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의 빚이 생기는 과정 (과정편)
[본 내용은 개인파산과 관련해 정확한 법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정보 참고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25살이 되던 해 1월, 나는 파산선고를 받았다 > - (2)
2.
1억 원의 빚이 생기는 과정 (과정편)
이 글을 쓰겠다고 좁은 서랍장 제일 밑바닥에서 뚱뚱한 플라스틱 파일 하나를 겨우 끄집어냈다.
그 안에는 법원에서 받았던 서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각종 고지서, 나를 증명하거나 내 빚을 증명하는 서류들이 한 데 모여있었다.
서류에 적힌 내 빚의 정확한 액수는 9천7백만 원이었다.
내 앞으로 사업자 대출이 몇 천, 카드값이 또 몇 천이었다.
분명 내가 겪어온 바로는 '티끌 모아 티끌'이던데, 티끌 같던 빚은 언제 이렇게 태산이 됐을까.
태산의 시작은 또다시 과거에 있다.
우리집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맞벌이였다. 별 것 없는 궁핍한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내가 기고, 걷고, 뛰게 될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궁핍했던 시작을 타개하기 위해 열심이던 젊은 날의 아빠는 몇 번 사업을 시도했고, 몇 번 좌절했다.
사업의 시도와 좌절 사이는 우려와 기대가 담긴 빚이 채웠고, 젊은 아빠와 엄마의 신용점수가 곤두박질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후로 부모님은 오래도록 일했지만, 네 식구의 생활을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밀리고 밀려 갈 곳이 없던 두 사람은 결국 그늘진 곳으로 밀려나 어두운 돈까지 빌리게 된 역사가 있었다.
매달 돈을 받으러 오는 통칭 ‘아저씨’가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건 내게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일상이었다.
우리집은 매달 대출금과 대출이자를 갚는 데에만 한 달치 수입을 전부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빚을 갚으면서 먹고, 입고, 살다 보면 새 빚이 늘고, 늘고, 또 늘었다.
내가 고2에 올라갈 때쯤, 엄마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본인의 손재주를 살려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아주 작은 규모의 일이었다. 사업장은 주방과의 분리가 없던 당시 우리집 거실 한 켠이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좋아서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했다.
공업용 재봉틀을 거실 한 켠에 들이고 엄마는 매일 뭔가를 만들었다. 만든 것을 팔아줄 만한 매장을 찾아다니고, 한동안은 정기적으로 거래처에 제품을 입고하기도 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작은 사업은 나름대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듯했지만, 엄마가 다니던 회사의 월급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익이었다.
초반 몇 달은 얄밉게 올라갈 듯 말 듯 제자리인 수익 그래프를 보고도 그러려니 했다. 이제 시작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프는 1년이 지나고 2년을 꽉 채울 동안에도 큰 움직임이 없었다. 뒤로 갈수록 오히려 떨어지는 추세였다.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다 받았다. 이미 신용불량자급의 신용점수를 가진 엄마는 사업자 명의를 껴봐도 새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엄마는 신용회복 중이었다.
아빠가 여름에 더위를 먹고 겨울에 손등이 터지도록 일해도, 엄마가 발에 땀나게 뛰고 브랜딩 수업을 공부해 가며 미싱을 해도.
수도꼭지 틀어놓은 세면대에 물 넘치듯 늘어나는 대출이자와 생활비는 감당할 수 없었다.
새로운 돈이 필요했다.
새로운 돈을 빌려 우선 급한 걸 막고 다시 그 돈을 다달이 쪼개서 갚기 시작하는, 평생을 반복해서 굴려온 쳇바퀴.
그 쳇바퀴에 이제 나도 같이 올라타야 할 시점이었다.
엄마아빠의 새 대출 전략은 이러했다.
엄마가 하고 있던 엄마 명의의 사업은 폐업신고 한다. (더 이상 유지할 가치가 없었다)
그다음, 내 명의로 새로운 사업자를 등록한다.
'스무 살에 야심 차게 창업을 준비하는 나'는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사업자대출을 받는다.
뭉터기의 새로운 돈을 받으면 당장 밀려서 터지기 직전의 돈들을 해결한다.
발등에 번진 불을 끄고 나면 아빠는 여전히 일하고, 엄마는 여전히 미싱을 돌린다.
그렇게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이전과 다르게 수입이 안정적으로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
그 수입으로 뭉터기의 대출금을 천천히, 조금씩 갚아나간다.
이론상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계획이었고, 설령 그 문제가 내 눈에 보인다 해도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었다.
