 싫어한다.

자고로 강아지라 하면 산책과 간식에 환장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낯선 환경에 그런가 싶어 조금씩 산책의 반경을 넓혀갔지만 꼬박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아파트 입구를 벗어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차차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고 가까운 뒷산이나 익숙한 길은 제법 앞서기도 했으며 ‘똥존’마저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산책을 두려워했고, 경계심이 가득했으며, 오로지 집으로 가는 길만 안다는 듯이 방향을 역으로 바꾸며 달려갔다.

굳이 연결하고 싶지는 않지만 파양견의 아픔이 느껴져 내심 속상했다.

산책 귀찮아 / 차라리 독서를…

2. (비겁한) 우주최강 쫄보

강아지만 보면 피하거나 짖었다. 사실 삼봉이는 3kg의 작은 말티즈 소속 믹스견인데 저보다 덩치가 크면 살살 피했고, 저랑 견주어 덩치가 비슷하면 격렬하게 짖었다.

사이좋게 지내면 좋으련만, 처음엔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미 나이가 많은 삼봉이에겐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리, 포코, 빙고 세 마리의 강아지 친구는 만들었다. (아.. 나의 눈물겨운 노력)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는데 누가 예쁘다고 다가와도 곁을 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간식 주는 사람 제외)

어쨌든 반복되는 산책을 통해 모든 것이 나아졌고, 특히 한강공원에 가면 더 늠름해지는 타입이었다.

덩치 큰 동생 구리 / 연하남친 빙고 / 빅베이비 포코

3. 첫 사료는 숨겨두기 (사료 편식, 간식 환장)

사료 편식이 심했다. 보호소에서 먹던 사료를 그대로 사 왔고 첫날부터 잘 먹길래 먹는 걱정은 없겠구나 했는데 문제는 간식이었다.

반려견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첫아이를 키우는 엄마처럼 실수를 범했던 것이다.

빨리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또는 훈련을 빙자한 목적으로 간식의 양이 많아졌던 모양이다.

결국 입맛에 맞으시는 사료를 찾는데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가지고 3가지 종류를 돌아가며 먹였다. 간식급여는 조심했다.

그렇지만 잘 먹는 모습을 보는 어미의 마음이 행복했으므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간식 사랑에도 불구하고 삼봉이의 첫 사료는 항상 이불속에 숨겨진다. 매 끼니마다 작은 발과 머리로 사료를 숨기는 모습은 마치 어떤 의식과도 같았다.

여하간 모든 모습이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간식최고 / 엄마>=간식>사료

 

4. 지구상 최고 미모견, 간헐적 천재견

지구 최고의 미모를 가졌다고 자부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 페이스에 적당히 통통한 몸매, 커다란 눈망울에서 나오는 아련함.

짧은 길이로 다리를 꼬는 모습은 퍽 매혹적이다. 백치미가 있는 편이나 간헐적으로 천재견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병원 가는 길을 기가 막히게 기억했고, 병원 도착 50m 전부터 바르르 떨었다.

엄마가 씻기만 해도  나간다고 짐작하고(그래서 잘 안 씻었다.) 화장실부터 옷방까지 졸졸 따라다니다가도 본인을 데려가는 외출인지 아닌지를 알아챘다.

여행 가방을 싸면 특히나 불안해했는데, 가방 안에 들어가 버리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식구들 몰래 간식 박스 앞에서 간식을 노리는 대범함도 있었으나 짧은 다리 탓에 번번이 실패했다는 슬픈 이야기.

얼짱각도 잘알개 / 간식박스 털이범 검거 (미수에 그침) / 그쪽으로 가면 병원이잖아.

5. 코골이 데시벨 장난 없음, 잠 많은 공주님

작은 몸에서 어쩜 그렇게 큰 데시벨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내 겨드랑이 속에서 잠드는 밤이 많았는데, 신랑도 잘 골지 않는 코골이 상대와 잠자리를 하느라 나의 밤은 늘 안녕하기 어려웠다.

가끔씩 언니방에서 자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언니방에서 쫓겨날지언정 절대 오빠방으로 가지는 않았음.)

이렇게 식구들을 잠 못 이루게 해 놓고 본인은 꽤나 태평하게 자는 편이다. 와중에 잠귀는 밝고 예민한 탓에 잠자는 시간이 길기도 하다.

나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하루 중 대부분 자는데 할애하는 녀석을 위해 산책이 더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뭐, 자고로 미녀는 잠이 많다고 하지 않았던가.

쿨쿨 / 엄마 품이 제일 좋아 / 낮잠 자기 좋은 날

6. 서열이 확실한 강아지

나와 있는 시간이 가장 많았고, 밥을 주는 사람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삼봉이의 1순위는 당연히 엄마로 믿고 따르는 나.

차를 타고 가다가도 내가 잠시만 자리를 비우면 난리가 났다. 식구들은 내가 일어서려고 하면 그냥 엄마는 삼봉이 옆에 있으라며 만류할 정도였다.

군기반장 딸은 2순위다. 본인 기분 좋을 때 갑자기 나타나 삼봉이를 정신 사납게 했지만 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줬다.

3순위는 신랑. 같이 산책하는 일이 많았고 간식에 박하지만 똥 치워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4위는 아들. 사실 삼봉이를 가장 애틋한 마음으로 접대(?)했던 건 아들 녀석이다. 어떻게 하면 삼봉이가 편할까, 어떻게 하면 삼봉이가 불편하지 않을까, 오매불망 어쩔 줄 몰라했기 때문이다. 안다가 떨어뜨리면 어쩌냐며 번쩍번쩍 안아 올리는 딸과는 반대로 제대로 한 번 안지도 못했다.

다만 베개 방향을 바꿔주고 장판 온도를 맞춰주고 햇볕을 가려주는 정도랄까? 어느 날은 존댓말도 하더라.

가끔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삼봉이가 저를 보는 표정이 너무 오묘해요. 무슨 뜻일까요?” 나는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차마 말해줄 수 없었다.

너 좀 꺼져줄래?인데…


기타 등등

이렇게 특징이 말도 못 하게 많은 우리 집 강아지 삼봉이는 집안 막내로서(재롱은 부리지 않았음) 확실한 한 식구가 되었다.

엄마 꼼짝마 / 오빠 방은 내외하기 / 나 좀 고장난 거 같아


삼봉이와의 시간

2020년 10월 21 입양,

2024년 3월 12일 무지개다리를 건너 강아지 별로 갔다.


우리 가족은 삼봉이와 함께 했던 기적의 시간을 경험했다.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행복했다.

삼봉이도 행복했겠지?


삼봉이를 보내고 힘든 시간을 보냈고, 사실은 지금도 힘들고 있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글로나마 이 먹먹한 그리움을 풀어내고 싶다.


사랑이 만들어 낸 기적

2부에서 계속.


by. 예쁨





내리는 비는 우산으로 마저 가릴 수 있지만

쏟아지는 그리움은 진정 막을 수가 없군요.

그냥 폭우로 마악 쏟아지니까요.


- 가슴에 내리는 비 中 / 윤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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