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력서 다시 쓰기

#2 육아 경력을 새로 기록하다, 전업맘 엄마 이력서

by rest

78kg의 뚱뚱이 아줌마가 되기 전 나름(?) 찬란했던 과거가 있었다. 나의 직업 변천기를 한번 돌아보기로 한다.



1 나는 대학을 아직 졸업하기 전 23살의 나이에 꿈에 그리던 외국계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러나 회사 타이틀만 보고,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업무에 적응하지 못했다.


당시 통관 업무를 담당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일과 실제의 회사 일은 너무도 달랐다. 내 상상 속의 나는 외국계 바이어들과 글로벌하게 소통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콜 업무를 주로 담당했고, 그마저도 그냥 통관 민원처리에 가까웠다. 통관이 언제 되느냐, 지금 물건이 어디쯤 오고 있냐, 왜 통관 심사가 안되느냐 등등. 해외에서 수입되는 물건들을 얼마나 빨리, 많이 통관시키느냐가 중요했다.


업무량이 많아서 업무 시간 내내 헤드폰을 끼고 콜이 들어오는 민원 전화를 받으면서 동시에 기계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어느 순간 현타가 왔다. 연봉은 나쁘지 않았지만 내 몸을 갉아먹으면서 돈을 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일은 내가 아니어도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년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주위에서는 그래도 좋은 회사인데 참고 버텨라, 일하다 보면 다른 직무로 옮길 수도 있다고 많이 조언해주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그냥 여길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직 젊으니까 지금 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이직도 고려하지 않고,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겠다 생각뿐이었다.

그래도 퇴직금은 받고 나와야겠다 싶어서 1년을 딱 채우고 사직서를 제출한다.


2 퇴사 후 계약직 비서로 일하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로 한다. 당시 직장은 꿀보직(?)이라고 느낄 정도로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솔직히 일의 강도만 따지면 더 있고 싶었다. 일하는 강도에 비하면 버는 돈도 나쁘지 않았지만 계약직으로 기간이 만료되면 자연스럽게 퇴사였다. 정규직 연장의 기회는 없었다.


비서로 일해보니 비서라는 직업은 내가 원하는 직업에 가깝지는 않은 것 같았다. 물론 훌륭하고 멋진 비서 선배님들도 많았다. 그러나 MBTI에서 찐 I형인 내 성격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센스 있게 상사를 보조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혼자 일하는 시간이 좋고,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말보다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니 계속 일한다고 해도 맞지 않는 가면을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겪으면서 점점 더 나 자신을 알게 되었다.


3 첫 직장의 실패를 보완하고자 두 번째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하게 된다.

-나는 책을 좋아하니까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돈을 받지 않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되면서도 워라벨이 탄탄한 회사여야 했다.

-말보다는 글을 쓰는 업종을 하고 싶었다.

이것들을 나의 중국어 전공과 결합해서 중국어 교재 편집회사에 취업을 했다. 작지만 나름 교재 관련해서는 탄탄한 회사였고, 이제야 내 적성을 찾은 건가 싶었다. 계속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3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자마자 회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는다. 결혼이 그 이유였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좀 억울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갓 입사한 26살이 회사에 뼈를 갈겠다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결혼 준비를 하면서 결혼한다고 했으니...

또 편집자 특성상 전부 여자들만 있었던 여초 회사였다. 당시 위의 선배들은 미혼자도 많았고, 기혼자여도 아이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출산은 언제 할지 생각했을 것 같고, 회사에서는 차라리 수습기간에 빨리 나가는 게 좋을 거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


또 지금 생각해보면 업무적으로도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으니 내가 많이 부족했었다. 업무 중간에 나가서 웨딩플래너와 통화하고 퇴근하면 드레스를 보러 다녔다. 공부를 많이 했어야 하는데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입사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시작인 줄도 모르고...