엄마랑 몇 주, 아니 몇 달이었나. 아무튼 꽤 오랜 기간을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온갖 행정센터에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이제 막 성인 딱지를 받은 나는 신용대출을 받을만한 신용이 없었기에 그만큼 내 역량이 많이 필요했다.
나는 마치 어릴 때부터 이 사업을 꿈꿔왔던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다니며 내 사업계획을 들려주고 내가 얼마나 돈을 빌리기에 마땅한 사람인지 열심히 어필했다. 그들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가늠하고, 적당히 의심해 본 뒤에 돈을 빌려주었다.
사업자 대출 심사를 위해 심사관이 사업장을 확인하러 방문해야 한다고 했고, 그 말은 곧 심사관이 우리집에 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방문 시간에 맞춰 엄마아빠는 집을 비웠다. 그리고 혼자 남은 나는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켜둔 채 심사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매일 엄마가 앉는 재봉틀을 보여주며 내가 여기 앉아 이런 식으로 미싱을 한다고 꾸며냈고, 옆에 쌓인 자재를 들추며 이건 어떤 재료인지 설명했다.
어떻게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엄마와 열심히 연습한 대로 물음에 답했다.
혹시나 연습하지 못한 질문이 들이닥칠까 봐 마음을 졸였다.
심사관이 넘겨주는 서류 뭉치에 연거푸 내 이름을 썼다.
엄마아빠가 집에 돌아왔을 땐 녹음해 두었던 음성을 재생해 들려주었다.
녹음된 내 목소리에는 긴장해 얼어붙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과정을 수 차례 반복했다.
시청에서, 소상공인 진흥공단 어느 센터에서, 은행의 사업자 대출 창구에서.
아직 편의점이나 호프집에서도 몇 번 내밀어본 적 없던 신분증을 공무원과 은행 직원들에게 수도 없이 내밀었다.
나는 그야말로 '바지사장'이었다.
실질적으로 그 사업자를 굴린 건 전부 엄마였다.
미싱을 돌려 매일 일을 한 것도, 빌린 돈을 쓴 것도, 그리고 열심히 갚은 것도.
하지만, 엄마아빠가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은 계획만큼 순탄하게 굴러가지 않았다.
내 이름으로 사업자를 등록했고, 돈을 빌렸고, 급한 것들을 해결했지만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금방 갚아지진 않았다.
새로운 돈은 매번 다시, 또다시 필요했다.
결국 갚아야 할 대출금 목록에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상품 몇 개가 늘었다.
그렇게 엄마가 내 이름으로 빌리고, 갚고, 일하기 시작하니 내 신용점수가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올랐다.
덕분에 엄마아빠는 내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필요한 생활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다음 달에 갚았다. 이걸 몇 번 하고 나니 신용카드 한도가 잘도 늘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수 차례 엄마가 전해준 링크에 공인인인증서를 등록했고, 문자로 오는 인증번호를 읽어줬으며 나는 엄마인 척, 엄마는 나인 척 전화를 받았다.
거진 5년을 그렇게 지냈다.
우리집 정수기 렌탈도, 도시가스요금 자동이체 통장도, 아빠가 캐피탈로 장기렌트한 자동차도 전부 다 내 명의였다.
내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가 다섯 개를 넘겼다.
정작 내가 지갑에 들고 다니는 카드는 카카오뱅크 체크카드 하나였다.
내가 직접 쓰는 돈은 전부 거기서만 움직였다.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들어오는 돈, 커피를 사 먹거나 친구를 만나며 쓰는 돈. 내가 알고 있는 정확한 액수의 돈은 그 체크카드 통장 하나뿐이었다.
내 이름을 단 빚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면 엄마아빠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도 없이 맹렬하게 몸집을 부풀려갔다.
두 번째 이야기를 마치며
1억 원의 빚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과정을 거꾸로 더듬다 보니 그때 생각이 나 많이 울었습니다.
복기하는 것이 쉽지 않아 여러 번 다시 시도해 가며 겨우 썼네요.
'과정편'인만큼 최대한 일대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어디가 얼마나 눈물 났는지는 많이 생략했습니다.
따라서 이 다음 이야기는 '1억 원의 빚이 생기는 과정 (심정편)'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심정편에서는 이 과정을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 위주로 적어볼 생각입니다.
그러니 이번 편이 보기 답답하고 조금은 한심해 보여도 부디 다음 편을 기다려주세요!
여전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고, 이 마음이 필요한 이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