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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치남 Nov 18. 2021

우울증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의 닥터를 만나다. 

  동네 새로 개원한 병원이 좋았던 점은 당연히 집에서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약 때부터 마음에 들었던 점이 두 가지가 있는데 타 병원에 비해서 검사비 포함, 초진비가 5만 원으로 매우 저렴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초진비 (검사지 및 진료 포함)를 3만 원에서 ~ 18만 원까지 받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카톡을 이용한 검사지를 이용하고 예약을 잡는다는 것이다. 초진 하루 전엔가 카톡으로 들어가서 핸드폰으로 검사지를 미리 체크하고 방문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혼자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당일날 가서 병원에서 검사지를 받고 씨름하다 보면 아무래도 조급하게 되고 1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예약을 잡으면 당일날 확인 카톡이 오고 방문 전에도 다시 카톡으로 확인, 혹은 취소나 연기를 할 수 있다. 요즘 트렌드를 잘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방문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새롭게 개원한 병원답게 건물 입구부터 병원 내부까지 밝고 화사하고 깔끔했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도 마음에 들었고 창쪽으로 장 테이블이 있어서 시간이 남으면 앉아서 노트북을 켜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호사 선생님도 친절하고 의사 선생님도 젊고 엘리트 향기가 풍기는 안경을 쓰시고 샤프한 생김새가 마음에 들었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을까요?"

  "네, 우울증으로 4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집에서 멀어서 병원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어떤 부분이 힘드신가요?"

  "네, 불면증이 심했고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욱해서 기분이 상하고 목소리가 날이 서서 상대편의 맘을 상하게 하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약을 먹고는 좀 좋아지신 것 같나요?"

  "네, 이전보다 일단 잠을 잘 자게 되었고요, 늘 불안해하는 것도 조금 안정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럼, 드시던 약이 어떤 것인지 아시나요?"

  "네, 일부러 제가 약봉투를 사진 찍어 왔습니다."


 아고틴정 25mg 노란색 정제 - 체내 신경전달 물질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약.
명세핀정 6mg 초록색 정제 (불면증 단기 치료제) - 중추에 작용하여 수면을 유도함으로써 불면증을 개선해하는 약.
 알프람정 0.25mg 흰색 정제 - 진정 및 안정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각종 불안장애를 개선하는 약.

 

  "아, 그런데 저희 병원에 똑같은 약은 없고 동일한 효과의 다른 약으로 대체해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괜찮습니다. 효과가 중요한 거지요."

  "네 그럼, 일단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일주일 경과를 보시고 다시 조정하도록 하죠."


  의사 선생님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아끼시는 스타일이었고 난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전에 괴팍한 의사 선생님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적이 있어서 차라리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차분한 분이 더 낫다고 생각되었다. 자신의 성향이나 지금의 상황을 제일 잘 파악하고 있을 터이니 내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리드해주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2021년 09월 17일

  [아침 식사 후]
  인데놀정 10mg  - 기외수축(상실성, 심실성), 발작성 빈맥의 예방, 빈맥성 심방세동, 발작성 심방세동, 동빈맥, 협심증, 고혈압, 비후성 대동맥 판하 협착증, 크롬 친화 세포종에 효과
  자나팜정 0.25 mg   - 불안장애의 치료 및 불안증상의 단기 완화, 정신신체장애(위·십이지장궤양, 과민성 대장증후군, 자율신경 실조증)에서의 불안·긴장·우울·수면장애

  [자기 전]
  뉴프람정 10mg     -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약 
  자나팜정 0.5 mg     
  인데놀정 10mg  

   [병원에서 환자용으로 준 처방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생기고 나서 전 병원부터 약국의 봉투 기록을 사진 찍어 남겨놨는데 이번에 병원은 특이하게 직접 약을 제조해서 주었다. 정신의학과는 도대체 어떤 구조라서 어떤 병원은 직접 약을 제조할 수 있는지 살짝 궁금했다. 어쨌든 약국에 들리지 않고 병원에서 결제할 때 바로 약까지 주니 너무 편리했다.


  그런데 약효가 이전 같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특히 마음의 불안감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주가 지나고 말씀을 드렸는데 한주만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두 주째가 지나고 나서 약을 변경했다.

  

  "뉴프람정을 브린텔릭스정으로 바꿔드릴 건데 위장장애가 약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주 투약해보고 다시 상의하시죠."

   2021년 10월 01일

  [아침 식사 후]
  자나팜정 0.25mg       
  인데놀정 10mg         

  [자기 전]
  브린텔릭스정 10mg  - 우울장애 치료
  인데놀정 10mg  
  자나팜정 0.5mg         


  다행히 큰 위장장애는 없었고 불안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바뀐 약이 잘 맞으시던가요?"

  "네, 걱정했던 위장장애도 없고, 불안감도 많이 가셨습니다.

  "그럼 한 주간 특별한 일은 없으셨고요?"

  "가끔 마음이 다운되고 밤에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이 확 밀려오는 것이 좀 힘들었습니다."

  "코로나라 조심하시긴 해야겠지만, 사람들과 좀 어울리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이제 4단계가 풀리면 걷기 모임이나 교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보려고 합니다."

  "네, 그런 적극성이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재택근무로 몇 안 되는 직원들과 고객사 담당자들도 만나기 어려워졌다. 가족들이 있는 사람들이면 재택근무를 하면서라도 사람 냄새가 그리워지지는 않겠지만 독거 중년인 나에겐 사람 소리가 그립다. 그래서 매일 카페에 나가서 일을 보고 글도 쓰고 한다. 팬데믹 시대가 빨리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병이나 그렇겠지만 특히 신경과 치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담당의라고 생각된다. 다른 병은 내 병의 상태만 설명하면 되지만 정신의학 담당의에게는 매주 또는 격주로 만나 내 인생을 상담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 속마음까지도 털어놓게 된다.


  '상담 치료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그냥 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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