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나야
요 며칠 동안 세상만사가
모두 귀찮게 느껴진다.
원래가 게으르고 귀찮음을
달고 살지만 요즘은 좀
정도가 심한 듯하다.
침대나 소파에 붙어 꼼짝 않은 채로
눈조차 뜨기 싫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인 가장의 삶이
매일 아침 나를 일으켜 세워
출근길 행렬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럴 때면 의식의 네트워크를 절전모드로
바꾸고 눈도 반쯤 감고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휘적휘적 걸으며 망상을 한다.
오늘 든 따끈따끈한 망상은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귀차니즘이
충만한 걸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이내 태초에 있던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시대를 걸쳐 점점 불어나고 진화하여
사람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
내가 아닐까?라는 망상이다.
'귀차니즘으로 만들어진 사람'
나도 의욕적이고 싶고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말이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낸 것이
고작 귀차니즘의 의인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살기 위해
오늘도 성실하게 출근한 것을 보면
역시 나는 귀차니즘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니
오늘의 망상은 그만두고
귀차니즘과 공존하며 하루를 잘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