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이전의 이야기
[본 내용은 개인파산과 관련해 정확한 법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정보 참고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25살이 되던 해 1월, 나는 파산선고를 받았다 > - (1)
1.
파산 이전의 이야기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겐 들려주고 싶었다.
친구에게 말하자니 나를 불쌍하게 볼까 걱정됐다. 그렇다고 내가 아예 불쌍하지 않다는 얘긴 아니지만, 그래도 동정 받을 만큼 가엽지는 않다.
그리고 남들이 내가 파산했다는 이유로 나를 불쌍하게 본다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나를 파산하게 만든 장본인인 우리 엄마가.
나는 이 글이 부디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에게 닿지 않기를 기도한다.
흔한 레퍼토리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우리집은 내가 어릴 때부터 가난했었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가난했었다'는 과거형은 틀린 표현이다.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집은 늘 돈이 없었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경쟁하듯 과거의 궁핍한 경험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저 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배경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금은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에 큰 감흥이 없다.
물론 여전히 속상하고 아직도 이따금 저 깊숙한 안쪽에 불을 질러놓긴 하지만, 어릴 때처럼 눈물이 날 만큼 억울하고 참담하진 않다는 뜻이다.
익숙한 것이 당연하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느껴질 만큼 겪어봐서일까.
겨울철 길바닥에 굴러가는 눈덩이보다 더 빠르게 불어나는 것이 빚이다.
우리집 빚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내가 태어난 뒤로는 점점 불어났다.
결국 나는 평생 빚이 없는 집에선 살아본 적이 없는 성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다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빚이 없는 집안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 빚이 '내 빚'은 아니었다.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우리집을 돌보느라 생긴 빚이었으니까.
맏딸로 살면서 부모님만큼이나 그 빚의 무게를 어깨에 이고 자랐지만, 사실 앞으로 내가 혼자 걸어갈 길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내 명의의 빚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드시 내가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내 책임감의 산물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은 어린아이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빚을 아이의 이름으로 달아두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 내가 어릴 때, 우리집이 가난할 때, 엄마와 아빠가 집을 지키기 위해 본인들 명의로 어마어마한 가계빚을 지고 있을 때.
나는 어렸다.
하지만 어린 나는 자랐고, 또 자랐고, 멈추지 않고 자랐다.
결국 나는 성인이 되고 말았다.
그 말은, 이제 내 이름으로 된 새로운 빚을 질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내가 빚 진 돈을 직접 써본 적이 없었다.
그 돈으로 사치를 부린 적도, 여유를 떨어본 적도, 아니 그냥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다.
실제로 본 적도 없는 그 돈은 내 이름 석 자를 달고 빚이 되어서 내가 자라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자랐다.
나는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인가?
섣불리 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내가 먹은 것, 입은 것, 눕고 기대어 산 집. 이 모든 것에 그 돈이 자잘히 조각나 흘러 들어갔으니까.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 있다.
나의 부모는 평생 빚을 지며 살았고,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내 이름으로도 빚을 졌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어느 돈으로든 도박을 하거나 사치를 부려본 사람은 없다.
성실하게 아이들(내 밑으로 동생이 있다)을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했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빚이라는 건 원래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한테서 더 부지런하게 늘어난다.
아무튼 그렇게 자라나고 늘어나고 불어난 내 빚은,
내가 이제 막 스물다섯이 되려고 할 때,
아직도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
1억이 됐다.
첫 번째 이야기를 마치며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이유 중 '감정'은 없다.
누군가에게 화내기 위해서도, 나를 연민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나만 있지는 않을 거라 확신한다.
(힘들 땐 이 세상에서 나만 이런 일을 겪는다고 단언하면서 끝도 없이 좌절하지만, 그건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다)
아마도 나와 비슷하게 힘들고 막막한 사람이 있다면, 부디 그 사람에게 닿기를 바라며 썼다.
우리가 겪는 불행 중에는 같은 것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 위로가 되는 불행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