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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미국 교수가 멀찍이 보는 미국과 중국이야기

해양 패권전쟁

by Dr Sam

해양 패권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 16세기 스페인 무적함대에서 현대의 해양 전쟁까지


1588년, 대서양의 바람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Armada)—당대 최강이라 불리던 이 함대는 잉글랜드를 정복하기 위해 항해에 나섰지만, 영국 해군과 거친 폭풍에 의해 무릎을 꿇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전의 승패를 넘어, 해양 패권이 세계 질서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켰다. 이후 영국은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로 떠올랐고, 그 해양력이 산업혁명과 대영제국 건설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해양 패권 전쟁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한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보고서 "Ship Wars: Confronting China's Dual-Use Shipbuilding Empire"는 16세기의 무적함대 격파가 현대적으로 재현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번에는 총과 대포가 아닌, 조선소와 무역로가 전장의 중심이 되었다.


중국, 조선 산업을 무기로 삼다

보고서는 중국이 세계 최대 상업용 조선 산업을 군사력 확장의 발판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중국의 조선소에서는 단순한 화물선과 유조선만이 아니라, 해군이 필요할 때 즉시 군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박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민·군 겸용 조선 전략(Military-Civil Fusion)이다.

이는 단순한 산업 전략이 아니다. 16세기 스페인이 바다를 지배하려 했던 것처럼, 21세기의 중국은 세계 해양을 장악하려 한다.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거대한 군사력과 경제적 야망을 바탕으로 영국을 압박했듯이, 중국은 조선 산업을 활용해 글로벌 해양 패권을 차곡차곡 구축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세계 조선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치고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의 조선 수주량은 약 4920만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전년 대비 58% 증가하며 세계 시장의 71%를 차지했다. 이러한 성과로 중국은 15년 연속 세계 1위의 조선 강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24년 중국이 수주한 친환경 선박 주문은 세계 시장의 78.5%를 차지하며, 이는 중국 조선업계의 기술력 향상과 친환경 기술 개발 노력을 반영한다. 단순한 경제적 성공이 아닌,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넘어 전략적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일대일로를 통한 중국 해상기지 확보

중국은 여러 해상 기지와 항만을 확보하거나 관리하여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주요 해상 기지에는 다음과 같은 곳들이 있다:

지부티 (Djibouti) – 중국은 지부티에 군사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지는 중국의 첫 해외 군사 기지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의 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다.


파키스탄의 칸다르 (Gwadar) – 중국은 파키스탄의 칸다르 항만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 (Belt and Road Initiativ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로의 해상 물류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칸다르 항만을 군사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Hambantota) – 중국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만을 장기 임대하여 해상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 항만은 중국의 남아시아 및 인도양 지역에서의 해상 교통의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얀마의 아크야브 (Kyaukphyu) – 중국은 미얀마 아크야브 항만의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중국은 인도양으로의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모리셔스, 세이셸, 몰디브 등 작은 섬국가들 – 중국은 이들 국가와 협력하여 해상 기지 및 항만 시설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다양한 국가들과 협력하여 해상 기지 및 항만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글로벌 해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기술은 어디로 흐르는가

과거 스페인의 군사력이 네덜란드와 영국의 조선 기술 발전을 통해 약화되었듯이, 현대의 조선 경쟁에서도 기술이 어디로 흘러가는 가가 중요한 변수다. CSIS 보고서는 외국 기업들이 중국 조선소와 협력하면서, 의도치 않게 중국의 기술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과정은 낯설지 않다. 19세기 후반, 영국과 독일의 조선 기술이 일본으로 유입되며, 일본이 20세기 초 태평양전쟁에서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한 역사가 있다. 그리고 지금, 서방의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며, 미래의 바다에서 어떤 균형이 만들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과 동맹국의 선택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2025년 3월 11일 "Ship Wars: Confronting China's Dual-Use Shipbuilding Empir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동맹국이 이 상황을 방관해서는 안 되며, 대응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축을 제시하고 있다.


1. 민·군 겸용 조선 전략 차단


중국으로의 기술 이전 및 투자 제한

해외 조선소와의 협력을 보다 정밀하게 검토 2. 시장 지배력 약화


2. 시장 지배력 약화

미국 및 동맹국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 (보조금 및 인센티브)

중국 조선소에 대한 의존도 줄이기 (공급망 다변화)


3. 해군 및 조선 인프라 강화

미국 및 동맹국 내 조선소 현대화 및 확장

해군력 증강 및 함정 건조 속도 개선


이러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21세기의 무적함대는 스페인의 전철을 밟지 않고, 새로운 세계 해양질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다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최근 파나마 운하(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은 이를 반증한다. 최근 홍콩의 CK허치슨홀딩스가 파나마 운하 항구 운영권을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결정하자, 중국 내부에서는 배신 행위라는 비판이 일었고, 시진핑 주석은 이러한 일에 격노하며, 거래를 중지시킬 법적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파나마 운하는 미중 패권전쟁의 새로운 전선으로 주목받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16세기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바다를 제패하려 했을 때, 영국은 혁신적인 해군 전략으로 그 야망을 꺾었던 그 옛날 패권전쟁이, 21세기 세상의 중심에서 관세를 중심으로 한 무역전쟁이 주목받는 사이, 동시다발적인 미중 패권전쟁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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