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elm]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연출 분석

01 "우린 결국 남이야"

by 삐얏


1. “중립”의 장소


전후좌우의 거리가 불과 800m인 공간. 코앞에 있지만, 그 너머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이쪽을 향해 총구를 들고 있는 동족이 있는 구역이 있다. ‘국제조약이나 협약, 협정으로 무장이 금지된 완충지대를 칭하는 지역.’ 바로 비무장지대이다. 흔히 DMZ (Demilitarized Zone)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있는 특수지역으로,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어느새 반세기 넘게 휴전 중인 두 나라가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이다. 공동경비구역은 원래 남북한 관계자들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에 벌어진 북한군의 도끼만행사건을 계기로 경비병과 보초병을 포함한 모든 군인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상대측 지역에 넘어갈 수 없게 엄격히 금지하였다. 양측은 개인적으로 다른 구역의 병사를 만나거나 말을 거는 것 또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복무한 남한 사병들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은 장소에서 안면이 있는 북한군과 수시로 담배와 술을 교환하는 등 접촉을 하였다고 알려졌다. 이러한 사실은 이념 대립으로 인해 찢어진 두 나라의 갈등이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보여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재가 되었다.


원작소설 작가 박상연의 ‘DMZ’를 바탕으로 제작된 <공동경비구역 JSA>는 2000년 9월 9일에 개봉하였지만,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냉혹하게 묘사한다. 공동경비구역의 북한 초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스위스 군법 무단의 소피 E. 장 소령 (이영애)'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 “Your ultimate goal is to remain perfectly neutral and not to provoke either the South or the North (너의 목표는 완벽히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남한 혹은 북한 그 어느 쪽도 자극하면 안 된다).” 은 중립국다운 요구이다. 그러나 영화는 “남북한 사이 비무장지대에서도 중립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초반부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소피 소령(이영애)이 총기사건의 용의자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대화를 시도하려 다가가자, 선임은 소령에게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빨갱이, 그리고 빨갱이들의 적. 여기에는 중립 설 자리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라고 말한다. ‘빨갱이들의 적’이라는 대사가 들리는 짧은 순간 무려 ‘두 마리’를 사살한 영웅으로 칭찬받는 이수혁 병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데, 이를 부인하듯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공허한 눈은 단번에 그가 선임의 말과 달리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수혁 병장은 ‘중립’인 것인가? <공동경비구역 JSA>는 총기난사 사건의 진실을 관객이 소피 소령과 함께 파헤쳐가는 구조로 시간을 역행하여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를 감상한 관객은 이수혁 병장이야말로 북한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영화 내 어느 등장인물보다 멀리 도망간 이중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C4%B8%C3%B3_2016_04_23_18_44_32_108.jpg?type=w800 이수혁(이병헌)은 과연 "빨생이들의 적"인 것인가?




2. 상징: 인간적 유대감


오경필(송강호)과 강아지를 안고 있는 정우진(신하균)

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에 긴장 이면에 존재하는 동족 감정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를 활용한다. 영화 초반에 소피 장이 남한과 북한을 차례로 탐문하며 초소를 둘러보는 장면에서 잠깐 다 큰 개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수혁 병장이 오경필 중사(송강호)와 정우진 전사(신하균)를 갈대밭에서 처음 만난 계기인 그 강아지가 어느덧 자라 개가 된 것이다. 이들의 친분의 기간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이 강아지는 또한 국가적 이념으로 서로를 언제든지 무자비하게 살해할 수 있는 북한군이지만 여느 한 인간처럼 작은 생명체를 소중히 다루고 이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아지를 식당으로 보내버리라는 선임의 명령에 울먹이며 강아지를 보내주는 정우진 전사의 애틋함은 잠시나마 비극적인 전쟁의 심각성에서 벗어나 그의 인간성을 비추어주는 장면이다.


정우진은 또한 그림 실력이 뛰어나 수첩에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 수첩을 소피 소령이 살피는 장면을 보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백지를 제외한 다른 쪽은 밥풀로 수첩 귀퉁이를 붙여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들이 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처럼 한 것을 보아, 정우진은 그만큼 다른 사람이 자신의 그림을 보는 것을 꺼렸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회상 장면을 보면,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일병에게만큼은 거리낌 없이 그림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남성진 일병의 여자친구를 그려주기도 하였다. 수첩은 정우진이 ‘그만큼 그림을 좋아하였다’가 아니라, ‘그만큼 이수혁과 남성식을 신뢰하였다’를 전달하는 훌륭한 소품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조선인민군이 전 전선에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심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음에도 작별 인사를 하러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남성석은 첫 번째 이유로 정우진의 생일을 언급한다. 생일 선물로 고급 붓과 물감을 주고 한낱 병사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군사분계선을 넘는다. 이 장면도 남성식이 마찬가지로 정우진을 신뢰하고 소중한 동생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인 것이다.


