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더 느리게.

아가가 엄마에게 전해준 선물.

by 가은

유산 직후에는 온 세상이 너무 시끄러운 느낌이었다.

티비속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기 싫고.

SNS 속의 다른 사람들 사는 이야기도.

인터넷 속의 이런저런 이야기도.

그저 시끄럽고 머리 아픈 느낌.


Tv를 꺼버리고 난 후 조용해지는 것처럼.

가급적 밖에서 오는 모든 이야기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까짓 게 무슨 대수야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티비도 안 보고. 핸드폰도 안 하고.

그냥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의 충실한 보살핌으로 잘 먹고 잘 지내며 몸을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고.

너무나 소중한 아이의 얼굴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끄러웠던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씩 정리가 되고.

해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오히려 나를 둘러싼 세상이 고요해진 느낌...


이번 일은 계기로. 경주마처럼 달리던 생활에 제동을 걸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 단순한 생활에만 집중하며.

나의 생활은 조금씩 정갈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마실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간단히라도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빠르게 걷지 않고 조급하지 않으려 늘 신경 쓴다.


아들의 존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진심 어리게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가 원하는 걸 함께하며.

아주 느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느리게 더 느리게


마음속의 세상이 고요해지니.

나를 둘러싼 아름다운 세상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여유로운 마음으로(충만한 마음으로)

진심 어리게 커나가는 아이를 바라본 시간이 얼마나 있었던가.


내가 먹는 밥상의 음식들을 충분히 씹고 음미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


휴식을 충분히 취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본 게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면. 떠난 우리 아가는.

나에게 참 복덩이다.


평생을 바꾸지 못했던 식습관을 고치게 하고(친정엄마도 남편도 포기했던 편식도 고치게 하고..)

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의 가치를 마음속 깊게 배우게 한다.


둘째를 다시 만날 그 날엔.

왠지 몸도 맘도 더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썩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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