그래서 결혼은 무사히 잘했지만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4 그래서 결혼 이후 또다시 직업 고민을 하게 된다. 이쯤 되면 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걸까? 많은 고뇌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그때 남편이 많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지금까지 시간들이 전혀 헛되지 않았을 거라고, 다시 0에서 시작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하면 된다고!

그래서 방과 후 중국어 강사로의 제3의 직장을 찾았으며 웬만한 대기업만큼의 수익도 벌어봤다. 또 업무적으로도 내가 찾던 최상의 직장이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고, 아이들이 중국어를 좋아한다는 문자를 받으면 뿌듯하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방과 후 우수강사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돈도 벌고 보람도 찾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출산 이후 육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두게 된다. 남편의 수입이 나보다 더 좋았으니 남편이 일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내가 수입이 더 좋았다면 내가 아니라 남편이 전업 아빠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아직 어린 쭌이를 남의 손에 맡기기엔 불안했고 내 손으로 직접 키우고 싶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맞물리면서 초등학교의 방과 후 학교들 대부분이 쉬게 된다.


과연 우리 시대의 여성 중에 결혼, 임신, 출산과 같은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가 빠르게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여성에 비하면 미미한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경력 단절 사유 또한 결혼, 육아, 임신과 출산이 여전히 큰 문제로 남아있다.


나는 언제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지, 분유는 얼마나 타야 하는지, 이유식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기가 막히게 잘 아는 전업맘이다. 또 아이의 육아가 최선인 상황이므로 아이와의 유대감을 어떻게 쌓고 아이와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지 아는 전업맘이다.


그렇지만 아이는 언젠가 큰다. 육아는 순간이지만 앞으로의 내 삶은 많이 남아있다. 아이가 다 크고 나서 내 모습을 그려보니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영원히 전엄맘이 마지막 경력인 이력서로 남긴 싫었다.


자의든 타의든 여러 번의 퇴사 경험을 통해서 현재에 남은 나의 경력은 무엇일까? 이제 다시 이력서를 써보기로 했다.

4년제 대학 중국어 전공자 + 다양한 직업 경력(과거) + 육아 경력 5년 차(현재) : 엄마 이력서를 어떻게 다시 재조합할 것인가!!


현재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의 나는 5살 쭌이 엄마다. 아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기관에 맡겨도 잘 다니고 있다. 코로나도 종식을 향해 달려가면서 방과 후 학교도 다시 속속들이 재개했다. 실제로 올해 초 한 초등학교에서 다시 방과 후 중국어 강사로 일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지금 내가 처한 육아 상황>

무조건 쭌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기관에 맡긴다.(양가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시고, 혹시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이라도 손자를 온전히 맡기는 건 불효라고 생각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쭌이가 기관에 있는 9시-5시 중에만 일한다.

혹시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 쉬는 날을 대비해야 한다. (등 하원 도우미를 쓴다고 하더라도 이문제가 가장 컸다.)


나는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는 직업을 하고 싶었다. 물론 기관에 쭌이를 더 늦게까지 맡겨도 되고 등 하원 도우미를 써도 된다. 전혀 문제없고 괜찮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어떤 가치 판단이 가장 중요한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나는 쭌이가 엄마 손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들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크면 돌아오지 않는 이 시간들에서 최대한 엄마와의 교감을 많이 갖는 게 좋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혹시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 방학 때, 갑작스러운 상황에 옆에 같이 었어주고 싶었다. 동시에 내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자존감도 찾고, 돈도 벌고 싶었다.


그런데 방과 후 학교는 빨라도 6시는 넘어서 끝난다. 아이와의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방과 후 학교로 돌아가기보다 좀 더 자유로운 시간관리를 할 수 있는 직업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방과 후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프리랜서이자 1인 기업가의 삶은 어떨까? 나 스스로 시간의 통제성이 주어진다면 엄마와 육아 동시에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시간 관리는 프리랜서의 장점이면서 엄마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하고, 남는 시간에는 집필과 독서 활동을 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 이때부터 나의 프리랜서 도전기가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의 독서 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