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별잡: 법학도가 바라본 공간

알쓸별잡 지중해 뱃길이 열어준 로지컬씽킹

by 텐텐


알쓸별잡 지중해 편이 새롭게 시작하였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지구별 잡학사전의 지중해 편이다.

지중해 뱃길 따라 유럽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각 분야의 잡학 박사라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칭하는 대단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같은 주제를 서로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내가 아주 애정하는 시리즈 중 하나다.


'분명 나도 유럽 여행을 갔었는데, 같은 장소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쩜 저렇게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지 신기하면서도 인문, 과학, 건축, 문학 등 각자의 시선으로 어쩜 그리 같은 공간도 다르게 볼 수 있는지 들으면서 놀라게 된다. 이런 프로그램만큼은 2배속이 아닌 1배속으로 천천히 곱씹으며 보고 또 볼 정도로 매 장면이 신선한 충격이다.



'공간'이 무엇이길래 화면에 텍스트만 가득한 인터넷 공간을 우리는 가상공간이라고 칭할까?

한창 인터넷이 막 출현하여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1995년 즈음, 유현준 건축가는 산티냐치오 성당의 천장화에서 그 답을 찾았다. 원근법을 활용하여 천국을 구현한 산티냐치오 성당의 천장화는 지붕을 뚫고 천국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옆에서 보면 플랫한 평면일지라도 하나의 소실점을 통해 원근법을 극대화하며 깊이를 더한 공간을 보여준다. 즉,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이 공간이고, 텍스트뿐인 인터넷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머리는 상상으로 공간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럼 물리학자는 어떻게 바라볼까? 김상욱 물리학자에게 공간은 차원의 확장이고, 그 차원은 숫자로 정의된다. 즉 인터넷 공간은 숫자의 나열에 불과한 단순한 개념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20181006_152707.jpg 산티냐치오 성당의 천장화





나 역시도 2-3년 전, 메타버스라는 가상공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의자를 메타버스에서 똑같이 구현하면 우리는 그 둘을 같게 보아야 하는가? 법학자로서는 새로운 가상공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디자인, 저작권 침해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로써 새로운 가상공간은 실제 현실공간과 어떻게 다른지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의 법학 렌즈로 본 공간은 곧 규칙과 질서가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의 장이다. 법은 사람들이 충돌하지 않고 최대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정해놓은 최소한의 선이다. 법학은 단순히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창조하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조율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러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규칙과 질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무대로 느껴진다.




1. 공간 = 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


영화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다가도 국경을 넘으면 안전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짝꿍과 한 책상을 쓰면서 선을 그으며 "여기 넘어오면 다 내 거야!"라고 말하던 모습처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공간이 규칙과 원칙이 적용되는 범위라는 사실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법학적으로 확장해 보면, 공간은 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의미한다. 헌법은 특정 국가의 영토와 국민에게 적용되는 규범이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은 한국 영토 내에서 적용되며, 외국인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공간은 단순히 지리적 경계를 넘어 책임과 권한의 범위를 정의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계약서 Click - 사용약관에서의 공간

사용약관에서도 "공간"은 법적 효력의 범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예컨대, 글로벌 플랫폼 서비스의 약관에는 종종 서비스 제공 지역과 준거법이 명시된다.

소비자에게: "본 서비스는 대한민국 내에서만 제공됩니다."라는 약관 조항은 해외 접속 시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는 이러한 조항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사업자에게: 사업자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명시함으로써 불필요한 법적 책임을 줄이고 규제 준수 의무를 명확히 할 수 있다.



2. 공간 = 권리/의무의 실현의 장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법학적으로 해석하면, 공간은 사람들이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장(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지만, 공공장소에서는 이를 제한하는 규칙이 존재한다. 같은 행동이라도 특정 공간에서는 허용되고 다른 공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법이 각 공간에서 요구되는 사회적 질서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계약서 Click - 임대차계약에서의 공간

임대차계약은 물리적 공간을 둘러싼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규정한다.

소비자의 관점: 임차인은 계약서에 명시된 "사용 목적 제한" 조항을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본 건물은 주거용으로만 사용 가능하다."라는 조항이 있다면 상업 활동(예: 에어비앤비 운영)을 할 경우 계약 위반으로 간주될 수 있다.

사업자의 관점: 임대인은 "임차인은 퇴거 시 원상복구 의무를 가진다."라는 조항을 통해 계약 종료 후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방지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



3. 공간 = 언제나 정의가 변화할 수 있는 곳

이런 법학적 관점에서 공간은 언제나 변화할 수 있다. 우리의 사회적, 역사적, 기술적 맥락이 언제든지 변화되고 재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법학은 지지리도 고리타분한 학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중요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규칙을 정립하느라 신중함에서 오는 무게로 느릴 뿐, 사회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메타몽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계약서 Click - 디지털 사용약관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과 가상공간은 전통적인 물리적 경계를 초월한다.

소비자의 관점: 사용자는 "데이터 저장 위치"와 관련된 약관 조항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예컨대, "귀하의 데이터는 미국 서버에 저장됩니다."라는 조항은 개인정보 보호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데이터가 관리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사업자의 관점: 사업자는 가상공간에서도 준거법과 관할권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분쟁은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을 관할 법원으로 합니다."라는 조항을 통해 분쟁 해결 절차를 자국 내로 제한할 수 있다.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를 넘어서 인간의 활동과 관계, 권력이 작용하는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변화는 공간의 법적 정의를 변화시키는 핵심 동력이 된다. 근대 이전에는 공간이 주로 영토적 경계로 인식되었지만, 근대 이후 도시화와 산업화는 공간을 경제적·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역동적인 장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글로벌화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가상공간과 네트워크 공간에 대한 새로운 법적 정의와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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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법학렌즈로 마주했던 공간은 Do와 Don't가 있는 질서의 범위였다. 가끔 법조문을 보다 보면 정말 세심한 펜으로 땅따먹기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너의 감나무가 내 밭에 있는지 그 뿌리가 내 땅에서 시작이 되었는지 내 담장을 넘어왔는지 등 어찌 보면 치사할 정도로 생선 가시에 붙어있는 살을 발라내듯 다 헤집어놓아야 한다. 그만큼 각 공간의 경계선을 잘 이해하여야 하고, 그 공간 안에 해도 되는 것 혹은 있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거나 없어야 하는 것들의 자리를 잘 찾아줘야 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나에게는 공간 앞에 어떤 말이 수식해 주는지가 더욱 중요했다. '나의' 공간이라고 하면 내가 do와 don't를 정할 수 있는 내 규칙의 공간이기에 그곳에서는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개념의 공간이 생길 때는 아무것도 규칙이 없기에 더욱 긴장을 하게 된다.


나의 공간에 내가 자리할 때, 나는 어떠한 사회적인 페르소나도 없이 정말 순수한 내가 될 수 있고 그 공간은 그러라고 "나의"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이걸 읽고 있는 분 중에서도 분명 내 공간인데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속이 답답하다면 그건 아직 준비가 안된 공간일터이니 다시 한 번 재점검 하는 것을 권한다:)


언제든지 변화하는 세상 속에 나의 공간을 굳건히 지켜내는 프로젝트는 언제나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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