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밤》 김광석
불빛 하나둘 꺼져 갈 때
조용히 들리는 소리
가만히 나에게서 멀어져 가면
눈물 그 위로 떨어지네
외롭게 나만 남은 이 공간
되올 수 없는 시간들
빛바랜 사진 속에 내 모습은
더욱더 쓸쓸하게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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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2년 2월 19일 토요일 오전 11시경,
어떤 남자 환자분의 어깨를 치료해 드리다가
갑자기 뇌출혈이 왔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여덟,
임상 12년차 물리치료사이자
두 초등학생의 아빠였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던 바로 그 시기에
내 인생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팔이 잘 올라가지 않는 분에게 서서 M.E.T
(힘을 줬다 뺐다 반복하는 기법)를
시행하던 중이었다.
환자분에게 힘을 주는 순간,
뒤통수 속에서 ‘찌직’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강도의
두통이 밀려왔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 환자분의 치료가 딱 1분 남은 시점이라
꾸역꾸역 “안녕히 가세요”라고 말하고
급하게 보내드렸다.
쭈그려 앉아서 머리를 움켜쥔 채로 인사한 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엔 다른 선생님들 모두
내가 장난치는 줄로만 알았다.
부장님이 본인 테이블 위에 누워보라고 하시더니
“이런 두통은 이 근육 때문”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부장님께서 목 뒤쪽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누운 지 3초도 안 돼서
침대옆으로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실력 있는 동료 형님께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바로 원장님께 데려갔다.
원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지금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원광대병원에 계신 동생 의사에게
급히 전화를 넣으며
“지금 급한 환자 보낼 테니까 잘 좀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슬리퍼에서 신발로 갈아신은 다음에
형님이 부르는 방향으로 비틀비틀 걸어 나간 다음,
겨우 차에 올라탔다.
형님의 차는 파란색 오픈카였는데,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속도로 내달렸다.
형님은 과속카메라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군산에서 익산까지 약 15분 만에 데려다주셨다.
그야말로 ‘멋짐 폭발’이었다.
가는 내내 머리가 너무 아파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겨울이었는데도 너무 아파서였을까.
차 뚜껑을 연 다음
대시보드 위에 양발을 올리고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속카메라에 여러 번 찍혀서
벌금을 꽤 내셨다고 한다.
그것은 내가 정상적인 몸으로 떠난
마지막 드라이브였다.
한참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쪽 얼굴의 감각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빠른 속도로 마비됐다.
내가 좀비로 변해가는 느낌이었다.
삼차신경 가지를 따라서 마비가 정확히 퍼지는 게
손에 잡힐 듯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단 2초 만에 내 왼쪽 얼굴이 감각을 잃었다.
나는 속으로 ‘아, 이건 정말 잘못됐다’고 느꼈다.
형님에게 “혹시 제가 못 일어나면
저희 가족 좀 부탁드려요”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와이프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도
“여보, 나 환자 치료하다가”까지만 쓰고
두통 때문에 더 이상 이어 쓰지 못했다.
그게 멀쩡한 두 손으로 보낸 마지막 문자였다.
천국에 도착한 지옥에서 보낸 마지막 카톡이었다.
와이프는 장난인 줄 알고
“왜? Room nine 꼈어?”라고 답했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나는 죽을 것처럼 아픈데
응급실 입구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래, 아무리 아파도 방역수칙은 지키자’라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응급실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자마자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크게 들렸고,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5분도 안 돼서 그랬으니 말이다.
그 순간, 나는 지나가는 의사 선생님의 팔을 붙잡고
“제발 살려주세요, 모르핀!”이라고 외쳤다.
유교보이인 내가 반말까지 했다는 건,
참을 수 없이 아팠다는 뜻이다.
모르핀을 맞아도 10초만 편했고,
다시 지옥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잔상이 남은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려 보였다.
목소리는 모두 괴물처럼 들렸다.
신기하면서도 너무 무서웠다.
20분이나 지났을까, 와이프가 울면서 나타났고
그 순간 아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했다.
나중에 들으니 출혈이 두 번 연속으로 일어났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
일반병실에서 한 달이나 있었다고 했다.
그 기간의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한 달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때
와이프가 내 발바닥에 있는 굳은살을 보고
혼자 슬프게 울었다고 했다.
그 굳은살에 내 12년간의 흔적이 다 들어 있었다.
지금은 사춘기 소녀 발처럼 부드럽지만.
나는 조영술, 오닉스 색전술, 뇌실 배액술
이 세 가지 시술을 모두 받았다고 했다.
출혈량은 무려 200cc.
뇌에서 우유팩 한 개 분량의 피가 쏟아진 셈이다.
지금도 머리 뒤에는 동그란 큰 흉터 두 개가 있고
왼쪽 사타구니엔 X자 자국이 있다.
지금은 머리카락이 제법 길어져서
두 개의 흉터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곳으로 관을 넣어 뇌혈관까지 치료했다고 했다.
그렇게, 내 두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