김광석의 대표곡으로 남자들의 송별회를 장식하는 곡하면 떠오르는 노래, 바로 ‘이등병의 편지’가 있다. 이별 상황을 앞두어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아쉬움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라는 대목에서 우러나오는 미래를 향한 기대가 담겨있는 곡으로 유명하다. 전우진 전사의 생일과 오경필 중사의 제대를 앞두고 긴장감이 심화된 상황에서 이수혁 병장과 남성식 병사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였을 때 북한 초소에는 이 곡이 흘러나오며 헤어짐을 암시한다. 이들의 우정의 끝맺음, 그리고 전쟁이 벌어진다면 “단 3분 안에 전사하게 되는 최전방”에서 서로를 사격해야 하지만, 그 후의 안녕을 기대하며 이 넷은 언제라도 서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주소를 교환하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초코파이를 먹고 유쾌하게 팔씨름을 하다 함께 인생을 돌아보며 담배를 태우는 등 이 넷을 연결해 주는 음악은 남북한이 언어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전쟁과 편견을 뛰어넘는 인간성을 상징하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꼭 들어볼 것




3. 촬영 시점: 아이러니


카메라는 눈이다. 관객은 카메라를 통해 영화의 이야기를 본다는 점에서 촬영 감독은 카메라의 각도를 조작하여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북한 초소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위해 남성식과 이수혁이 북한 초소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이 넷은 전쟁 중인 두 나라의 경계 최전방에서의 추억을 함축하듯 모자까지 바꾸어 쓰며 사진을 찍는다. 이때, 남성식은 카메라 구도를 흥미롭게도 계속 불편한 듯이 바꾸고 결국 무릎을 꿇으면서 셔터를 누르는데, 이는 벽에 걸려있는 김일성과 김정일 지도자의 초상화가 배경에 계속 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시점은 모자까지 바꿔 쓰고 환하게 웃는 세 병사들과 그 뒤에 걸린 북한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고, 남한과 북한의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을 상징한다. 당장 앞에 보이는 소중한 우정이 냉혹한 현실의 그림자에서 사라지는 듯한 효과를 주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가까워진 그들은 아직도 너무 멀기만 한 것이다.


e97a051b-14be-497f-a98f-73fddce90944.jpg?type=w800 세 병사 뒤로 이들을 압도하는 초상화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두 번 등장하는 Bird’s Eye View는 같은 장면을 같은 촬영 시점으로 다루지만 그 문맥과 연출에서 굉장히 다른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 초반, 소피 소령에게 전달된 병장 이수혁의 진술서는 그가 일방적으로 북한 초소로 납치를 당했고, 두 명을 사살한 후 기적적으로 탈출해 남한 영역으로 돌아온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레이션이 나올 때, 카메라는 부상을 입고 쓰러진 이수혁 병장을 호위하고 북한군을 향해 총을 쏘는 남한 병사들을 Bird’s Eye View로 찍는다. 주로 ‘신의 시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촬영 기법은 위에서 아래를 수직적으로 찍는 각도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훌륭한 업적을 이뤄 마침내 안전한 곳으로 귀환하는 이수혁의 모습을 전지전능한 신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촬영 시점은 진술서가 그를 ‘빨갱이들을 물리친 위인’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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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에 이수혁 병장은 마침내 북한 초소에서 최만수 상위가 들어온 후 벌어진 사건의 진실을 소피 소령에게 털어놓게 된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남성식과 이수혁은 최만수 상위와 정우진을 쏘게 되고, 오경필은 침착하게 이수혁과 남성식을 대피시킨다. 공동경비구역에서의 난 총소리를 듣고 출동한 양 군대는 무작위로 사격을 하게 되는데, 이때 ‘신의 시점’이라고도 불리는 Bird’s Eye View 촬영 기법은 사건의 전말이 다 밝혀지고 이수혁이 두 초소를 잇는 다리 위에 누워 공허한 눈으로 그의 눈 위를 지나가는 총알들을 응시하는 장면에 다시 사용된다. 이는 영화 초반에 그가 거짓으로 진술한 내용에서 나온 ‘신의 시점’ 컷과 대비가 되면서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두 나라의 끝나지 않는 갈등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소중한 우정을 “다 짜고 이러는 거 아닐까요?”라는 한 번의 의심 때문에 잃은 그를 위에서 바라보는 카메라는 더 이상 그를 귀환하는 성직자로 묘사하지 않는다. 인간성과 국가적 갈등을 뛰어넘는 우정에 대하여 고민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두 나라는 무자비하게 서로를 죽일 생각으로 총알을 퍼붓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마치 신이 인간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는 각도에서 관객은 더욱 감정적으로 전쟁의 비극성과 공동경비구역이라는 지역의 아이러니에 이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ownload.png?type=w800 두 지역 사이, '중립'적인 장소에서 쓰러지는 이수혁




4. 몽타주: 괴리감


영화가 시작되고 스위스 선임은 소피 소령에게 “Here, peace is preserved by hiding the truth (이곳에서는 진실을 숨김으로써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거야).”라고 전한다. 이 대사에서처럼 <공동경비구역 JSA>는 편집을 통해 두 나라의 갈등과 그리고 네 병사의 우정의 괴리감을 강조한다. 네 사람의 우정을 상징하는 장면 중에는 남성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북한 초소에서 햇빛을 반사하여 남한 초소의 창문을 비춘다. 이는 아마 전에 이수혁 병장이 오경필에게 선물한 담배 라이터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이 넷은 지하실에 모여 호두를 까서 먹거나 공기놀이와 같은 오락으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이 장면이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공기놀이를 통해 잠시나마 이 네 사람 사이에는 남북한의 분절이라는 갈등이 아니라 마치 아이들의 순수함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네 사람뿐 아니라 반 세기 간의 시간 동안 남북한 사람의 분단, 즉 ‘빨갱이’냐 ‘빨갱이의 적’이냐의 논쟁은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이념적 차이 때문인 것이다. 그것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카메라는 잠시나마 그러한 갈등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우정을 쌓는 네 어른을 멀리 비추다 이내 현실을 자각하듯 전우진 전사의 손을 비춘다. 그의 손에는 공기나 조약돌이 아닌 언제든지 서로를 사살할 수 있는 총탄 다섯 개가 들어있다. 이 장면 직후, 닭다리 싸움이나 손뼉 치기와 같이 어린 시절 모두가 즐겼던 오락거리를 즐기는 네 병사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그 괴리감에 더 크게 감정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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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편집 방식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판문점에서 보초 근무를 서고 있는 전우진 전사와 이수혁 병장은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그러나 이미 넘어버린 선을 사이에 두고 침을 뱉으며 장난을 친다. 전의 엄숙한 보초 근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환한 웃음을 지으며 유쾌한 모습은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북한군의 모습을 한 나무 모형의 심장 부분을 사격하는 훈련으로 편집이 된다. 이수혁 병장도 오경필 중사를 가리켜 “내 생명의 은인인데.”라고 하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능숙하게 북한군 모형의 눈과 미간을 정확하게 사격한다. 이 괴리감을 통해 영화는 또 한 번 겉으로 보기엔 유쾌하고 돈독한 우정 뒷면에는 모순적인 현실이 존재함을 차갑게 상기시킨다. 이러한 몽타주는 이들의 은밀한 관계가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또한 발각되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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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9억 원을 들여 완성한 영화로, 남북 군인의 우정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음에도 약 57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작품이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 청룡상 작품상 수상을 비롯해 2019년 기준 한국 영화 100선에 선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남북 분단을 소재로 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라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두 나라 병사들의 우정 사이에서 여전히 현존하는 긴장감을 뛰어난 연출로 표현한 박찬욱 감독의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동경비구역 JSA는>에는 네 등장인물의 국적과 이념을 뛰어넘는 인간적 유대감과 우정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정우진의 수첩이나 음악과 같은 여러 요소가 등장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분단의 현실을 망각하고 그들의 우정에 관객이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경의 초상화를 가리지 못하는 카메라의 시점이나, 자신의 “생명의 은인”의 형상을 한 표적을 쏘는 이수혁으로 편집되는 몽타주를 활용하였다. 이러한 연출기법을 활용함으로써 <공동경비구역 JSA>는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끔찍한 비극과 분단된 민족 사이에 존재하는 참혹성을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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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출처:

“DMZ 생태와 한반도 평화” (동국대학교 북한연구소 편, 아카넷, 2006);공동경비구역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6207)에서 재인용.

공동경비구역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6207)



추신:

글을 쓰면서 많이 분량을 줄였습니다. 관심있는 분이 계시면 더 적어보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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